망한 사랑 이야기
도나쵸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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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망한 사랑 이야기라는 자극적이고도 서글픈 제목의 책을 집어 들었다. 도나초 작가의 신작 에세이다. 머리가 하얗게 새고 삶의 격랑을 무수히 넘겨온 노년의 눈에 젊은 날의 이별이나 감정의 파고가 단지 철없는 어리석음으로 보일지, 아니면 지나온 세월의 아련한 초상으로 보일지 궁금함이 앞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단순히 연애의 실패를 자학하거나 일회성 푸념으로 늘어놓은 글이 아니다. 사랑이 뜨겁게 타오르다 흘려보낸 잿더미 속에서, 끝내 쉽게 사라지지 않고 가슴 밑바닥에 남은 감정의 부스러기들을 아주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안은 기록이다.

 

살아보니 세상에 망한 사랑이란 없다. 한때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품었고, 그로 인해 기뻐하고 아파했던 시간은 비록 결말이 이별이라 할지라도 결코 실패나 망작(亡作)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인생의 긴 궤적에서 보면 모든 이별과 상처는 인간을 더 깊고 그윽하게 만드는 훈장과 같다. 젊은 날에는 이별 하나에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고, 내가 다 태워버린 감정의 흔적이 수치스러워 숨기기 바빴다. 하지만 이 책은 지나간 사랑의 잔흔들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그것 역시 내 삶의 단단한 자양분이었음을 나지막이 일깨워준다.

 

작가가 건네는 담담한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누군가는 헛웃음을 지으며 추억을 넘길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오래된 기억을 꺼내 보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책장을 넘기며 청춘의 어느 길목에서 헤매던 나 자신의 옛 모습을 보았다. 열렬히 사랑했으나 어리숙함으로 서로를 할퀴었던 순간들, 서툰 이해심 때문에 놓쳐버린 인연들. 그 시절엔 참으로 망해버린 인생의 한 장면 같았으나, 70대의 높이에서 돌아보니 그 또한 삶이 나에게 준 아름답고도 아린 선물이었다.

 

저자는 이별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억지로 괜찮아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슬픔을 억지로 털어내려 애쓰기보다는, 그 감정의 자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을 말한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내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관계의 종말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고요한 출발점이 된다. 이 책은 망했다고 표현된 그 참담한 순간들 속에서도 여전히 품격을 잃지 않고 인간다운 온기를 지켜내는 방법을 나직하게 읊조린다.

 

인생의 후반전에 서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결국 우리를 만든 것은 화려했던 성공보다는 아프게 다쳐본 경험들이었다. 상처를 통과해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에 깊은 공감을 보낼 수 있고, 관계의 허무함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곁에 있는 인연의 소중함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는 젊은 세대에게는 이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다정한 구조요청이 되어주고, 나 같은 노년에게는 지나온 삶의 서툰 순간들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품어주게 만드는 따스한 돋보기 역할을 해준다.

 

망했다는 단어 뒤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살아갈 것이며 또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은밀한 희망이다. 감정이 서툴러 밤잠을 설치고 있는 이들, 이별의 잔재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흘러간 시간에 마음을 매개하지 말고, 그 아픔조차 나를 형성한 소중한 조각이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이 책은 나지막이 증명해내고 있다. 책을 덮으며 가만히 미소 짓는다. 참으로 고마운, 그리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망한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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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생각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 최고의 질문으로 결과를 바꾸는 문제해결의 기술
변창우 지음 / 세이코리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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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면 세상의 변화가 눈부시다기보다 두려울 때가 더 많다. 거리마다 들어선 무인 기계들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발견할 때, 혹은 젊은이들이 쓰는 정체불명의 기술 용어들을 들을 때마다 이제 내 시대는 저물어가는구나하는 쓸쓸함이 밀려오곤 했다. 특히 최근 매스컴을 연일 장식하는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는 우리 같은 노년층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이자,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차가운 기계의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마주한 변창우 저자의 <AI 시대, 생각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길을 잃은 나에게 참으로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과 뜨거운 용기를 심어주었다.

 

이 책의 핵심은 명료하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똑똑해지고 계산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결국 그것을 움직이고 방향을 잡는 것은 인간 고유의 생각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기술적인 복잡한 이론을 늘어놓는 대신, AI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와 사고방식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컴퓨터 언어 한 줄 모르는 내가 과연 이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생각은 기분 좋은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책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던 순간은, 이제 컴퓨터의 언어를 배우는 시대가 아니라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배우는 시대가 되었다는 대목이었다. 과거에는 젊은이들의 빠른 손놀림과 기계 조작 능력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에게 얼마나 깊이 있고 명확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 순간, 평생을 살아가며 온몸으로 부딪쳐 쌓아온 나의 경험과 지혜가 결코 쓸모없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히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듬어진 노년의 통찰과 사유의 깊이야말로, 인공지능에게 가장 훌륭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저자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협력자로 바라보라고 권한다. 내 머릿속에 맴도는 파편화된 기억과 생각들을 인공지능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근사한 글이나 그림, 혹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구부정했던 허리가 곧게 펴지는 기분이었다. 은퇴 후 소소하게 적어온 삶의 기록들이나 동년배들과 나누고 싶은 지혜들을, 자식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오롯이 내 생각의 힘으로 세상에 펼쳐 보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물론 70대의 인지력과 서툰 기계 조작으로 당장 내일부터 인공지능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낯선 용어들은 여전히 눈에 걸리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도 복병이다. 하지만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단순한 기술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나이 듦에 밀려 새로운 시대를 그저 구경꾼으로 바라만 보던 이들에게, 저자는 당신이 가진 생각의 힘을 믿고 다시 한번 중심부로 걸어 나오라고 따뜻하게 격려한다.

 

지나온 세월 동안 수많은 사회적 격변을 겪어냈지만, 지금의 AI 혁명은 인간의 품격과 존엄을 지키며 노년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기력은 전만 못할지라도, 깊은 사유와 올바른 질문만 있다면 누구나 나만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서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의 홍수 속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인문학적 지침서에 가깝다. 나처럼 나이 듦에 갇혀 다가오는 미래를 외면하고 싶었던 이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내면의 불꽃을 간직한 모든 동년배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배움과 사유에는 결코 은퇴가 없음을,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임을 깨닫게 해 준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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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도 자도 피곤한 당신을 위한 수면 처방 - 오늘 밤부터 달라지는 잠의 과학
이준용 지음 / 미래의창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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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들면 세상만사에 무뎌진다고 하지만, 몸의 변화만큼은 매일 아침 살갗으로 투명하게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혹독하고 소리 없는 변화는 바로 이다. 젊은 날에는 머리만 대면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밤을 새워 일해도 하룻밤 푹 자고 나면 씻은 듯이 개운했다. 그러나 일흔의 고개를 넘어선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초저녁부터 눈꺼풀이 무거워 자리에 누웠다가도 한밤중에 서너 번씩 깨기 일쑤고, 정작 새벽에는 눈이 번쩍 뜨여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낮 동안에는 안개 낀 것처럼 머리가 무겁고 늘 피곤함이 어깨를 누른다.

 

이준용의 <자도 자도 피곤한 당신을 위한 수면 처방>은 이처럼 밤마다 잠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노년의 나에게 단순한 의학 지식을 넘어, 내 몸과 삶의 균형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 같은 책이었다.

 

흔히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노화의 과정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나 역시 나이 먹으면 원래 그래라는 주변의 말에 위안을 삼으며, 조각잠으로 채워지는 일상을 묵묵히 견뎌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고정관념에 단호하게 경종을 울린다. 자도 자도 피곤한 현상은 단순히 세월의 탓이 아니라, 우리 몸이 보내는 적색신호이자 수면의 이 붕괴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저자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원인을 호르몬의 변화, 생체 리듬의 붕괴, 그리고 일상 속 사소한 나쁜 습관들에서 명쾌하게 찾아내어 설명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밤의 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위태로웠는지를 뼈아프게 실감하게 된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노년기 수면의 특성을 다룬 대목이다.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면서 수면 주기가 앞으로 당겨지고 깊은 잠(서파 수면)의 비율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의학적 사실은, 왜 내가 그토록 밤눈이 밝아지고 자주 깨어났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게 해주었다. 저자는 단순히 몇 시간을 자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낮 동안 햇볕을 충분히 쬐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며, 잠자리를 오직 잠을 위한 성소로 만드는 등 일상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수면 위생을 처방전으로 제시한다. 이 실용적인 조언들은 거창한 치료법보다 훨씬 따뜻하고 든든하게 다가온다.

 

수면은 단순히 하루의 끝이 아니라, 다음 날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생명 활동이다.” 책 속의 이 한 문장은 내 잠에 대한 태도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동안 나는 잠을 그저 하루의 의무를 마치고 남은 자투리 시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잘 자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존엄을 지키고, 매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서재에 앉아 글을 쓰고, 아내와 함께 평온한 일상을 가꾸어 나가는 힘의 원천임을 깨달았다.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은 결국 내 몸의 리듬을 존중하고, 밤의 안식을 온전히 대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이가 들수록 몸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 애쓰기보다는 몸이 스스로 편안해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책은 단순히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실용서를 넘어, 삶의 속도를 늦추고 스스로의 몸을 보살피는 돌봄의 인문학으로 읽힌다. 황혼의 길목에서 되찾아야 할 것은 비단 삶의 여유뿐만이 아니다. 밤마다 찾아오는 침묵의 시간 동안 내 몸이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바로 남은 생을 품위 있게 살아가는 첫걸음이다. 자도 자도 피곤한 무기력함에 갇혀 세월 탓만 하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노년들에게, 그리고 부모의 거칠어진 수면 결을 걱정하는 자식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오늘 밤은 책이 일러준 대로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불을 끄고, 내 몸이 원하는 자연스러운 밤의 품으로 깊숙이 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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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제가 가득한 코파일럿 길라잡이
이승우 지음 / 정보문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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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70대라는 나이는 대개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기라고들 말한다. 손에 익은 오랜 습관들이 편안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문물에는 자연스레 뒤처지기 마련이다. 스마트폰의 간단한 애플리케이션 하나를 업데이트하는 일도 때로는 커다란 숙제처럼 다가오는 나이다. 그런 와중에 세상은 온통 생성형 AI’코파일럿(Copilot)’이니 하는 낯선 단어들로 들끓고 있다. 이승우의 <예제가 가득한 코파일럿 길라잡이>를 펼쳐 든 것은, 변화하는 시대를 향한 거창한 도전 정신이라기보다는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대한 노년의 소박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처음 책을 마주했을 때는 컴퓨터 전공자나 젊은 직장인들의 전유물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 두려움은 이내 엷어졌다. 저자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기술을 복잡한 수식이나 난해한 IT 용어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마치 곁에서 친절한 손자가 할아버지의 눈높이에 맞춰 하나하나 마우스를 클릭해 가며 설명해 주듯 다정하고 명쾌한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제목 그대로 제가 가득하다는 점에 있다. 이론적인 설명은 과감하게 덜어내고, 실제로 일상과 업무에서 코파일럿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눈으로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나 엑셀, 파워포인트 같은 우리에게도 비교적 익숙한 프로그램 안에서 코파일럿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각적인 예시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70대의 시선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은, 코파일럿을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내 생각을 확장해 주는 비서이자 동반자로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젊은이들처럼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하지 못해도, 컴퓨터 언어를 잘 몰라도, 그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평이한 말(자연어)로 질문하고 명령하면 인공지능이 이를 알아듣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대단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노년의 삶이란 결국 표현의 제약과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머릿속에는 수십 년간 쌓아온 삶의 지혜와 수많은 이야기가 고여 있지만, 그것을 정제된 글이나 세련된 시각 자료로 표현해 내기란 쉽지 않다. 체력적인 한계도 따르고, 젊은 날의 기민함도 빛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코파일럿의 활용법을 보며, 어쩌면 이 기술이 노년의 지혜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훌륭한 다리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예를 들어, 평생을 살아오며 느낀 소회나 사회를 향한 쓴소리를 한 편의 글로 정리하고 싶을 때, 코파일럿에게 내가 구상한 이러저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신문 칼럼 형식의 글을 초안으로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혹은 지역 사회나 마을 공동체에서 주민들의 뜻을 모아 공공기관에 제출할 건의서를 작성할 때, 딱딱하고 복잡한 행정 서식을 코파일럿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완성하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문제가 아니라, 노년의 주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도구를 얻는 일과 다름없다.

 

물론 70대의 투박한 손으로 책에 나온 예제들을 하나씩 따라 하기란 여전히 만만치 않은 과정일 것이다. 화면의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헤맬 수도 있고, 인공지능이 엉뚱한 대답을 내놓아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가 지치지 않도록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한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 없이, 하루에 한 가지 예제씩만 간식 먹듯 들여다보아도 충분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덮으며 깨달은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화려한 컴퓨터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묻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인간 본연의 사유 능력이라는 점이다. 질문이 깊어야 인공지능도 깊은 답을 낸다. 그런 면에서 인생의 깊은 우물을 파 내려온 노년층이야말로, 이 도구를 가장 품격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이들일지도 모른다.

 

<예제가 가득한 코파일럿 길라잡이>는 단순히 기계 사용법을 알려주는 기술 서적을 넘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소외되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가고자 하는 노년에게 따뜻한 용기를 주는 안내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고 마우스를 쥐어볼 용기를 주는, 참으로 고마운 길라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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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 콜럼버스의 발견부터 세계 최강국이 되기까지
제임스 웨스트 데이비드슨 지음, 고든 앨런 그림, 이선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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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기고 산다는 것은 참 많은 풍상을 몸으로 통과해 왔다는 뜻이다. 한국전쟁의 여파 속에 유년 시절을 보냈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혹독한 산업화 시대를 거쳐 민주화의 파고를 넘어섰다. 그 거친 세월의 길목마다 좋든 싫든 우리 삶의 깊숙한 곳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젊은 시절의 나에게 미국은 부유하고 강대한 제국이자, 선망과 경계의 대상이 얽힌 복잡한 존재였다. 이제 삶의 둔덕에 올라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듯, 제임스 웨스트 데이비드슨이 쓴 <한 권으로 읽는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를 천천히 넘겨보았다.

 

책은 신대륙이라 불린 땅에 본래 뿌리를 내리고 살던 인디언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원주민의 눈물 위에 세워진 거대 국가의 출범, 남북전쟁의 상흔, 그리고 세계 패권국으로 올라서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거창한 영웅주의나 거대한 사건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대신 그 역사라는 소용돌이 속을 살아낸 무수한 이들의 삶과 갈등, 열망을 세밀한 눈으로 들여다본다.

 

특히 나를 오래 머물게 했던 대목은 미국의 자유라는 가치가 어떻게 다듬어지고 훼손되며 또 다시 재건되어 왔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때, 그 평등의 울타리 밖에 흑인 노예와 원주민, 여성들이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다는 역설은 서글픈 울림을 준다. 그러나 저자는 이 한계를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껍데기뿐이던 그 언어들이 어떻게 시민들의 피와 땀을 통해 진정한 실체로 채워져 갔는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우리 역시 거친 시대를 건너며 자유민주주의라는 거창한 구호가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던가.

 

70대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 역사의 궤적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위대한 열정이 도도하게 흐르지만, 다른 한쪽에는 집단적 이기심과 인종적 오만, 자본의 잔혹함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유는 그 모든 오점과 오욕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사회가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교정하려는 역동성을 끊임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년의 지혜란 결국 완벽한 인간이나 완벽한 제국은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오류를 성찰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자정 능력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문득 우리 세대가 살아온 삶과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세상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격동의 20세기를 통과하며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던 미국의 역사는 결국 인류 전체가 겪어낸 희생과 좌절의 줄거리와 닮아 있다. 짧다면 짧은 미국사 안에 이토록 깊은 인간적 고민과 제도적 모색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젊은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거대 강국의 숨겨진 정체성을 파악하는 지적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인생의 많은 페이지를 넘긴 이에게 이 책은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인간 사회가 존엄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이자, 우리가 거쳐온 삶을 비춰보는 깊고 투명한 거울이다. 밤이 깊어가는 시간, 돋보기 안경 너머로 마주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거대한 서사는, 결국 한 시대를 충실히 살아낸 모든 인간을 향한 깊은 묵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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