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사랑 이야기
도나쵸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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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망한 사랑 이야기라는 자극적이고도 서글픈 제목의 책을 집어 들었다. 도나초 작가의 신작 에세이다. 머리가 하얗게 새고 삶의 격랑을 무수히 넘겨온 노년의 눈에 젊은 날의 이별이나 감정의 파고가 단지 철없는 어리석음으로 보일지, 아니면 지나온 세월의 아련한 초상으로 보일지 궁금함이 앞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단순히 연애의 실패를 자학하거나 일회성 푸념으로 늘어놓은 글이 아니다. 사랑이 뜨겁게 타오르다 흘려보낸 잿더미 속에서, 끝내 쉽게 사라지지 않고 가슴 밑바닥에 남은 감정의 부스러기들을 아주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안은 기록이다.

 

살아보니 세상에 망한 사랑이란 없다. 한때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품었고, 그로 인해 기뻐하고 아파했던 시간은 비록 결말이 이별이라 할지라도 결코 실패나 망작(亡作)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인생의 긴 궤적에서 보면 모든 이별과 상처는 인간을 더 깊고 그윽하게 만드는 훈장과 같다. 젊은 날에는 이별 하나에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고, 내가 다 태워버린 감정의 흔적이 수치스러워 숨기기 바빴다. 하지만 이 책은 지나간 사랑의 잔흔들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그것 역시 내 삶의 단단한 자양분이었음을 나지막이 일깨워준다.

 

작가가 건네는 담담한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누군가는 헛웃음을 지으며 추억을 넘길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오래된 기억을 꺼내 보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책장을 넘기며 청춘의 어느 길목에서 헤매던 나 자신의 옛 모습을 보았다. 열렬히 사랑했으나 어리숙함으로 서로를 할퀴었던 순간들, 서툰 이해심 때문에 놓쳐버린 인연들. 그 시절엔 참으로 망해버린 인생의 한 장면 같았으나, 70대의 높이에서 돌아보니 그 또한 삶이 나에게 준 아름답고도 아린 선물이었다.

 

저자는 이별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억지로 괜찮아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슬픔을 억지로 털어내려 애쓰기보다는, 그 감정의 자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을 말한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내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관계의 종말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고요한 출발점이 된다. 이 책은 망했다고 표현된 그 참담한 순간들 속에서도 여전히 품격을 잃지 않고 인간다운 온기를 지켜내는 방법을 나직하게 읊조린다.

 

인생의 후반전에 서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결국 우리를 만든 것은 화려했던 성공보다는 아프게 다쳐본 경험들이었다. 상처를 통과해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에 깊은 공감을 보낼 수 있고, 관계의 허무함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곁에 있는 인연의 소중함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는 젊은 세대에게는 이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다정한 구조요청이 되어주고, 나 같은 노년에게는 지나온 삶의 서툰 순간들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품어주게 만드는 따스한 돋보기 역할을 해준다.

 

망했다는 단어 뒤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살아갈 것이며 또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은밀한 희망이다. 감정이 서툴러 밤잠을 설치고 있는 이들, 이별의 잔재 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흘러간 시간에 마음을 매개하지 말고, 그 아픔조차 나를 형성한 소중한 조각이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이 책은 나지막이 증명해내고 있다. 책을 덮으며 가만히 미소 짓는다. 참으로 고마운, 그리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망한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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