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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해봤어 - 땅에서 하늘로, 인류의 내일을 향한 여정
김유재 지음 / 행복에너지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내 세대가 걸어온 길은 온통 ‘생존’과 ‘개척’이라는 거친 단어들로 점철되어 있음을 새삼 느낀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내던 시절, 우리를 지배했던 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겠다는 무모할 정도의 투지였다. 그 시대의 중심에 정주영이라는 거인이 있었고, 그가 입버릇처럼 던지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은 우리 세대 전체의 심장을 뛰게 했던 절대적인 주문이었다.
김유재의 <이봐, 해봤어>는 그 시절의 뜨거웠던 기억을 소환하는 동시에, 오늘날 무기력과 불안에 시달리는 청춘들을 향해 거인이 던지는 날 선 질문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 기업가의 성공 신화를 찬양하는 도마 위의 기록이 아니라, 도전을 멈춘 이 시대를 향한 묵직한 각성제와 같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핑계를 댄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시기상조라서, 혹은 주변의 반대가 심해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겠노라고 고백한다. 특히 요즘처럼 모든 것이 수치화되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사회일수록, 실패의 리스크를 계산하느라 첫발을 떼지 못하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

저자는 정주영의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 정신을 통해, 세상이 말하는 ‘불가능’의 상당수가 실상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자들의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머릿속으로 완벽한 계획을 짜는 것보다, 일단 현장에 부딪쳐 몸으로 깨지는 것이 진짜 배움이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거인이 세계적인 조선소를 짓고 유조선으로 방조제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무모한 확신과 현장 중심의 실천력 덕분이었다.
늙은이의 눈으로 돌아보아도,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실패했던 기억이 아니다. ‘그때 한번 저질러볼 걸’ 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게으른 망설임들이다. 거인의 투박한 질타는 내 안의 안일함마저 따끔하게 찌른다.

이 책을 읽으며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단군 이래 가장 화려한 스펙을 가졌고 아는 것도 많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세대가 지금의 청춘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실패하면 곧바로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가혹한 사회 구조와 좁아진 기회의 문이 그들을 웅크리게 만들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가면 된다.” 이 책 속에 인용된 정주영의 이 철학은, 매뉴얼과 정답만을 강요당하며 자란 요즘 아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다. 저자는 이 거인의 야성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며, 지금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스펙이 아니라 ‘한번 들이받아 보는 깡다구’라고 나직하게 조언한다. 인공지능이 답을 찾아주고 세상의 모든 지식이 규격화된 시대일수록,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딛는 야생의 에너지가 결국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그 데이터는 책에서 읽은 지식이 아니라, 전부 몸으로 부딪쳐 피 흘리고 눈물 흘리며 얻어낸 생생한 삶의 궤적들이다.
책을 덮으며 내 거친 손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비록 몸은 늙고 걸음걸이는 느려졌을지언정, 내 안의 정신까지 은퇴한 것은 아니다. 이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그저 안락한 방에 앉아 과거를 반추하기만 하는 삶은 얼마나 무료한가.
인생의 마지막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인간은 성장하고 도전할 수 있다. 남들이 늙었다고 만류할 때, 혹은 스스로 한계를 지으려 할 때, 나 역시 내 가슴을 향해 나직하게 물어보려 한다. “이봐, 늙은이. 매일 똑같은 일상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생각과 삶의 방식을 향해 한 번이라도 더 부딪쳐 봤어?”
편리함과 안전함이라는 둥지 속에 갇혀 사유와 행동을 멈춘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안방의 문을 부수고 거친 광야로 나아가게 만드는 기분 좋은 등짝 스매싱이다. 해보지 않고는 가치를 논할 수 없다. 일단 저지르고 볼 일이다. 그것이 이 찬란한 생을 대하는 가장 예의 바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