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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 에이코 제인의 아리랑
백훈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6월
평점 :
한국
근현대사를
개인의 인생을 통해서 돌아본다.
글로 누군가의 인생을 모두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글로, 책으로 나온다는 말은 뭔가 깊이 생각할 만한 꺼리가 있다는 뜻이다.
[영자 에이코 제인의 아리랑]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하지만 다 안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렇게 책을 펴서 프롤로그를 읽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단지 두 문단을 읽었을 뿐인데, 무던히 표현해놓은 문장에서 그녀의 인생이
모두,
아니 살짝보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답답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그녀, 주영자씨의
인생을 나누어 표현한 글을
무던히 그리고 간간히 책을 덮어가며,
혹은 남편과 근현대사를 얘기하며 읽어나갔다.
영자씨는 지금은 북한땅인 함경도에서 자랐다.
그러다 6.25가 터졌고, 그녀의 집도 피난길에 올랐다.
하지만 갓 막내를 출산한 그녀의 어머니는 함께 할 수 없었다.
결국 흥남부두에서 아버지, 오빠, 영자씨, 남동생만이 배를 타고 거제로 올 수 있었다.
그렇게 거제에 도착하여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남한편과
북한편이 나뉘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영자씨는 어머니가 그리웠지만 그래도 남한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들을 살뜰히 챙기지만,
정작 그녀는 가족들에게 버려지고 만다.
십대 소녀는 요즘도 혼자 살기 힘들다.
하지만 그 난리통에 영자씨는 오죽했을까.
여러사람들을 만나면서 삯바느질을 하고
식모살이를 하고, 다방에서 일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팔려갔다가 탈출하고
그렇게 그렇게 평택까지 흘러간 영자씨는 첫사랑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군에게 겁탈당해 아이를 낳게 되고,
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를 훔쳐가 미국에 입양보내는 사람들을 피해서
일본으로 간다.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타향살이는 언제나 외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녀만의 씩씩하고 바른 생활과 인성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보통의 소설이 기승전결로 끝난다면, 이 소설은
기승전전전....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매 페이지를 넘기면서 계속되는 사건을 만나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영자씨의 인생은
우리의 지난 역사를 당면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현실이다.
어린나이에도 가족을 챙길 줄 알고,
거제포로수용소를 보면서 그래도 북한보다는 남한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는 영자씨는
똑똑했다.
백인의 피가 섞인 아이들을 납치하여 입양보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던 나는
월남전을 통해 우리의 피가 섞인 아이들이 베트남에 있다는 것도 떠올랐고,
그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버려져 살아가고 있다는 티비프로그램도 생각이 났다.
거제 장승포항에 도착해서 배에서 내리자마자 미군들이 뿌려주는 DDT를 뒤집어쓸때,
쌀알만한 이가 무더기로 쏟아졌다는 묘사는
미군들이 한국인과 일본인을 볼 때 느꼈을 첫인상을 상상하게 했다.
처음 미군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일제치하에 온갖 수모를 겪으며
단지 살아남기 위해 살던 한국인들이 더럽고 미개해보였을 것이다.
그에 반해 지배층으로 말끔하게 생활하던 일본인들이 그들에게는 좋아보였으리라...
에이코로 일본에서 생활할 때는 일본인의 검소함과 진실함,
도둑질을 하지 않는 그들의 좋은 심성을 경험하면서
일본이 저질렀던 지난날 한국을 지배하고
핍박했던 역사와 뒤섞여 혼란을 느꼈다는 그녀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역사와 현재의 개인으로서
만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우리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미국에서 동양인이라고 멸시받고, 오히려 같은 동양인이
꺼려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은 물론 같은 처지의 차별받는 사람들끼리의 행태도
안타까웠다.
남편이 월남전 파병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우리아버지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싶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는 삶
일본에서 전쟁이 끝나도 오지 못하고 살아가는 한국인의 삶,
동양인으로서의
미국에서의 삶을 주영자씨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불행한 가족사와 한 여성으로서 힘든 미혼모의
삶,
어렵게 가정을 꾸렸지만 또 흔들리는 가정,
한국인 사업가로서의 삶까지
한
여자의 인생으로 그려지기에는 너무 무거웠지 않았을까.
이렇든 너무나도 많은 역사의 단면을 주영자씨의 증언으로
채워나가고 있는 소설을 읽고 있자니,
역사시간에 배운것과 달리 개인이 겪었어야 할 우리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책 속에서 주영자씨의,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삶을 이리도 잘 표현하는 글은 없는 것 같다.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밀물처럼 폭풍처럼 닥쳐올 때는 그것이 자신에게 큰 충격을 주지 않기만을 바라며 사는 수밖에 없어,
파도는 아무도 이길 수가 없어. 파도에 몸을 맡겨야만 파도에 몸을 실어야만 살수
있는거야."(99쪽)
남은 그녀의 인생에 평온이 깃들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