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은 심리치료사의 내면 일기
노라 마리 엘러마이어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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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아프면 우리는 그 사람이 혹시 무슨 잘못을 한 게 아닌가 먼저 묻는다. 과음을 했을까?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을까? … 건강한 사람은 환자에게 낙인을 찍고 환자는 자괴감과 수치심에 빠진다. "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은 심리치료사의 내면 일기라는 문구만 보고도 만나보고 싶었던 책 <나는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입니다. 책을 펴자마자 책날개의 글을 읽는데, 평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 그대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실려있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더라고요. 애써 안 그런척해보지만, 아파본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저도 건강할 때는 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으니, 그들 탓만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세월이 지나면서 이젠 무뎌졌나 싶다가도 한 번씩 불쑥 쓰라린 것을 보면 굳은살이 완전히 베긴 것은 아닌가 봅니다.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고 삐뚤어진 '자화상'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5

흔히 사람들은 어떤 병에 걸리면 자신의 잘못이 뭔지부터 생각하곤 해요. 심리학자이면서 심리치료사인 이 책의 저자 노라 마리 엘러마이어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에 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데요. 그곳에는 방사선과 의사였던 친아버지와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며 교사로 일한 어머니, 제삼 세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양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유산을 물려받아 책임감과 독립심이 강한 데다 일찍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남은 시간을 알차게 살고 싶었던 저자가 있었습니다. 흔히들 우울증은 불행한 삶에서 온다고들 여기지만, 사실 저자는 긍정적이며 호기심이 많고 명랑하고 쾌활하며 모험심이 강하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었는데요. 책 속에는 이런 저자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 이후 치료 과정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종양내과 의사도 암에 걸리고 심장전문의도 심근경색에 걸린다. 심리치료사도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 -105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을 통해 기억해야할 한가지만 골라보라고 한다면, 노력하는 현대인은 누구나 번아웃이나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을 들고 싶어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직원이 되기 위해, 가정에서는 자상한 부모나 파트너가 되기 위해 쉬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한계에 다다르면 번아웃을 겪거나, 심해지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게 되지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우울증에 걸리면 꼭 실패자처럼 낙인을 찍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우울증은 실패자라는 낙인이 아니라 성공지향주의 사회에서 너무 열심히 살아왔기에 걸릴 수도 있는 병이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며 성공지향적인 삶만을 장려해서는 안되며, 우리도 워라벨이나 소확행을 넘어서서 좀 더 느긋하게 자신의 삶을 즐기는 자세와 인식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음지도, 어둠도 삶의 일부이다. 박자와 시간을 정하는 것은 삶 그 자체다. 우리의 노력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123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치료의 과정이었는데요. 우울증의 치료에는 대화가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제 생각과 달리, 저자는 미술치료, 음악 치료, 북 치료, 산책, 성당 미사, 텃밭 가꾸기 등 비언어 치료법이 특히 효과가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저도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 집에만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것도 어쩌면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리치료를 해보면 무한해 보이는 자아실현의 가능성은 결국 자기 착취와 자기 부담의 무한한 가능성일 뿐이며, 그 결과로 심각한 심리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이 기댈 곳은 자신밖에 없다. -223

그동안 우울증에 대한 책들을 꾸준히 만나보았는데요. 이 책은 보통의 경우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노력 지상주의, 성공지상주의 때문에 종종 우울하거나, 번아웃이나 우울증에 대해 공감을 얻고 싶거나 호기심이 있는 사람, 혹은 우울증의 치료과정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어요. 하지만 특히 우울증을 겪은 심리치료사의 인생과 치료기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심리치료사라는 전문가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글이니 만큼, 우울증에 대한 편견도 없앨 수 있을뿐더러,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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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명화와 현대 미술 - 그림 속 상징과 테마, 그리고 예술가의 삶
파트릭 데 링크 외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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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감상할 때는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왠지 배경지식을 알면 더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항상 듭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미술가나 명화와 관련한 책을 만나보곤 하는데요. 이번에는 <한 권으로 읽는 명화와 현대 미술>을 만나보았습니다.

표지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에드워드 호퍼의 <밤새는 사람들>에서 짐작해 볼 수 있듯, 이 책은 고전 명화에서 현대 미술까지 꽤나 광범위한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술가의 삶과 작품 속 상징과 테마까지 다룬다고 하니 어떻게 편집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었습니다.

지은이는 고전학자이자 번역가이며, 미술관, 출판사, 신문과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파트릭 데 링크. 그가 썼다는 <고전 문학의 ABC>, <그리스 신화 다시 읽기> 등의 책 목록만 봐도 명화를 보는 눈이 남다를 것으로 예상되었고 신뢰가 가더군요.
책은 시대순으로 고전 명화와 현대 미술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항상 작가의 이름과 작품 명이 나오고 나면, 작가의 생애와 작품들의 특징이 뒤따릅니다. 작품의 전체 사진을 빼놓지 않았으며, 그 작품에서 눈여겨볼 만한 일부분을 따로 확대하고 바로 옆에 설명을 싣고 있기도 해요. 덕분에 시대별로 빠르게 작가와 작품을 파악할 수 있으며, 작품에서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부분을 쉽게 확인할 수도 있었어요.

이 책의 큰 장점이라면 모든 그림이 올 컬러 사진으로 실려있다는 점이었어요. 게다가 너무 자세한 내용보다는 해당 작품에 대해 짧고 굵게 포인트만 다루고 있어 좀 더 쉽게 느낄 수 있었는데요.

고전 명화 부분에서는 신화, 성경과 관련한 내용들이 그림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어요. 예를 들면 이전에는 각각의 명화에서 마리아와 요셉, 세례자 요한, 그리스 신 등의 인물들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지금은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또 백합, 비둘기, 장미, 맨발, 해골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어 답답한 마음이 풀리네요. 또 명화에서 많이 다룬 소재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었고, 몇몇 작품이 위대한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도 알 수 있었어요.

이와 더불어 복원에 대한 이야기도 잊히지가 않는데요. 조르조네 & 티치아노의 <잠든 비너스> 작품에서는 적외선 투시 촬영 결과 여인의 발치에 작은 에로스 그림이 발견되었다든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심각한 훼손,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중에서 최근 성공적인 복원작업으로 인해 뱀 꼬리 부분의 선명한 색상을 되찾은 것 등은 선명한 칼라 사진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부분이었을 듯합니다.

현대 미술의 경우는 사진의 발달로 인해 사실적인 그림보다는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실험주의적인 작품이 많다 보니 개인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이 많았는데요. 그나마 해설 덕분에 현대 미술을 좀 더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모네, 쇠라, 몬드리안, 앙리 마티스, 피카소 등 학창 시절 미술책에서 수없이 봤던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고, 막스 에른스트, 프리다 칼로 등 최근에 알게 된 다소 충격적인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개인적인 성향은 어쩔 수 없는지 에드워드 호퍼의 <밤새는 사람들>과 <자동판매기 식당>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 작품들은 사실 그동안은 막연하게 작품 자체의 그 쓸쓸함만을 느껴왔는데요. 이제는 호퍼의 작품 속에 숨어있는 시대적 상징성도 알게 되었네요.

그동안 저는 명화와 관련된 책이라 하면 고전 명화만을 다루거나 예술가 한 명 만을 다루는 경우를 많이 접해왔어요. 그래서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것 같은데요. 고전 명화부터 현대 미술까지 두루두루 만나볼 수 있었던 이 책 덕분에 현대 미술까지 좀 더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게다가 이렇게 시대별로 예술가의 삶과 대표 작품들을 만나보다 보니 각 시대별 예술가의 삶과 작품들의 특징, 미술사조는 물론 예술가들의 고민까지 그 흐름을 알겠더라고요.

사실 이 책은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느낌으로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이 책은 어떤 작품에 대한 아주 심도 있는 설명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미술 작품에 관심은 많지만 감상에 어려움을 겪는 초보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책을 만나본다면 시대별로 유명한 명화들에 대한 작은 이야깃거리를 하나씩 얻을 수 있을꺼라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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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책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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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든 가족이든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인생에 있어서 큰 사건인가 봅니다. 베스트셀러 <종이약국>의 작가 니나 게오르게가 갑작스레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난 뒤 '코마'를 소재로 한 책, <꿈의 책>을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아직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사실 이 책의 첫장을 넘기기까지 상당히 머뭇거렸는데요. 막상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 결말에 반해버렸습니다. 또 니나 게오르게가 표현한 것처럼 코마 상태가 정말 이런 것이라면 좋겠다 싶었는데요. 결코 과학적으로 밝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이런 믿음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삶에 따스한 빛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꿈 같은 소설을 다 읽고 '깨어난' 독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게네랄 안차이거

헨리 스키너는 아들 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해머스미스 다리를 건너던 중, 마침 그는 물살 때문에 유람선에서 강물로 떨어지는 한 소녀를 목격하게 됩니다. 해머스미스 다리 위에서 키스하던 한 쌍의 젊은 연인, 해진 스모킹 차림의 걸인, 그리고 헨리. 그는 강물로 뛰어들고 기껏해야 네다섯살 되어 보이는 소녀를 구해냅니다. 그리고 쓰러집니다.

헨리는 의식불명 상태, 즉 코마상태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요. 운명의 장난인지 그제서야 엇갈린 사랑 에디와 열 세살 아들 샘을 만나게 됩니다. 게다가 병원을 방문한 샘은 우연찮게 의식불명 상태인 또래 여자아이 매디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요. 과거 헨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거부당했다고 믿는 에디는 코마 상태에 빠진 헨리와 화해할 수 있을까요. 샘은 태어나 처음 만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리고 헨리와 매디에겐 기적이 찾아올까요?

"스키너 씨는 18분 동안의 심정지 후 다시 코마 상태로 돌아갔어요. 코마 자체는 병이 아닙니다. 뇌의 보호 반응이죠. 자기 자신에게로 물러나서 고통과 두려움을 안겨주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96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는 
'연결'에 대한 
아름답고 가슴 사무치는 이야기
-커커스 리뷰

다른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샘의 공감각 능력과 헨리의 반복되면서 변하는 꿈, 그리고 매디와 헨리의 경계가 모호한 영혼의 만남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내심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서로에게 입히는 상처를 그들은 어떻게 아물게 할까 궁금했고,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게 될지 궁금했어요.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던 헨리가 그의 사랑과 헌신으로 이야기를 완성하는데요. 마치 코마도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는 듯하여 따뜻한 위안으로 다가오더군요. 한동안 이 가슴 사무치도록 아름답고 몽환적인 이야기에 빠져있게 될 듯 합니다.

"그런 일이 있단다, 샘. 그런 일이 있어. 사랑은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야. 오로지 자기 자신하고 싸우고 늘 패배한단다. 하지만 때로는 반대일 수도 있어. 네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너를 더 자주 생각할 수 있어. 또는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너를 더 좋아하든지. 사랑은 미련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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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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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인문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왔기에 제목만 보고도 읽기로 결심한 책 <산책자의 인문학>이다.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이라는 문구를 보며, 유럽 곳곳에 닿아있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그곳에서 보인 일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 짐작해 보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작가 문갑식은 여행지와 관련된 단 한 명의 예술가를 골라내어 그 예술가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일대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런 스타일의 글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는데, 이미 알고 있던 예술가의 몰랐던 부분을 알 수도 있었고, 전혀 알지 못했던 예술가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행하는 사람에 따라 여행의 내용은 상당히 달라지기 마련인데, 작가 문갑식과 사진작가 이서현 부부는 흔히들 하는 관광이 아니라 예술과 연결한 여행을 했다. 이 특별한 여행을 통해 탄생한 이 책에는 생각보다 많은 총15명의 예술가들의 일생이 담겨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유럽이라는 곳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번영하였던 곳인가를 뒤늦게 떠올리게 된다.


​보티첼리, 클림트, 카사노바, 모짜르트, 고흐, 노스트라다무스, 생텍쥐페리 등 익숙한 인물들이 나올 때면 그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책을 읽으며 사진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랭보, 단테, 르 카레, 포사이스 등 전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예술가들을 만날 때면 신기함에 눈을 반짝일 수 있었다. 특히 그 유명한 단테나 랭보에게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점에 스스로도 놀랐는데, 작가의 권유처럼 언젠가는 단테의 신곡을 일독하는 모험을 떠나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들라하면 <보티첼리와 피렌체>편을 들고 싶다. 사실 그동안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보티첼리의 그림을 눈뜬 장님처럼 보며 답답함을 느껴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보티첼리와 <동방 박사의 경배>, <봄>, <비너스의 탄생>등 그의 그림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특히 미술작품을 이야기할 때면 꼭 따라오는 미술사조나 기법, 전문용어 같은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도 르네상스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매일 만나는 친구와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공원을 서성이며 대화를 하는 듯한 편안함을 받았던 <산책자의 인문학>. 다 읽고나서 책갈피로 사용하던 띠지를 책에 두르다보니 새삼스레 띠지의 문구가 의미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르네상스를 경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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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옥림 엮음 / 미래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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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는 어렵다. 물론 초등학생 시절부터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어 국어 시험을 치면서 만난 시가 너무 어려웠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더욱 어려워져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에 대한 로망은 있어서, 시 한편 술술 암기하여 외는 사람을 보면 그게 또 너무 부러웠다. 그런 내가 나이 마흔 무렵부터 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도 만났지만, 예전부터 알던 시 특히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보던 시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시적 화자니 뭐니 하는 것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시가 말하는 것들이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시를 읽으며 따뜻함과 평온함, 외로움, 서글픔, 아련함 등을 느끼곤 했다. 물론 학창시절에는 감정이 메말라 그러질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당시엔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암기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기에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그렇게 자꾸 시를 만나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시를 매일 즐겨 읽게 되었다. 따뜻함을 느끼되 지나치게 고양되지 않는 것, 서글픔을 느끼되 슬퍼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 수 있는 그런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종 소리 내어 읽어본다. 읽고 또 읽어본다. 신기한 것은 처음 만날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만날 때 그 느낌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내게 이 책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두고 두고 볼 책이다. 정호승, 문정희, 도종환 등의 국내시인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 버지니아 울프 등의 국외시인의 작품이 절반씩 담겨있는 이 책에는 딱 내가 즐겨읽는 쉬운 시, 평온한 시가 주로 담겨있다. 너무 어려워 무슨 말하는 것인지 찾아봐야 하는 시, 깊이 생각해야 하는 시가 아니라, 읽으면 바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데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아무날이나 읽고 또 읽기에 딱 좋았다.


​국내 시인의 작품 중에서는 수없이 읽은 정호승의 <수선화에게>가 그러했고, 나태주의 <풀꽃 1>과 김춘수의 <꽃>이 그러했는데, 자꾸 읽다보니 점점 외워지기도 하는 신기도 경험하고 있다. 또 한동안 잘 찾아 읽지 않았던 국외 시인의 시는 오랫만에 만나볼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을 읽으며 사춘기 어린날 감정폭풍을 겪던 날들이 떠올랐고, 알퐁스 도데의 <그대가 나의 사랑이 되어 준다면>을 읽으며 새삼 아름다운 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유독 세 개의 시를 읽고 또 읽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시인 김옥림의 <메밀꽃>과 도종환의 <처음 가는 길>, 수잔 폴리스 슈츠의 <바로 나이게 하소서>이다.


김옥림의 <메밀꽃>은 얼마전 메밀꽃밭을 본 광경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 해서 좋았는데, 어려운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없지만 짧은 글로도 마음에 잔잔한 그날의 감동을 느끼게 한다. 또 도종환의 <처음 가는 길>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가지 않는 길을 가면서 느낀 외로운 느낌을 위로해 주는 듯 해서 자꾸 찾아읽게 된다. 수잔 폴리스 슈츠의 <바로 나이게 하소서>는 지금껏 내가 해 온 사랑이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면서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본 듯 소망하고 있는 그 내용들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시는 인터넷으로도 찾아 읽을 수 있고, 시집을 빌리거나 대여해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 시인의 평온한 느낌을 주는 시들을 묶어 놓았다는 점과 저자 김옥림 시인의 쉽고 간단한 감상평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었다. 시는, 시집은 소장하고 있으면 읽고 또 읽을 수 있다. 어렵게가 아니라, 숨은 뜻을 찾는 숨바꼭질이 아니라 그냥 읽으면서 자연히 풍경이 떠오르고 그 감정이 떠오르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김옥림 시인의 평범한 감상평이 시를 읽을 자신감을 주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용기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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