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옥림 엮음 / 미래북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나에게 시는 어렵다. 물론 초등학생 시절부터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어 국어 시험을 치면서 만난 시가 너무 어려웠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더욱 어려워져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에 대한 로망은 있어서, 시 한편 술술 암기하여 외는 사람을 보면 그게 또 너무 부러웠다. 그런 내가 나이 마흔 무렵부터 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도 만났지만, 예전부터 알던 시 특히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보던 시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는데,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시적 화자니 뭐니 하는 것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시가 말하는 것들이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시를 읽으며 따뜻함과 평온함, 외로움, 서글픔, 아련함 등을 느끼곤 했다. 물론 학창시절에는 감정이 메말라 그러질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당시엔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암기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기에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그렇게 자꾸 시를 만나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시를 매일 즐겨 읽게 되었다. 따뜻함을 느끼되 지나치게 고양되지 않는 것, 서글픔을 느끼되 슬퍼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 수 있는 그런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종 소리 내어 읽어본다. 읽고 또 읽어본다. 신기한 것은 처음 만날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만날 때 그 느낌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내게 이 책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두고 두고 볼 책이다. 정호승, 문정희, 도종환 등의 국내시인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 버지니아 울프 등의 국외시인의 작품이 절반씩 담겨있는 이 책에는 딱 내가 즐겨읽는 쉬운 시, 평온한 시가 주로 담겨있다. 너무 어려워 무슨 말하는 것인지 찾아봐야 하는 시, 깊이 생각해야 하는 시가 아니라, 읽으면 바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데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아무날이나 읽고 또 읽기에 딱 좋았다.


​국내 시인의 작품 중에서는 수없이 읽은 정호승의 <수선화에게>가 그러했고, 나태주의 <풀꽃 1>과 김춘수의 <꽃>이 그러했는데, 자꾸 읽다보니 점점 외워지기도 하는 신기도 경험하고 있다. 또 한동안 잘 찾아 읽지 않았던 국외 시인의 시는 오랫만에 만나볼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을 읽으며 사춘기 어린날 감정폭풍을 겪던 날들이 떠올랐고, 알퐁스 도데의 <그대가 나의 사랑이 되어 준다면>을 읽으며 새삼 아름다운 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유독 세 개의 시를 읽고 또 읽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시인 김옥림의 <메밀꽃>과 도종환의 <처음 가는 길>, 수잔 폴리스 슈츠의 <바로 나이게 하소서>이다.


김옥림의 <메밀꽃>은 얼마전 메밀꽃밭을 본 광경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 해서 좋았는데, 어려운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없지만 짧은 글로도 마음에 잔잔한 그날의 감동을 느끼게 한다. 또 도종환의 <처음 가는 길>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가지 않는 길을 가면서 느낀 외로운 느낌을 위로해 주는 듯 해서 자꾸 찾아읽게 된다. 수잔 폴리스 슈츠의 <바로 나이게 하소서>는 지금껏 내가 해 온 사랑이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면서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본 듯 소망하고 있는 그 내용들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시는 인터넷으로도 찾아 읽을 수 있고, 시집을 빌리거나 대여해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 시인의 평온한 느낌을 주는 시들을 묶어 놓았다는 점과 저자 김옥림 시인의 쉽고 간단한 감상평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었다. 시는, 시집은 소장하고 있으면 읽고 또 읽을 수 있다. 어렵게가 아니라, 숨은 뜻을 찾는 숨바꼭질이 아니라 그냥 읽으면서 자연히 풍경이 떠오르고 그 감정이 떠오르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김옥림 시인의 평범한 감상평이 시를 읽을 자신감을 주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용기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