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박사의 그림책 육아
임영주 지음 / 믹스커피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옆집 친구네에 자주 놀러 갔어요. 함께 노는 것이 좋아서라기 보다 그 아이의 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 그 책들이 너무 재미있어서였지요. 엄마인 제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다 보니, 아이와 함께 할 때도 책을 참 많이 읽어주었어요.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 

그림책에 다 있다.


사실은 즐거운 시간을 아이와 엄마가 함께 보내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가끔은 엄마가 하고픈 말을 그림책의 힘을 빌려 전하기도 했는데요.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교육적 효과는 크지만 매번 그러지는 못하니까, 예쁜 그림이 가득해서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그림책의 힘을 많이 빌린 셈이지요. 다른 어느 책들보다 그림책의 경우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럼 어떤 책부터 읽어줘야 할까 고민되시지 않나요? 저도 처음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어떤 책을 읽어줘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무턱대고 읽어주기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처음에는 혼란을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들을 통해 오히려 아이를 더욱 이해할 수 있었고, 아이의 성장을 세세하게 리드하고 맞춰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은데요. 만약 내비게이션처럼 어떻게 가야 할지 알려주는 책이 있다면 한결 쉽게 그림책 육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제 막 그림책 육아를 하고자 하는 초보 맘이나 엄마가 되려고 준비 중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책으로 <임영주 박사의 그림책 육아>를 만나보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교육전문가 임영주 박사에요. 대학에서는 대학국어, 언어교육을 강의하고, 시인과 아동문학가로 활동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교육전문가로서 부모교육, 교사 강연 등을 하고 있는 강연가이기도 해요. 예전에 EBS <부모>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뵈었고, 아침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뵈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요즘은 네이버 <부모 i>에 부모교육 칼럼을 고정 연재 중이시라고 하네요.


​현명한 부모는 

그림책으로 아이를 키웁니다. 

감정 섞인 말 대신 

그림책을 읽어주세요.


프롤로그가 다른 책에 비하면 꽤 긴 편이었는데요. 역시 임영주 박사도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순수한 가치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책을 통해 육아를 하는 데 도움을 얻는 쪽임을 밝히고 있어요. 오해 없으셔야 할 것 같고요. 그래서 프롤로그를 통해 책을 읽어줄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인드를 말하고 그림책 육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어떻게 해야 올바른 그림책 육아가 되는지 큰 그림을 제시하고 있어요.


​​흔히들 '책을 읽어주세요.'하면 '어떤 책을 읽어줘야 하나요?'라는 질문 다음으로 '어떻게 읽어줘야 하나요?'는 질문이 쏟아지곤 하는데요. 아이를 품에 안고 엄마 아빠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며, 아이에게 싫은 소리로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책을 읽으며 전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발문'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어요.


​사실 저는 이제는 아이가 커버렸지만 아이에게 그림책을 한참 많이 읽어주던 시절에 가장 하기 싫은 것이 '발문'이었는데요. 이를 꼭 닮은 우리 아이도 그런 활동을 가장 싫어하더라고요. 그래서 '발문'을 잘 못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이 활동을 좀 더 잘 했다면 책을 파악하는 힘, 상황을 보는 힘, 사회를 보는 힘 등을 기르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남더군요.


​총 두 개의 PART로 구성된 이 책은 첫 번째 PART에서 왜 그림책을 읽어줘야 하는지, 어떤 그림책을 읽어줘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줘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검색하면서도 아직도 그림책 육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분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3가지가 여기에 다 있다고 보여요.


​그림책 육아는 두뇌와 언어발달은 물론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영향을 미쳐요. 떼쓰는 아이, 형제자매간의 문제, 자신감 없는 아이 등 부모들의 수많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으며, 언어 발달, 수 감각 등이 발달할 뿐만 아니라 정서발달에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으며, 책을 읽어주는 부모와 아이 간에 애착이 탄탄하게 형성되기도 해요. 그리고 부모가 더 행복해지는 육아인데요.


​먼저 경험한 제 경우를 다시 살펴봐도 어느 것 하나 반박할 수 없는 이유들입니다. 실제로 언어발달이나 집중력 등에서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수치화하여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확실히 책을 좋아하는 아이, 부모와 애착이 탄탄한 아이,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로 자란 것은 사실이거든요. 그리고 책을 읽어주던 그 시간만큼은 엄마로서 저도 정말 행복했답니다.


​또 어떤 그림책을 읽어줘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요. 저도 그림책 육아를 하면서 궁금했던 내용 그리고 선배맘으로서 종종 질문받던 내용들이 다 있더군요. 그래서 책 읽어주는 육아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모님들께 이 책 한 권 선물하면 끝나겠구나 싶었습니다.


​두 번째 PART에서는 상황에 따라 알맞은 그림책을 제시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화를 잘 내거나 감정 조절 못하는 아이, 형제자매 사이좋게 지내게 하고 싶을 때, 거친 말이나 욕을 하는 아이, 말 안 듣고 떼쓰는 말썽꾸러기 등의 <훈육을 위한 책>, 편식이 심한 아이, 목욕하기 싫어하는 아이 등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책>,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싶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사회성을 높이는 책>, 분리불안이 심한 아이, 엄마 아빠에 대해 알려주는 책등 <가족에 대해 알고 애착을 높이는 책>,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 질문이 너무 많은 아이를 위한 <아이의 성격이 고민일 때 읽어줄 책>,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여주는 책,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책등의 <발달 능력을 키워주는 책>으로 많은 분야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소개하는데요.


​아이 어릴 때 함께 읽었던 수많은 책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고, 실제로 효과를 많이 본 책들이 소개되고 있어 이 책이 굉장히 믿음직하게 느껴졌어요.


​아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그림책들이지만, 사실 저도 굉장히 좋아했던 책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처분하지 못하고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그림책들이 사실 몇몇 있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강아지똥>이나 <괜찮아> 같은 책들은 저희 아이 자존감 향상에 큰 기여를 한 책이기도 해서 참 감사한 책이에요.


​또 요즘은 일하는 엄마와 아빠를 둔 덕에 혼자 있을 시간이 많은 아이들이 많은데요. 특히 아빠의 경우는 친구들 아빠도 일하러 다니느라 많이 못 놀아주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지만, 엄마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아이 때는 이 책이 나오기 전이라 다른 책으로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라는 책으로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전해주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 이 시리즈는 정말 다 좋은 것 같아요.


​저희 아이는 소근육 발달이 조금 늦은 편이라 오랫동안 글씨 쓰기를 힘들어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어릴 때 그림 그리기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감, 성취감이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었는데요. 그때 이 <점>이라는 책이 참 많이 도움이 되었지요.


​또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굉장히 폭력적인 아이를 접해 본 적이 있어요. 그 아이의 경우는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거였는데요. 마침 이 책에서도 <폭력적인 아이>를 다루고 있어서 관심이 가더라고요. 이런 경우 먼저 이유를 파악해야 하는데요. 관심을 받고 싶어서, 스트레스 과다와 불안, 표현 방법을 몰라서 등이 있답니다. 그리고 아이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책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책이 전하는 

우리 아이 습관, 성격, 두뇌, 자존감!

하루 10분, 엄마 아빠는 편하고

아이는 행복한 그림책 육아!


​이렇게 그림책 육아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여겨졌던 <임영주 박사의 그림책 육아>. 혹시 왜 그림책 육아를 해야 하는지 의문인가요? 혹은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한가요? 아니면 지금 우리 아이의 상황에 맞은 책은 무엇일까 궁금한가요? 그렇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림책 육아에 관심이 있는 영·유아를 돌보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정말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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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도 우왕좌왕했다 - 답을 찾지 못해 불안한 당신에게 호빵맨 작가가 전하는 말
야나세 다카시 지음, 오화영 옮김 / 지식여행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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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답을 찾지 못해 불안한 당신에게

호빵맨 작가가 전하는 말


나이 마흔에는 방황하지 않을 줄 알았다. 뭔가 이루진 못하더라도 그냥저냥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마음만은 편안한 삶이 주어질 줄 알았다. 서른을 넘어서면서 마흔을 넘어선 지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힐끔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목격한 그들의 모습에 내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그러다 어영부영 만난 나의 마흔은 사춘기 저리 가라였다.


​이렇게 힘든 마흔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마흔에도 우왕좌왕했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그렇게 호빵맨 작가 야나세 다카시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즐겨보던 만화는 아니었지만 성공한 만화 호빵맨(일본 원작은 アンパンマン앙팡만이다)의 작가라면 누가 뭐래도 성공한 인물 측에 든다고 여겨지는데, 그런 그도 '나는 마흔에도 우왕좌왕했다'라고 밝히고 있으니 흥미가 생겼다.


쉰 살에 시작한 호빵맨을 

일흔에 인기 캐릭터로 만든 

국민 만화가 야나세 다카시에게 

삶을 배우다


1919년 2월 6일 미숙아로 태어난 야나세 다카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부모를 잃고 큰아버지 댁에서 살았단다. 또래보다 약한 체력과 외모는 평생을 열등감에 휩싸이게 해서, 초등학생 때는 목숨을 끊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철도 주위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공예학교를 졸업한 뒤 징병되었을 때는 두 번 다시 고국 땅을 밟지 못하리라 생각했고,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이때의 경험은 나중에 호빵맨의 주제로 빛을 보게 된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그에게 정작 원하는 만화일은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책 제작, 라디오 각본, 방송 출연 등 전업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시(詩)에 관심이 많아서 1966년에는 시집 <사랑하는 노래 愛する歌>를 출간하기도 하고, <시와 메르헨 詩と メルヘン>이라는 시 잡지를 창간하기도 한다. 잡다한 일을 많이 하며 살았기에 금전적으로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성공한 만화가는 아니었다는 야나세 다카시. 그의 나이 쉰 살에 그리기 시작한 호빵맨은 20년 동안이나 주목받지 못했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빛을 발하게 되었을까.


인생, 아무도 모르는 법입니다.


이런 의문은 2장 일의 운과 불운 부분과 더불어 이어지는 그의 인생철학을 읽으니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먼저 그는 운이 수동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한다.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스스로 불러들이게 되고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으려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단다. 야나세 다카시 역시 싸우는 것은 그만두고 좋아하는 것, 그리고 싶은 것에 집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쉰 살이 되어서야 호빵맨을 그리기 시작했고 출간된 후에도 20년 동안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의 나이 일흔에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 끝자락이 되어서야 찾아온 호빵맨의 인기와 전성기. 20년 동안 인기 없던 호빵맨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려왔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스스로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책에는 작가의 생애와 일에 대한 이야기 말고도 정의와 선악, 희망과 기쁨, 어린이와 개성, 생명과 삶의 자세라는 주제를 통해 저자의 철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요한 문장은 별도로 왼쪽에 따로 싣고 있어 다시 읽기에도 편했는데, 되새김하고 싶은 내용이 의외로 많아서 저절로 여러 번 읽게 되었다.


​특히 호빵맨을 떠올리면 저절로 기억에 남고 떠오르는 것들이 많았다. 그는 악당을 쓰러뜨리기보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고, 자신의 얼굴을 떼어내 배고픈 이를 먹이는 호빵맨처럼 자신을 희생할 각오 없이 정의는 실현되지 않는다고 한다. 선과 악이란 언제나 싸우면서 공생하며, 인간은 결점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 자신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창피를 당하며 살았단다. 이렇게 자신처럼 창피를 당하더라도 무슨 일이라도 일단 하면 무엇인가 얻기 마련이라며, 도전하라고 한다.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즐겁다면 그걸로 되었단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안아주기 위해 팔굽혀펴기를 매일 하며 근력을 키운다는 이야기와 성공은 바라서 손에 넣은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것이었다는 그의 이야기가 유난히 인상적이었고 큰 위안이 되었다.


나처럼 재능이 없는 사람은

천천히 달리면 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가다 보면

분명히 한 번쯤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래도 이래저래 살아왔다며, '오늘 하루 살아남았으니까. 내일도 어떻게든 살아보자'라고 말하는 야나세 다카시.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한 사람이었다며,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말로 미소 짓게 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アンパンマン 노래를 되풀이하게 된다.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무엇을 해야 기쁜지 알지도 못한 채 끝나는 그런 것은 싫어!

何が君の幸せ何をして喜ぶ何が君の幸せ何をして喜ぶ分からないまま終わるそんなのは嫌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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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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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필요한 모든 아버지와 아들을 위한,

프레드릭 배크만의 인생소설!"


​한때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이해가 되는 듯하면서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삶의 의미라고 하면서도 하루의 대부분을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매어 있던 그들. 언제나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막상 아이들이 성장하여 떠나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음에 아쉬워하면서도 미안해하는 그들. 마침내 죽음을 앞두고는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며 눈을 감는 그들.


​하지만 또 어느 날에는 아이의 첫 뒤집기를 보지 못하고, 첫 기어감을 보지 못하고, 첫 걸음마를 보지 못하고, 아이가 내뱉은 처음 단어 '엄마'에 못내 아쉬우면서도 감격하던 그들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로서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일생일대의 거래>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오베라는 남자>, <베어 타운>, <브릿 마리 여기 있다> 등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 많아서 프레드릭 베크만의 책이라는 점만으로도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더 큰 소득을 올린 기분이었다. 2016년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에 잠든 아내와 아들 곁에서 써 내려갔다는 이 소설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아버지와의 화해이면서 또한 아들과의 화해일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에게 보내는 화해의 선물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사업가로서는 성공하였지만 아버지로서는 실패한 한 남자가 암 선고를 받는다. 병원에 입원한 그는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는 어른이 보고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며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숨기고 있었다. 엄마가 슬프지 않도록.


​"나는 곧 죽을 거야, 또끼. 사람은 누구나 죽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십만 년 뒤에 죽을 테지만 나는 내일 바로 죽을지 모른다는 것만 다를 뿐이지." 아이는 소곤소곤 덧붙였다. "내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남자는 죽음을 앞두고 과거를 돌아보니 아들에게 책 한 권 다정하게 읽어준 적이 없고, 아들의 생일날 함께 시간을 보낸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내와 아들은 오래전 자신이 출장을 떠났을 때 떠나버렸지만, 자신과 달리 무너질 듯한 술집 바텐더로 일하면서도 행복할 줄 아는 아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자 한다. 자신의 부모님과 동생, 친구가 떠날 때도 보았던 그 사신을 만나 일생일대의 거래를 한다.


​"가족과 못다 한 삶을 후회하는 남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안한 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특유의 따스한 문장 덕분인지, 책은 순식간에 읽혔다. 100페이지 가량의 워낙에 작고 이쁜 책이기도 했지만, 두세 번 읽어도 순식간에 읽힐 책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앞둔 남자는 우리가 그동안 아버지들에게 느꼈던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문화가 다른데도 아버지라는 자리는 같은 무게를 가졌다는 것이 새삼스러웠고,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변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라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처음 부모가 되어 느꼈던 책임감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너무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남자가 보여준 일생일대의 거래를 보며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이 이만큼이나 컸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동안에 그 사랑을 표현하고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했다.


​모든 부모는 가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5분쯤 그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거다.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숨 막히는 부담감을 달래며. 모든 부모는 가끔 열쇠를 들고 열쇠 구멍에 넣지 않은 채 계단에 10초쯤 서 있을 거다. 그저 숨을 쉬고, 온갖 책임이 기다리고 있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용기를 그러모으면서.


​예전에 비하면 이제 아버지들도 엄마 못지않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표현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책임감 때문일까. 뭔가 방향이 다르고 방법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맑디맑은 눈으로 마음껏 그들의 부모에게 사랑을 표현하는데, 책임감에 찌들려 그러지 못하는 부모들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더 이상 나중으로 미루지도 다른 핑계도 대지 말고, 사랑한다면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표현하며 사는 삶이 진짜 행복한 삶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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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람들 - Novel Engine POP
무레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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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의 작가 

무레 요코의 웃음과 힐링을 담은 

이웃집 소설


영화 <카모메 식당>을 참 인상 깊게 봤었다. 어찌 보면 우리가 그러하듯,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나 책을 개인적으로 유독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카모메 식당>도 10번은 넘게 본 듯하다. 그런데 그 <카모메 식당>의 작가 무레 요코가 쓴 소설이라고 하니 요즘 같은 시국에도 결코 지나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무레 요코는 <카모메 식당>이 유일하다. 하지만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보니, 1984년부터 작가 생활을 하였으며, 국내에는 <카모메 식당> 외에도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일하지 않습니다>,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등 많은 책이 번역되어 소개된, 한국인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모가 후루룩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눈 앞에서 훌러덩 옷을 벗을 때마다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마사미는 어쩌다 보니

마흔 길에 접어들었고, 

아직도 부모 집에 눌러살고 있다.


​이렇게 만나본 무레 요코의 <이웃 사람들>은 역시 기쁘게도 <카모메 식당>과 그 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사치에가 헬싱키에서 주먹밥을 주메뉴로 한 식당을 열어놓고는 한 달째 손님을 못 받아도 평온한 일상을 보내듯, <이웃 사람들>의 주인공 마사미 역시 부모님이나 주변의 성화에도 억지로 결혼하지 않고 그녀만의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결혼하지 않은 40세 이상의 여성은 고달프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나 평온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태어나 여태 그랬듯, 여전히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옆집에도 앞집에도 

이상한 이웃들로 가득한 

우리 동네


​사실 책을 읽으며 웃긴 일이 있었는데, 분명 처음에 소설을 만나면서 '마흔의 마사미가 나고 자란 동네의 기묘한 이웃들을 둘러싼 여덟 가지 이야기'라는 띠지의 문장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이야기인 마사미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비혼이 늘어나는 사회를 보여주는 사회 문제 제기 소설로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동네 사람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 긴지로 씨 이야기, 어린 시절 마사미를 마음에 들어 했던 동네 아줌마의 동갑내기 아들 오사무, 이웃과 전혀 왕래 없이 지내는 센다 씨, 어느 날 나타난 인도인 이웃, 이상한 종교를 강요하는 세토 씨,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절규의 숙소 이야기, 동네 사람들에게 저런 부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동경의 부부 센도 씨 내외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냥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구나 싶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이다 보니 어느 정도 현대 사회를 보여주는 면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과거와 달라진 현대인들의 생활을 옅보는 면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렇게만 이해하고 보기에는 아까운 소설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우리들 이웃들의 일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특이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살다보면 한번 쯤 만나는 안하무인인 사람들이 있는데, 소설 속 긴지로 씨가 그런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요즘 매주 만나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어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었다. 센다 씨를 보면서는 외롭지 않을까 싶다가도 여럿이서 지내는 것보다 혼자인 것이 즐거운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을 듯 싶다는 생각도 든다. 절규의 숙소에 살던 갓난 아기의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동네 사람들은 온갖 추측을 하며 아이가 우는데도 달래주지 않는 나쁜 엄마로 몰아가지만, 사실 육아에 지쳐 도움이 필요했던 엄마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동경하는 센도 씨 부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누구나 저런 노부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파트에 살면서 바로 문앞 이웃과도 왕래가 드물어진 요즘. 어린시절 이웃들과의 교류가 그리운 것일까. 다른 듯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유난히 편안하고 정겹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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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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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장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소설!


촌스러운 이름만큼이나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았던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역시 한국소설이어서 가독성이 높은 걸까. 아니다.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이야기들을 지극히 일상적인 문장으로 펼쳐내고 있어서일 것이다.


​따뜻한 남쪽나라 캄보디아 프놈펜에는 호텔 원더랜드가 있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를 그만두고 온 여사장 고복희와 유일한 현지 직원 린이 있다. 하지만 프놈펜은 대단한 유적지도 없고 번화한 도시도 아닌 탓에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 어느 날 린이 '한 달 살기' 시스템을 제안하고, 드디어 한국의 20대를 대표하는 백수 박지우가 이곳에 나타난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는 <오베라는 남자>의 한국판이라는 출판사의 평이 딱이다 싶었다. 무엇이든 타협하지 않고 원칙대로 살아가는 인물 고복희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했다.


​뭔가 이루고 싶으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죽도록 하는 사람들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디스코를 사랑하고 태안을 지키고 싶었던 복희의 남자 장영수를 통해 눈앞의 돈에 눈이 멀어 개발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하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머니 강금자 여사를 통해 먹고사는 일의 부당함을 아무렇지 않게 견뎌냈던 산업역군들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대한민국의 과거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과거에 비해 살기 좋아졌을까? 예전에 비해 살기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최상민, 차은영 부부를 통해 보는 모습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보육 교사였지만 임신으로 퇴사해야만 했던 차은영과 성공하기 위해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미주와 미나, 그리고 남들만큼만 살고 싶다며 캄보디아로 홀로 떠나온 가장 최상민. 하지만 최상민의 사업 실패로 이들 가족에게 불행이 다가오는데, 이런 이들 가족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불행에 빠져있는 우리 사회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세계는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더 잔인한 것은 마치 공정한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마치 대한민국의 지난 세월을 돌아 보는 듯한 캄보디아. 그 속에서 살아가는 교민들의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거를 되돌아보고 어떤 미래를 그리며 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듯했다. 열정 페이를 강요받다가 퇴사한 후 백수가 된 박지우를 캄보디아로 보내면서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편, 이런 세상에서도 융통성 없이 묵묵히 원칙대로만 살아가며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고복희가 오히려 편안한 것은 왜일까. 그런 삶의 태도는 분명 힘겨울 때가 많을 텐데도, 그래도 마음만은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세상에 대해 잘 모르지만 들키고 싶지 않다는 작가 문은강. 하지만 생각의 깊이가 얕지 많은 않다는 것을 소설을 읽어 본 독자는 알아채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 독자들의 가슴을 꽤나 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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