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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이한칸 지음 / 델피노 / 2020년 9월
평점 :
'흰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라는 제목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무엇을 다 덮어버리고 싶었을까? 하지만 눈이 녹으면 다시 모든 게 드러날텐데 괜찮을까? 등등의 생각이 이어졌다.
주인공은 국민학교로 입학해서 초등학교로 졸업한 세대이다. 나도 국민학교로 입학한 세대여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우리 시대에 많지는 않지만 가끔씩 볼 수 있는 그런 남보다 못한 아버지를 주인공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아버지의 행동에 거부할 생각도 못하고 자신의 삶을 전부 빼앗긴 채 살아있는건지 죽어있는건지 알 수 없는 상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저 뜨거운 피가 흐르지만 죽어있는상태나 다름없었다.
작가의 글은 솔직하면서도 섬세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울린다.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쥐불놀이 하는 장면은 내가 그 장소에 서 있었고, 어린나이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할머니의 위험을 외면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죄책감속에 사는 주인공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P 92 "우리 막내는 아직 깃털도 안 난 병아리 같다. 그래도 언니는 이제 중닭은 된다. 할미가 빨리 나아서 올 때까지 고개 숙이지 말고 땅을 보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야 한다."
P 93 이별은 한 번도 너무 많았다.
P 98 그러지 못한 나는 그냥 그렇게 비겁한 아이로 자라나서 그대로 나약한 어른이 됐다. 그래도 나는 내가 아무리 두렵고 나이가 어렸어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 말을 해야만 했다는 것을 안다. 죄책감은 옅어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무섭게도 자리를 잘 잡아갔다. 괴롭다는 말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나는 괴로웠다.
P 146 "어디 다친 곳은 없니?"
"할머니. 저요, 그날 숨어서 아버지한테 맞지도 않고 할머니처럼 피도 안 나고 살아있었어요. 그냥 살아만 있었어요."
"오냐, 잘했다. 잘했어."
읽는내내 주인공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랬다. 몸도 마음도 고단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상태. 어린시절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텐데 주인공은 자신의 몫(죄책감)을 끝까지 가지고 간다. 죄책감과 지옥같은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아무래도 어린날의 할머니와 보냈던 기억들이다. 그 기억들이 주인공이 살 수 있는 힘이다.
주인공이 할머니와 보냈던 유년시절의 기억속의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나 역시도 같이 돌아가서 같이 고추를 따고 소풍날 아침에 일어나서 참기름냄새를 맡았다.
발목의 통증, 코끼리산, 하레, 댄, 언니 그리고 할머니와 아버지 주인공을 둘러싼 것들 이 모든것들이 주인공의 삶을 이끌어간다.
마음이 아련하다. 우리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기에...
[ 이 글은 제공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된 솔직한 후기입니다. ]
할머니. 저요, 그날 숨어서 아버지한테 맞지도 않고 할머니처럼 피도 안 나고 살아있었어요. 그냥 살아만 있었어요.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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