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해부학 - 완전한 질서 너머 삶의 의미를 찾아서
가브리엘 웨스턴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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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끝에 감도는
서늘한 정밀함과 섬세한 연민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인데요. '인문학 전공 출신 외과의'라는 점과 더불어 '의사 겸 환자'이기에 더욱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해부학'을 인문학과 의학으로 따로 접근하는 것도 유용하지만, 만약 같이 접근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요? 이 책이 바로 그 답을 주는데요.

인체를 연구하고 탐색한다는 건
학문이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고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못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요. 이 책은 그런 걱정을 배제합니다. 해부학을 의학으로 접근하는 순간은 지식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표현 방식이 섬세하다 보니, 살짝의 울렁거림과 적나라함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인문학적 접근에서는 사유로서 해부학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뼈, 성기, 창자, 자궁, 허파, 피부, 가슴, 콩팥, 뇌, 간, 심장. 우리를 이루는 존재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고민하게 합니다. 인생에 있어 별개의 존재라 볼 수 있기도 하고, 때론 생명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것만이 전부일까 싶은 생각입니다.

청진기 속 저자의 심장 잡음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해부학적 정보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강화됩니다.








▶ 야단스러운 겨자색의 지방, 이 색깔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내 망막을 강타하는 선홍빛의 동맥, 피막 아래 구불구불하게 흐는 푸른 정맥, 깊은 심연에서 얼음처럼 시릴 정도로 하얀 뼈, 반면에 평범한 일상에서 피부라는 장막을 온전히 걸친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사람이 수술대에 반듯이 누워 수술실이라는 무지개빛 낙원에서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내면을 드러내는 모습과 비교하면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 과학은 보는 것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 발견이 어디서 이뤄질지 항상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진실은 우리가 마음으로 파악하기 훨씬 전에 몸에서 느껴지기도 하다.

▶ 내가 정말로 간에서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일반적인 생리 기능, 곧 평온한 상태에서 간이 선보이는 명연주가 아니라, 위험을 맞이했을 때 간이 보여주는 독특한 대응 방식이기 때문이다.

▶ 우리가 겪는 가장 깊고 힘겨운 순간 중에는 그저 완곡하게 암시하거나 파편화된 형태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런 것들을 과학의 냉철한 언어에 담기는 쉽지 않다. (...) 다시 말해 환자를 보살피려면 그들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한다. 지식과 존재를 완전히 양립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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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극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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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주택 공사현장에서 한 남자가 죽은 채 발견됩니다. 원한이라 생각될 만큼의 자상과 현장에 그대로 버려진 칼. 자택에서 도보 10분 거리밖에 안되는 이곳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남자가 죽기 사흘 전 한 여대생이 교살되었는데요. 두 사건 사이에 같은 범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가 발견됩니다. 그렇게 수사는 하나의 범인을 쫓게 됩니다.









죽은 남자의 이름은 '도코로다 료스케',
그의 주변 탐문을 이어가고,
노트북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는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현실 속 진짜 가족과의 불편한 모습,
인터넷 속 가짜 가족과의 완벽한 모습,
심지어 이름까지 똑같은 가족들!


도대체 그는,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던 걸까요?








아버지의 죽음부터 가짜 가족의 등장까지 '진짜 가족'의 딸 '가즈미'는 온전히 분노에 잠식당해있습니다. 서로 대면한 관계였지만 가족이라는 건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말이죠.

참고인으로 출석한 가즈미는 '가짜 가족'들의 심문 과정을 참관하는데요. 가즈미는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도 이상하게 손은 바쁩니다. 자신을 걱정하는 남자친구에게 보낸다는 문자, 그리고 어딘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두서없는 언행이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가즈미'는 무엇을 쫓고 있는 걸까요?
아니, 아버지 '료스케'는 무엇을 쫓은 걸까요?


책의 마지막에 '나비'라는 시가 나오는데요. 이 책의 마무리로서 적절하지 않나 싶네요!






▶ 우리는 다들 외로워.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도저히 진정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진정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독한 거야. 마음을 이어줄 끈이 필요해.

▶ 그렇게 보이는 외면과 그러한 내면, 어느 쪽이 진실일까? 도코로다 료스케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었을까? 그는 가즈미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 정의요. 누구든 이기심 때문에 남을 상처 입히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받는 거야. 그뿐이에요. 당연한 일이죠.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에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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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세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시공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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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라는 뜻에는 사람의 머리도 있지만, '인수감염'할 때 사용하는 '인간과 짐승'으로도 쓰입니다.

인수세공
인간과 동물, 정밀한 수공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에 있어 뛰어난 권위자의 아버지를 둔 아이는, 생후 3개월부터 이식수술을 받아왔습니다. 심각한 병에 걸린 상태로 태어났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알고 싶습니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인지!

아빠가 죽고 일 년 후, 아이는 아버지가 남긴 자료들을 하나씩 들쳐보기 시작합니다. 알 수 없는 자료들이지만, 수술 영상을 하나씩 볼수록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더욱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대부분의 장기가 돼지 장기로 이루어진 자신... 인간돼지......

아이는 자료를 계속 헤집습니다.
자신이 인간임을 확실한 증거를 위해,

하지만 결국 유카는 무너집니다. '1'이라고 적힌 비디오를 재생시킴으로써... 아이는 진실을 찾아냄으로써 영혼의 해방을 원했으나 결국 그 끝에 다다른 건 그 반대였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생각합니다. "멍청한 놈들! 간암이라고! 알 게 뭐야! 내버려둬! 내 몸속에 돼지를 넣지 마! 더러워 죽겠네!!"







▶ '인간돼지'라는 말은 그날 내 마음 속에 얼룩처럼 스며들었다.

▶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반드시 한다. 그리고 그 생물이 탄생한 이상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과연 그 생물은 인간인가, 돼지인가?

▶ 나는 나 자신을 괴로움에서 해방해줄 지식을 찾고 있다. 나는 늘 정체 모를 불안에 시달려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아버지는 왜 나를 키웠는가? 그런한 불안은 전부 무지에서 비롯됐다. 진실을 알면,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면, 불안은 사라질 것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무지보다는 낫다.

▶ 그들은 즐긴 것이다. 인간의 존업성을 난도질하면서, 돼지와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놀면서 전지전능함에 취했을 따름이다.

▶ 아아, 아버지가 죽기 전에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멍청한 놈들! 간암이라고! 알 게 뭐야! 내버려둬! 내 몸속에 돼지를 넣지 마! 더러워 죽겠네!!" 돼지 장기 이식은 더러운 일이 아니라고 사람들을 계몽해온건 아버지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버지는 분명 나를 계속 경멸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인간돼지를.

▶ 하지만 아버지가 남긴 기록 속에서 내가 찾아낸 것은 영혼의 해방이 아니었다. 반대였다. 그걸 봉인함으로써 나는 겨우 나로 지낼 수 있었던 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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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는 왼쪽에 - 『자본』의 세계사와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
강신준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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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답이 없다 생각해왔던 자본주의 시대, 마르크스 [자본]을 통해 세상의 출구 가능성을 찾아보는 책입니다.

책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내가 알던 마르크스는 도대체 뭐였지?'







2025년 4월 미국의 무역 적자 해소를 명목으로 터무니없는 관세가 부과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최소한의 선으로 지켜왔던 상식을 무너뜨립니다. 극단적 자기중심주의가 깔려있는 시대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미국만의 변화가 아니라, 전 세계 그리고 모든 곳곳에서 이런 사건들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시대의 징후가 되어 기이한 개인을 통해 터져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들은 '극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야만'으로 부릅니다. '문명'의 시대를 삼켜버린 '야만'입니다.







그들은 시대가 변화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고, 미래적 가치를 생각하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중심이 '자신'과 '현재'에 있습니다. 미래의 가치보다 현재 자신의 이익이 우선입니다. 또한 자신만의 '옳음'만이 진리이기에 다른 건 전부 '배척 대상'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과거에는 수탈의 역사로,
현재는 독점과 불평등으로,
미래에는 계층의 분리로......








마르크스는 경제와 정치를 토대로 사회적 선순환을 지향합니다. 그 안에서 지금 당장의 이익만 추구하는 행위나, 불평등으로 선순환을 막는 행태를 비판합니다. 대의를 위한 희생보다,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당연시합니다. 예를 들어 당장의 임금 인상을 위한 쟁의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공정한 임금 활동을 법적 테두리에 넣는 걸 추구합니다.

그동안 알던 마르크스는 뭐였을까요?
또한 자본주의의 끝은 어디일까요?







▶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극에 달했고, 내부에서는 계급 간의 적대, 외부에서는 국가 간의 적대로 살육과 전쟁 위협이 최고조로 달아올랐습니다. 그 결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유대인 대량학살입니다.

▶ 인류는 자본의 축적을 촉진하기 위한 간단한 방법을 채택했는데, 자본의 소유자와 노동의 소유자로 인류가 분리되는 것이었다.

▶ 마르크스는 사회의 구조를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기초에 '먹고사는 문제'를 놓고 그 위에 다른 모든 것이 얹혀 있는 형태로 파악했습니다. 이것을 각각 토대(경제)와 상부구조(정치)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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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낱말들 - 아름다운 낱말 하나를 얻는 순간 세계는 곱절로 선명해진다
박완서 지음, 호원숙 엮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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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맛있다!
이 표현이 무조건 맞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요즘 저에게 있어 지친 하루 문득 꺼내드는 책 중에 하나인데요. 읽다 보면 그냥 기분이 아득해집니다.

최근에 아이 편지에도 이런 한글 낱말이 있다면서 적어주었는데요. 아이도 참 신기해하더라고요!

사근사근 / 고물고물하다 / 옥시글옥시글 / 꽃구름 / 나스르르 / 미몽 / 나비잠 / 옴니암니 / 요요하다 / 야죽야죽 / 트릿하다 / 훗훗하다 / 재재거리다 / 구메구메 / 꼬약꼬약 / 알른알른 / 더펄더펄 / 희떱다 / 보얗다 / 짜득짜득 / 어름어름 / 천부당만부당 / 이채롭다 / 청청하다 / 얕얕하다







* 난분분하다 *
품사-형용사,
눈이나 꽃잎 따위가 흩날리어 어지럽다

언덕길에서 또 한차례 벚꽃이 졌다, 어지러이, 그러나 소리 없이. 아! 그녀는 가시에 찔린 것처럼 신음하며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난분분한 낙화 속을 신부가 탄 차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서 있는 여자,126쪽>







* 지딱지딱 *
품사-부사,
서둘러서 일 따위를 하는 모양

색시가 새초롬허니 풀이 없는 게 싸웠나 보던데 싸운 건 그저 그날로 지딱지딱 풀어야 써. 껴두면 큰 병 돼.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 216쪽>






그와 나 사이엔 암만해도 딴 낱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무도 안 써본 슬프고 진한 어휘가. <나목>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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