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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시대를 위한 변명 - 속박과 방종의 경계에 서다 ㅣ 자치통감
권중달 지음 / 도서출판 삼화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자치통감 행간 읽기 시리즈 중 하나.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그 이전 사람도 그 이후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일들이 발생한다. 특히 사상의 기반이던 유교 격식이 파괴되면서 독특한 행위의 역사가 기록된다. 이 책은 왜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그런 기행들이 많이 발생을 했고, 그것이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
유방이 한나라를 세워 중원을 통일한 뒤 얼마후 유교는 국가 기강을 잡는 데 도움이 돼 나라의 사상으로 완전히 자리잡게 된다. 그렇게 수 백년이 흐르고 유교식 명분과 예절은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인지상정이 됐다. 하지만 유가의 가르침은 정치에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仁에 근거한 질서는 뒷전이 되고 오히려 명분과 허례허식을 추구하는 껍데기만 남게 됐다. 명과 실이 분리된 것이다. 사상이 현실을 떠나 고루한 이론이 됐다. 그러면서 허례허식이 이미 삶의 한 가운데까지 침범하자 사람들은 이에 질려버렸다.
때마침 외척, 환관, 지방 실력자들이 일어나면서 황제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예와 명분은 지난 시대의 낡은 말이 됐다.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는 백성까지 이를 벗어던지기 시작했고 파격을 흠모했다. 누가누가 더 파격적인 행동을 하느냐. 이제는 허례허식을 타파할 수록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파격은 자유를 낳았지만 자유의 다른 이름은 혼란이었다. 누군가의 자유는 누군가의 방종이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없었다. 누구는 노장 사상을 누구는 불교를 숭상하며 구습을 버렸다. 자연스럽게 기행이라고 불리는 아웃라이어들이 발생했다. 간음하고 살육하는 안하무인의 기행도 있었다. 불교에 심취해 황위를 선양하는 기행도 있었다. 오랑캐 출신이라는 황제가 중원 출신이라는 황제 보다 더 열심히 유교 예절을 챙기는 것도 기행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다만 기행만 있었다.
이는 현대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다. 오래동안 내려오던 생각이, 사회의 합의가 깨어졌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고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 여러 대답이 존재하게 됐다.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 개성을 존중하게 됐다. 그러나보니 난해한 일탈도 많아졌다.
다시 수 백년이 지나 송나라에 이르면 통치기강을 다잡으면서 성리학이 사상의 기틀이 됐다. 질식할 것 같은 규범에서 극도의 혼란으로 치달은 다음, 도로 옥죄는 규칙으로 갔다. 송나라 이후 사회는 합의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우리 사회는 아직 합의까지 갈 길이 먼 것 같다. 다만 혼란한 시기를 헤쳐가기 위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자면 허례허식을 멀리하고 본질을 추구하되, 무엇을 추구하는 것인지 깊이 고민함으로써 파격을 위한 파격에 이르지 않게 조심해야 하겠다.
위진남북조를 위한 변명은 저자의 다른 책 황제뽑기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왜 그렇게 빈번하게 또 번번히 황제를 갈아치울 수 있었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각 황제의 다른 면도 조금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