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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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계 최초 ‘휴고상’ 3회 연속 노미네이트 작가, 이윤하




우리나라보다 해외 독자층이 환호하는 한국계 작가와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얼마 전 허주은 작가의 <사라진 소녀의 숲>을 인상 깊게 읽었다. 허주은 작가와는 달리 이윤하 작가는 역사에 판타지를 덧칠해 한국적 요소를 가미했다. 누가 봐도(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일제강점기가 떠오를법한 작품이었다.⠀



화국은 6년 전 라잔 제국에 점령당해 ‘14행정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옛 화국을 상징하는 음양 태극무늬 붉은색과 푸른색은 조선, 라잔의 상징 태양과 벚꽃은 당연스레 일본.

주인공 기엔 제비는 언니(봉숭아)로부터 자매 이상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림으로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하나 자국민 위주로 채용하는 라잔 제국에서는 쉽지 않았다. 제비는 사채를 끌어 라진식 이름을 개명해 성명인증서를 소지하게 되었다. 라잔식 이름은 테세리오 트세난. 꽃눈이라는 뜻이다.



제비는 예술성 시험장에서 그림을 제출하면서 라잔 이름을 사용했다. 주변에 실력을 곁눈질해본 제비는 이번 시험에 붙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낙방. 그 와중에 언니에게 성명인증서를 들켜버린다. 언니의 아내 지아는 독립운동가로 전쟁 중에 전사했다. 동생이 부역자로 가담하는 걸 참을 수 없었던 봉숭아와 살림을 돕고자 했던 제비는 끝내 싸우고 헤어진다. 밤을 보낼 곳을 찾다가 친구인 구미호족 학을 찾아간다. 학은 따듯하게 맞았고 그녀를 돕는데 애쓴다.



라잔 방위성의 장관 대리 ‘하판덴’이 제비에게 방위성 소속의 화가 자리를 제안하는데 호봉이 높은 편이었다. 얼마 전 사망한 미술부장의 자리를 제비에게 권유한 것이다. 그녀는 방위성 안에서 아라지(기계용)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된다. 하판덴는 아라지를 전쟁 병기로 사용하기 위해 생명을 부여하는 마법의 문양을 그려 넣을 사람이 필요했다. 놀라운 건, 그 문양의 안료가 화국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희생시켜 만든 것이다.. 이 미친 상상력은 무엇.. 마법의 안료를 얻기 위해 화국의 골동품과 희귀품들이 박살 나는 광경..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비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약탈해간 조선의 유물들이 떠올라 열불났던 장면.



방위성 수석 결투관이자 자신의 감독관인 드주게 베이에게 자꾸 끌리는 제비. 언니의 아내를 죽인 자임을 알게 되었음도 그를 향한 마음은 멈추질 못한다. 아라지를 전쟁병기로 이용하기에는 천성적으로 평화주의적인 면모만 보이고 제비는 아라지와 방위성을 탈출할 계획을 한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에는 주로 여성들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폴리아모리(다자연애) 관계를 이어가는 여성들이 주를 이룬다. 봉숭아와 지아, 제비와 베이 이들의 사랑은 격정적이다. 사랑하는 모양도 이색적이다. "그녀는 제비의 손바닥에 대고 자신의 손가락을 꾹 눌렀다. 지금껏 그가 경험한 중에서 가장 강렬한 키스였다."



이들의 사랑이 보통(편견)의 시선으로 읽는다면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성을 제외하면 사랑의 본질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속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을 보며 나는 샘 스미스를 소환해 그의 음악에 귀 호강을 해본다. 라잔을 위해 충성했던 베이가 제비와의 사랑으로 화국의 독립에 합류하는 아름다운 장면.. 사랑이 다 이긴다는 것은 진리 오브 진리임을 각인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알고 있는 역사에 sf를 입혀서 그런가. 익숙한 것 같은데 뭔가 툭툭 새어 나오는 보통이 아닌 색다름이 이 소설의 매력이겠고, 작가의 개성으로 보여진다. 전작을 찾아보고 싶다. 저자의 유니버스를 더 구경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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