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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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은

소비를 통해, 소유를 통해, 그리고

소비와 소유에 대한 사유를

통해 정의되는 것 같다.

반려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동무'라는 의미로의 쓰임이 많아졌다. 반려견, 반련묘, 반려식물, 반려돌.... 생물에서 사물까지 점점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사물에 애칭을 부여하고 애정을 주는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외화 드라마 '전격 z작전'에서 인공지능 자동차는 '키트'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 후부터(그 전일 수도) 사람들은 자신의 자동차에 이름을 지어주곤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물론 빠방이는 폐차전까지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요즘은 로봇청소기에게도 반려돌에게도 이름을 지어준다. 무생물에게 가상의 자아를 심어주는 우리들은 참 사랑스러운 존재다.

물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실용성을 떠나 순수하게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구매한 물건은 무엇이며 얼마나 절제하지 못했던가를. 소비패턴을 보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일부는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소비와 소유에 대한 사유가 한 사람을 정의한다는 말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다.

생계형 변역가인 저자가 꺼낸 반려 물건 이야기 속에는 여러 가지 사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유산 책장, 외할아버지가 처음 사주신 바이올린, 웨딩드레스, 찻잔, 인모가발, 트렌치코트, 작업실, 건조기, 의자, 신발, 만년필, 노트 등. 가끔은 나와 같은 생각들도 묻어 있어 더 공감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물건을 사 책을 버리지 못하는 저자는 말한다. '언젠가 읽을지도 모를 책은 언젠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라고. 책을 만날 당시 나의 상황에 따라 밑줄 문장이 달라지는데, 언젠가 또 다른 문장으로 가슴이 떨릴지 모르는데 어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읽지 못한 새 책은 더더더 버릴 수 없다.

저자는 36세에 갑작스러운 암진단을 받고 급하게 항암치료가 들어가면서 부작용에 대비한 소비를 해야 했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인모가발과 두피샴푸를 구매하면서 죽음의 벼랑 끝에 세워진 사람들을 겨냥한 거대한 사업을 체험하게 된다. 죽게 생겼는데 이 정도 소비도 못 하냐는 심리가 발동되어 흔히 말하는 보복 소비를 하게 되는데 이걸 제일 잘 아는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작년이 암진단 받은지 5년차였다. 그녀는 이제 환우들에게 인모가발을 나눔하려고 한다. 일종의 보복 기부를.

⁂ 새 물건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그 물건을 구매할 때 느끼는 짜릿함보다 물건과 오랜 관계를 지속하면서 더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세월이 지날수록 물건이 나의 존재를 반영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돌보는 존재다.


⁂ 마음에 꼭 들지 않으면 사지 않기.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물건을 사기.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이 아니라면 미련 없이 남에게 주거나 버리기. 가만 보니 이 원칙은 새 인연을 만들 때도 쓸 수 있겠다.

⁂ '왜'라고 묻는 일은 어렵다. 무턱대고 살면 편한데 '왜'라고 묻는 순간 우리 삶이 경로를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질문하는 일, 그것도 어려운 질문을 골라 묻는 일은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버릴 수 없는 나의 책들을 볼 때마다 내가 새겨보는 다짐이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사랑한 물건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영혼이 깃든다고 말에 크게 공감했던 나. 물건을 버리는 것도 추억을 버리는 것 같아 쓰린 가슴에 자꾸 미루게 된다. 정리전문가는 사진으로 찍어두라고 하지만 사진에는 영혼이 없는데 어쩌란말인가.





이 책에는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알고 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역자 고 이윤기 선생님이었다. 세상에나!! 첫 꼭지에 주제 아버지의 유산이었던 그것이 고 이윤기 선생님의 책장 이야기였다니! 다시 돌아가 읽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장기 프로젝트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그녀에게 성취감에 앞서 그를 향한 그리움일 것만 같다. 젊은 나이에 암진단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은 이전과는 다른 삶의 깊이를 보았을테지. 부녀의 합작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궁금하다. 얼른 데려와 읽어봐야지.



-출판사 지원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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