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
신주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햄의 기원>


화자는 대학 동기였던 햄의 부음을 잠적한 옛 연인 화 씨의 전화를 받고 장례식에 간다. 기괴한 행위 예술가 햄은 기어이 말 혈청을 수혈받아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지내다 죽고 만다. 예술을 숭배하는 연출가인 화 씨는 자신이 돌연 사라진 이유가 시각의 확장이 일어났고 곧 눈이 소멸해 버릴지도 있기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앞을 보고 있지만 자신의 뒤통수가 보인다는 둥.. 그녀는 같이 병원에 가주길 바랐다. 오랜만에 재회한 화 씨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화자를 뒤흔든다. 자신이 놓아버렸던 예술의 신이 어째서 그녀에게는 쉽게 닿을 수 있었는지! 혹시나 그녀의 눈이 기능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고자 함께 병원에 간다. 역시나 외과적 기능은 정상. 화 씨는 병원을 다녀온 후 정상인의 눈은 버리고 예술가적 눈을 취하게 된 사람처럼 앞을 가누지 못한다. 그런 그녀 곁에 그는 보통의 눈이 되어 머물기로 한다. 



한때 예술을 하던 화자가 현실과 타협해 보통의 삶을 견뎌왔더라도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붓을 잡지는 않는다. 다만 예술을 추앙하는 습성은 버리지 못한 그는 갑자기 사라진 연인에게 각성된 예술적 형질이 그녀에게 위해가 될지도 모르기에 곁을 지키기로 하는 것 같았다. 햄과 화 씨에게 예술은 자기 파괴적인 탈출구이며 세상을 견디는 방법이었다는 해설을 보며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마다의 신>


혼자인 주영에게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안겨준 직장 동료 여진언니. 주영은 SNS에 고양이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 수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희락이었고 자신이 외롭지 않음에 대한 안심이었다. 주영의 그런 마음을 파고들어 사이비 종교 세계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여진. 끝내 주영에게 전도를 유도했고 주영은 여진과 같은 방법으로 파트매니저에게 다가가 만남까지 주선한다. 그 후 여진과 파트 매니저 함께 있던 종교인이 나란히 확진자로 판정되어 주영은 가해자로 내몰린다. 기자들이 집 앞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걱정되었지만 코로나 판정이 나오기 전에는 차마 들어가진 못하고 있었다. 며칠 후 음성으로 판정. 주영은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지 못한다. 기도가 무슨 소용인가. 고양이의 죽음도, 무엇도 막을 수 없는데. 



'너는 집주인에게 사정했어. 아직 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고. 집주인도 문제는 코로나가 아니래. 문제는 네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거래. 실은 그게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거라고.' 





<허들>


화자가 유서를 쓰기 시작한 시점과 이유, 엄마에게 쓰는 편지 느낌의 단편이다. 


남동생의 유학비를 온 가족이 충당해야 하는 이유를 십일조에 비유하는 엄마의 말에도 화자는 이기적으로 남동생과 다른 비자로 미국으로 떠나 알바를 하며 공부한다. 그리고 결혼,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했고 혼자 버텨내는 중이다. 결혼 직전 파혼을 선언했던 직장 동료 언니가 다시 그 사람과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내밀었지만 되돌려주었다. 조금 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거라던 언니. 안전, 평범하게 사는 것을 선택했다는 언니의 말이 거슬려 잠이 오지 않는다. 부당함과 불평등을 참으며 쟁취한 안전에서 나는 존재하는가?


'삶은 돈이 들어. 생존은 그보단 덜 들고 존재하는 것? 실은 그게 가장 비싸지.'


'나는 어쩌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잘 자 아가, 나무 꼭대기에서>


'결국 살리지 못했어. 뭘 아는지 개도 눈이 촉촉하고 그런데 개가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제 새끼를 먹고 있는 거애. 오독오독 소리를 내면서.' 



'그거 본능이에요. 다른 새끼들이 다칠까 봐 죽거나 약하 새끼를 죽여 없애는 모성본능.' 



'실은 엄마가 되는 게 너무 두려웠다고, 그 아름다운 포장을 도무지 훼손할 용기가 없었다고. 자백하듯 윤희는 말했다.'




<소년과 소녀가 같은 방식으로>


탈북 소년이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자 삶의 문제에 맞닥뜨리며 겪는 내면의 소리. '이게 더 나은 세상이 맞는지' 


'영도는 자신을 이물처럼 대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빨간색을 반대하는 쨍한 파란색이라는 것을'




<로즈 쿼츠>


모든 단편이 무겁게 읽히고 가슴 아팠지만 <로즈 쿼터>에서 방점을 찍게 되었다. 서로가 피해자에서 가해자인 모녀의 이야기. 

'나는 나로 살아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나로'

아빠의 바람 때문에 이혼한 줄 알았는데 5년 만에 다시 재결합한 엄마의 입에서 나온 고백 같은 말에 화자는 온전히 이해를 못 한다. 다만 예전의 그 달콤한 엄마 집으로 더 이상 가지 못하는 서운함만 느꼈더란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의 죽음을 앞두고 그곳, 서빙고동의 집으로 향했다. 화사하게 미소에 생동감이 온몸을 휘감았던 엄마의 그 시절. 유일하게 엄마가 자신으로 살았던 그 집. 엄마의 연애를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의 미련한 행동이 다시 엄마를 여자가 아닌 엄마로 살게 했고 그녀 또한 동일한 수순으로 이혼을 한다. 양육권과 전 재산을 포기한 화자에게 엄마는 물었다. 정말 이유가 남편의 외도냐고. 딸은 말하지 못한다. 나도 엄마와 같은 이유라고. 그렇게 자신이 당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엄마를 밀어 넣고 있으면서 끝내 엄마가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화자. 





'평범을 요구하고 그들에게 이러한 삶을 강요하는 그러한 사람들'


평범이 세상 젤 어렵다. 정해진 역할을 하느라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일상은 안전할 지는 몰라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정해진 역할을 하느라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 견디는 삶에 익숙해지는, 무기력해지는 이들의 이야기들로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 책의 사람들은 삶을 버텨낸다. 사회적인 시선의 허들을 넘으려 서슴없이 자신을 파괴한다. 작년에 읽었던 <안락 사회> 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웠다. 공허함과 무기력. 슬픔. 지금의 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결국은 나의 공간을 마련하고 나눌 수밖에 없다. 마음 속에 내자리는 늘 확보하며 스스로 나를 지켜내야 한다. 또한 나의 슬픔과 너의 슬픔에 공감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조금씩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삶이 고단하고 잔인하더라도 함께라면 기꺼이 견딜 수 있다.



--

* 출판사 지원도서로 개인적인 소견을 담아 작성하였습니다.

#허들 #신주희 #자음과모음#소설 #한국소설 #신간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