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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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년 조선, 열세 명의 소녀가 사라졌다!


제주의 숲속에 숨겨진 슬픈 진실


이제는 알아야 할 우리의 이야기




한국 이름이지만 대부분은 캐나다에서 삶을 지낸 저자의 한국 역사 소설. 영어로 출간되어 역번역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담긴 이야기. 독특한 이력에 끌려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운이 좋게도 선공개된 가제본이 내게로 왔다. 




5년 전, 숲속에서 자살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그 자리에는 환이와 매월이 함께 있었다. 환이는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고 매월은 하얀 가면의 사내를 목격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5년 후, 여인이 신비 복장을 하고 배에 몸을 실었다.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제주 노원으로 가는 길이다. 그녀의 아비 민 종사관은 조선에서 제일가는 수사관으로 사라진 열세 명의 소녀 사건을 수사 중에 실종되었다. 민 종사관에게는 여식이 둘이 있는데 아비와 똑같은 재능을 가진 첫째 딸 민환이와 신의 부름을 받은 민매월이다. 가족들이 제주도를 떠날 때 매월은 남아 노경 심방을 도우며 지내게 된다. 



5년 만에 재회한 자매 사이는 그닥 애틋하지 않았다. 매월에게 환이는 아버지에게 늘 먼저인 자식이었기에 열등감을 품고 지냈으며, 제주도를 떠날 때 자신만 떼놓고 모두 갔다며 가족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더랬다. 그러니 언니가 달갑지 않아 퉁퉁거리기만 한다. 



그러던 중 신당에 동네 사람들이 찾아온다. 열세 번째 소녀 시신을 찾았으니 어서 가서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한다며 무녀를 모시러 온 것이다. 그 길에 환이도 동행하고 소녀의 시신과 주변을 보며 추리중에 시신을 검시하는 유선비를 보게 된다. 허술하면서도 예리한 이 남자 뭔가 있을 거 같았는데 ㅋ 



사라진 소녀들의 사건에는 아버지의 실종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환이. 과연 이 사건을 해결하고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매월이와도 화해할 수 있을까.





공녀는 돌아올 기회가 있어도 돌아오지 못한다네. 대부분 조선에 당도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 67



믿음. 아버지의 일지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였다. 믿음이라 절실한 마음이고, 어떻게 해서든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욕구였다. 이 나라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게 도와주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내게 증거 없는 믿음은 미신이었고, 미신은 약한 사람이나 매달리는 것이었다. 104




기억해야 했다. 아버지의 실종의 진상이 정말로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있다면 어쩌지. 내가 기억을 찾지 못하면 아버지도 찾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내 탓이었다. 105




나는 너희 둘 다 사랑했단다.

처음부터 그랬어.

너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부디 서로를 아껴다오. 273




그 순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다. (중략) 나는 아버지의 일지를 읽으면서 자랐고 이곳 제주에서 내 재능을 알아차렸다. 내게는 뒤엉킨 매듭을 푸는 재주가 있었다. 매듭을 하나하나 풀 때마다 이 세상과, 이세상이 멋대로 내려주는 속앓이의 의미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았다. 414


작가는 고려 시대 학자였던 이곡이 원나라 황제에게 공녀 제도를 없애 달라 청한 편지를 우연히 보게 되어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 상소문이 쓰여질 당시 1232년부터 약 80년동안 끌려간 공녀의 수는 2천여 명이고 그 외 비공식인 경로를 더하면 훨씬 더 많은 소녀들이 인간 공물로 소모되었다고 하니.. 위안부만큼이나 아픈 역사이지 않은가. 애달프고 기막힌 역사는 작가를 흔들어 이 소설에 방점을 찍게 했다. 




이 소설은 시작하면 단숨에 읽어버릴 만큼 가독성과 몰입감이 대단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닌데도 이 책은 꿀떡꿀떡 잘 넘어가서 희한하네 하며 읽었더랬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다른 언어를 사용한 저자였음에도 한국의 한(恨)을 제대로 녹여냈으며 여성 탐정이라는 희귀한 캐릭터를 조선 역사에 입혀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었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었지만 이 작품이 세 번째이며 앞서 두 작품 다 배경이 조선시대라고 하는데 나머지도 어서 번역되어 읽어보고 싶다. 시작은 다소 어두웠지만 마무리는 훈훈해서 기분 좋게 덮은 책이다. 역사, 추리 덕후들에게 추천. 





*출판사 창비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 소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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