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 영화관 소설집 꿈꾸는돌 34
조예은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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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돌베개 출판사의 도서관 소설 「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를 인상 깊게 읽었고, 뒤쪽 책날개에 다음 편인 영화관 소설 출간 예고를 보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이 주는 감동과 철학적인 사념을 즐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내 마음을 뭉근하게 끓어오르게 만드는 몇몇 국내 작가를 만났더랬다. 누구처럼 십 년 넘게 소설을 읽은 사람이 아니기에 많은 작가를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인지 앤솔로지 작품에 좋아하는 작가분이 보이면 유독 반가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엔 영화관 이야기라니! 





「캐스팅」은 영화관을 소재로 한, 국내 작가 7인의 빛깔이 담긴 소설이다. 첫 번째 주자 조예은 작가의 작품 <캐스팅>은 어느 날 영화 속 장면 속에 배우가 도끼에 머리가 찍힌 채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 그리고 화자와 함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내용이다. 늘 주목받던 화자가 부상 후 다시 뛸 수 없게 되자 세상에 엑스트라가 된 것처럼 무기력하게 지냈는데 이 사건을 통해 내면이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말처럼 조연이 주인공이 된 청춘 모험담이었다.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큰 위기 없이 퇴장하는 조연도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던 극장 직원 리라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윤성희 작가의 <마법사들>은 뒤꿈치가 내려가지 않는 아이와 후드티를 벗지 않는 아이가 함께 가출한 이야기였고, 김현 작가의 <믿을 수 있나요>는 인간이 필요로 만든 AI를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시대에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내용이었다. 





박서련 작가의 <안녕, 장수 극장>은 작은 도시 마을 폐업을 앞둔 장수극장이 중학교 축사 영상을 기점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되는데 오랜 시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극장에서의 추억과 역사들이 무척이나 애틋해 보였다. 나는 운이 정말 좋게도 어린 시절에 영화와 가까운 환경에서 마음껏 영화를 구경했다. 극장 거리 남포동(부산)은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였더랬다. 그 당시 부산 남포동에는 많은 극장이 있었다. 동아극장, 국도극장, 부산극장, 대영극장 등 이보다 더 많았을 텐데 오래되다 보니 기억이 안 난다. 





나의 첫 영화는 SF 영화 '우뢰매'였다. 아마도 제일극장이었을 것이다. 당시 지인찬스라는 명목으로 상영 종료 후에 남아 연달아 또 봤다. 그 시절 정말 많은 영화를 마음껏 봤다. 물론 청불은 볼 수 없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변했다. 대부분의 극장들이 사라졌고 그나마 제일극장이었던 자리에 CGV가 들어섰다. 지금은 사라진 영화간판 작업하는 곳에서 한참을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정은 작가의 <사라진 사람>은 스크린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을 목격한 소녀는 친구에게 의논하지만 왠지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하게 되는데, 오래 같이 산 사람은 공간으로 대화를 한다는 소녀의 엄마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사라진 아버지가 사실은 작별 인사를 했다는 그 방법은 공간의 작은 변화였음을 그녀는 알아차렸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그 대사에 물먹은 솜이 마음에 툭 얹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빠와 무수한 시간을 함께 한 엄마만이 알 수 있었던 것일 테니. 





조해진 작가의 <소다현의 극장에서> 비혼주의자였던 여성이 그날 이후로 외로움과 이별하고 사람과 부디껴 살기로 한 단편소설이다. 보육시설에서 봉사 중 만난 12세 소녀를 입양하면서 조금 색다른 조건을 내건다. 다현의 방식은 양육에 대한 관점을 재구축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입양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보육원에서 처음 만난 아이가 보호종료기간이 되자 입양했던, 이모 삼촌을 멈추고 진짜 엄마 아빠로 되어준 배우 부부도 잠깐 떠올랐다. 다현의 방식은 긴 관점에서 인생 친구를 사귄다는 가벼운 마음이라 입양과 양육에 더 필요한 자세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정현 작가의 <여름잠> , 식민지 조선 영화 산업을 공부했던 미국 노부인이 사라진 영화관을 찾는 내용으로 잠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도 작가님의 고유성을 볼 수 있다. 아키비스트로서 역사적 아픔의 장소가 출현시켰다.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시간, 되풀이되어선 안 될 우리의 역사를 다시 떠올려본다. 




일곱 가지 무지갯빛 영화관 단편 소설 모음집이었던 <캐스팅>에서 다양한 이야기 속에 우리들의 흔적과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이야기 속에 영화관 에피소드로 지난 추억을 데려와서는 턱을 괴고 한동안 젖어있게 만들곤 했다. 깊어가는 이 가을, 바스락 단풍길을 걸은 후 벤치에 앉아 읽기 너무 좋은 책이었다. 




※돌베게 출판사 서평단 지원도서로 개인적인 소견을 담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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