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회 - 나우주 소설집
나우주 지음 / 북티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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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회리뷰

8편의 짧은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다.독특한 일러스트의 커버, 예사롭지 않은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책친구의 리뷰를 슬쩍 훑어보고는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긴장의 파고가 높아진다. 며칠을 끙끙대며 읽어내려갔는지 모른다.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했다.


술주정뱅이의 딸이란 것도, 알몸으로 머리채를 잡힌 여자의 딸이란 것도 부끄러웠다. 이 모든 게 다 나 때문이었다. 이제 더 이상, 엄마를 위한 다락방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죽이기로 했다.<코쿤룸> 중에서

락스로 자신마저 정화될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이제 그만 자신을 용서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아니었어도 아빠는 엄마를.... 그리고 엄만 오히려 네가 미안해할 것이라고. 아빠도 용서했을 것이라고. 부모는 자식이 어떤 잘 못을 해도 용서하는 존재라고. 너만 너를 안아주면 된다고.


<코쿤룸> <집구석 환경 조사서> <기억의 제단(祭壇)>에는 가족사가 담겨있다. 이야기 속 화자는 가족으로 인해 자신을 조금씩 소멸시킨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책에서 빚어진 내 감정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더랬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위험한 사랑을 한다. <아름다운 나의 도시>의 허세 청년은 부유층 삶을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지게 생겼는데도 끝까지 허세를 버리지 못했다. <안락사회>는 안락사를 앞둔 개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봄의 시>. 모교 교수의 한국문학을 독일어로 공동 번역을 하자는 제의를 받는다. 그런데 교수는 전혀 일을 하지 않았다.대충 먹고, 날밤을 새며 혼자 일을 끝내고 완역본을 교수에게 제출했다. 며칠 원고를 검토한 교수는 몇 군데 수정하고는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제일 앞에 삽입하고는 교수 자리가 나면 추천해 주겠다는 말로 퉁쳤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길로그녀는 쓰러진다. 번아웃 증후군에서 극복하지 못한 그는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 속에 섞이면서 조금씩 자연의 순리를 깨닫게 된다.

나우주 작가의 집필 시작 이후 16년 만에 펴내는 첫 소설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많은 생각들이, 고민들이 마음과 머릿속을 헤쳐 나오게 만드는 필력이다. 모두가 평범한, 일상적이 않은 서사를 일상적인 무드로 소설에 풀어냈다. <봄의 시>의 조미자 할머니의 대사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에 공감한다. 말하지 않는다고 아픔이 없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나라고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한편으로 다행스러웠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마지막 문장이 아닐까.






📓 책 속 문장

𓀬 나는 가족에게도 묻고 싶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기 위한 나름의 좌표 같은 것이 당신들 가슴속에도 있는 거냐고. 원래 가족이란 게 이런 건지, 살다 보니 그리되는 건지, 구차하리만치 아등바등 사는데도 내 가족은 왜 가 이 모양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집구석 환경 조사서> 중에서

𓀬 정말이지 아빠 없는 나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하지만 남편 없는 엄마는 내게 너무나 어려운 과제라고. 엄마가 나보다 아빠를 먼저 만났기 때문이라고. 아빠를 만나기 전에는 나처럼 미끈한 여자애였다고. 시인을 꿈꾸던 소녀였고 <클리타임네스트라>중에서

𓀬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아무것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그저 오빠 대신 자신을 내주는 것만이 자식을 지키는 것인 줄 알았던 그래서 무어라 언급할 수 없는, 급기야 관계를 다 놓아버린 엄마는 진정 영악한 사람이다. <기억의 제단(祭壇)>중에서

𓀬 "저렇게 잭팟이라도 터뜨리는 걸 보면 나는 여길 더 뜰 수가 없어. 내게도 그런 기회가 올 거 같거든." <아름다운 나의 도시>중에서

𓀬 최변이 모르는 게 있다. 내가 언제인가부터 그의 휘파람 소리에도 침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한 날, 나는 다짐했었다. 가끔은 나를 속이기도 하는 저 소리에 침 흘리지 말자고. <안락사회> 중에서

𓀬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어? 밖에 있는 사람들도 다 힘들게 살아. 병원에 안 와서 그렇지. 다들 아프다고. 이제라도 나는 아프다 받아들여요." <봄의 시> 중에서


출판사 지원도서로 개인적인 소견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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