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한의 화가 천경자 - 희곡으로 만나는 슬픈 전설의 91페이지
정중헌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정과 한의 화가

『천경자』

정중헌/스타북스 




그림에 마음이 간다는 것은 그 그림 안에서 친숙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든다. 회상되는 어떤 장소 아니면 그 장소와 비슷한 분위기 또는 지금의 나의 감정이 그림에 투영된 듯한 느낌... 그런 걸 그림에서 찾았을 때 제법 많은 시간들이 그림 안에 머물게 된다. 그림에서 인생을 본다. 그림에서 삶을 찾아본다.




천경자 선생님의 그림은 수없이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원작 작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 익숙한 그림들이 한국 화가라는 것도 이 책을 보며 알게 되었다 또, 천 선생님의 삶이 영화 같다는 것도. 그동안 난 왜그리 무심했던걸까. 


한 시대를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불태운

화가 천경자(1924~2015)의 생애와 작품을

공연과 영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한국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작가를 널리 알리고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


대본집을 가끔 읽긴 했지만, 화가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을 희곡으로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독특했다. 천 선생님과 기자(저자)의 글이 번갈아가며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무대 위 배경음악을 재생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화관을 쓰고 자산의 작품전에 등장할 정도로 멋쟁이라 삶도 휘황찬란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여자로서 참 기구한 삶을 살았더랬다.



나의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준 원동력은

'꿈'과 '사랑'과 '모정'이라는 세 가지 요소였어요.


두 번의 이혼,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양육했던 천 선생님. 자신의 과거를 열심히 살게 해준 원동력 중 가장 안전한 다리를 걸어 준 것을 모정으로 뽑았다. 절망을 달래주고, 용기를 불어준 것은 오직 모정이었다고 한다. 여인이 어머니가 되면 천하무적이 되는 것 같다.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너희 때문에 산다'라고.


저자는 천경자 선생님을 담당했던 기자였다고 한다. 천경자 화백은 인터뷰 때마다 "뱀은 나의 돌파구였고, 뱀 그림은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낸 수호자"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 시대 풍경화만 전시되었는데 여성화가가 뱀 그림은 파격적이라 전시장이 아닌 다방의 구석에 세워놓게 된다. 어떤 시인이 다방에서 뱀 그림을 보고 소문이 퍼져 얼마 후 문전성시를 이뤘고 그때부터 천 선생님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여행으로 영감을 많이 받아 자신만의 구도를 연구했던 선생님. 최초의 여성 종군 화가, 대표작 기증하고 저작권 환원한 최초의 화가 등 타이틀을 많이 가진 선생님이셨다. 또한  생전에 수필집, 기행문, 자서전 등 모두 15권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고전문학과 구미 영화를 많이 봐왔던 그는 풍부한 감수성과 감칠맛 나는 필력으로 인기가 많았고 독자층도 넓었다고 한다. 


​그림과 글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선생님이 참 부럽다. 마음껏 여행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두려움 없이 돌진했던 선생님은 미인도 논란으로 그만 붓을 놓고 말았다. 미인도는 여러 번 감정 끝에 국가 기관은 최종적으로 '진품'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작가가 그리지 않았다는데... 왜 믿어주지 않는 걸까. 천 작가님의 가족들은 여전히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천 작가님은 한국을 떠났고, 타국에서 긴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하셨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정과 한의 화가 『천경자』은 천 선생님의 인생이 담긴 희곡이었다. 천 선생님의 육성이 들리는 듯한 독백들과 기자로 등장하는 저자가 알려주는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들. 모두 소중하고 인상 깊었다. 위드 코로나로 접어들면 조금씩 공연이 살아날지 모르겠다. 멋진 무대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감동이 가시기 전에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책을 찾아봐야지.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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