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리스
라이 커티스 지음, 이수영 옮김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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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나는 더 이상 남자든 여자든 함부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일 뿐. 그 문제에 대해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하다고 믿지 않는다.




1986년 8월 31일, 70대 노부부를 태운 경비행기가 숲속으로 추락했다. 조종사였던 젊은 사내와 남편은 사망하고 클로리스만 남았다. 끔찍하게 훼손된 조종사의 시체를 뒤적거려 무전기를 꺼내 구조요청을 며칠을 시도했지만 답변도 없고 물도 떨어졌다. 무전기도 작동도 멈춰버리고 만다. 클로리스 할머니는 이곳에 머물러야 이유가 없어 모험을 감행하기로 한다.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다 사서로 44년을 근무하고 은퇴한 72세의 클로리스는 남편과 함께 비터루트 산맥 국립공원에서의 며칠 보내기로 했었다. 이제 그녀는 혼자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평생을 함께 한 동반자들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잃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 자신도 그리고 세상 누구도 더 이상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할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목도했음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은 눈물도 허락하지 않았다.



"내 평생 내가 이렇게 나 같지 않은 적은 처음이라는 상념이 머리를 스쳤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당연 먹고, 비워내고, 자고, 움직인다. 이 모든 것을 원시 시대의 그들처럼 퇴화된 생활을 하게 된 할머니는 자신을 내려놓기로 한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녀를 도와주는 수수께끼 남자가 나타난다.





"신은 우리를 한 방향으로 이끌지만 우리는 다른 길을 가버린다. 이를 인생의 황혼기에 배운다는 것은 무지 골치 아픈 불운이다."







또 다른 구원이 필요한 여성,


국립 산림 경비대 대원 37세 루이스





남편이 3중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혼 후 알코올 중독에 빠진 루이스는 '빌어먹을'이라는 말을 달고 지내는 거친 여성이다. 애초에 그녀가 삐딱한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꺼려 하는 스타일인 듯했다. 보온병에 포도주를 담아 술을 물처럼 마시는 그녀는 늘 취해있다. 정서적으로 불안전하고 위태로워 보였지만 자연인들을 단속, 관광객의 민원 처리를 곧잘 하는 것 같다.



깊은 산중 경비대 사무소와 혼자 사는 통나무집을 오가며 '닥터 하우에게 물어보세요'라는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자기 자신이랑 친해지기 힘들다는 생각 같은 거 해본 적 있어요?"





"충동의 지배를 받을 건지 후회의 지배를 받을 건지 결정을 해야 할 거예요. 뭔가를 할 때 그게 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잘못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나중에 옳은 일로 밝혀질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럴 줄 어떻게 알겠어요? 가능한 행동들의 결과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결코 알 수 없는 건지도 모르죠."





추락한 경비행기의 조종사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아내의 신고를 접수하고. 그 비행기에는 노부부 월드립과 클로리스가 탑승했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며칠 전 피트가 클로리스라는 조난 신호를 들었다고 제보한 게 생각이 났다. 루이스는 수색대와 함께 그들을 찾아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비행기를 발견한다. 그러나 두 구의 남성 시체뿐.. 클로리스는 어디에 있는 걸까.








<클로리스>는 클로리스라는 할머니의 생존 일기와 루이스 대원의 수색 일기가 번갈아 쓰인 소설이다. 사건이 일어난 20년 후에 클로리스 할머니가 회상하면서 쓰여진 이야기는 사건 당시와 훨씬 전의 과거, 그리고 현재 요양원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클로리스에게 닥친 상황은 그녀의 가치관을 바꿔놓게 된다. 72세의 관록이 무색하게 처절한 고군분투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유쾌한 성격임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들은 길어지는 모험에 잠깐의 웃음을 주기도 했다.



동굴에서 12일을 보낸 클로리스가 자신을 보며

"역사에 방치된 시대의 정신 나간 동굴 마녀처럼 보였을 것이다."



물에 빠진 클로리스를 구하려는 남자를 보며

"이런 세상에나! 가까이 갈수록 물살 소리 위로 그의 용쓰는 숨소리가 커졌다. 월드립 씨의 농장에서 소가 출산할 때 관리인이던 조 플러드가 끙끙거리며 새끼를 빼내면서 내던 소리랑 비슷했다."




클로리스의 고군분투는 1986년 11월 16일에 종료된다. 물론 그녀를 도왔던 마스크맨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클로리스>에 등장하는 산림 경비대 사람들 대부분이 일반적이지가 않았다. 독특한 사고관을 가지고 있으며 다소 변태스럽기까지 했다. 결핍에 대한 상처가 깊어 보였다고 할까.. 정서적 수난에 방황하는 이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읽어 내려갔다. 이들도 클로리스처럼 스스로를 구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루이스 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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