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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생각 - 이 세상 가장 솔직한 의사 이야기
양성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B급 의사의 S급 현실 이야기
의대 동기 단톡방에서의 대화는 3세대 면역 항암제 키트 루디의 작용 기전 및 비소세포 폐암에서 생존율 향상이나, 유전자 구조 분석을 통한 암 발생 가능성 예측, 고혈압 환자의 약물 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90%가 나이 드니 술 먹어도 힘들다. 이슈 된 연예인 이야기, 정치 비난, 경제 불황으로 인한 고민들을 나눈다고 한다.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티브이 속 고상한 의사가 쓴 에세이라면 고리타분할 텐데 이 책의 저자는 본인을 B급의사라고 대놓고 낮추며 편안하게 글을 읽어주기를 소망하는 듯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겼던 한 의사 양반이 생각났다. <사람아 아프지 마라>의 저자 김정환 원장님의 글처럼 다정하게 위로해 주는 글로 가득할까라는 기대와 함께 책장을 넘겨본다.
삼십 대 후반의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유럽에서는 흔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더구나 의료인들에게서는 더욱 보기 힘든 민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자칭 B급의사라고 말하는 그는 위트가 넘쳤는데 아이들에게는 머리가 아파 그렇다고 설명하지만 사실은 머리카락이 나를 완전히 배신하기 전에 내가 먼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빡빡 밀었다고 했다. ^^
그는 작가를 꿈꾸는 의사이다. 작가로 돈을 많이 벌면 100% 예약제로 20명의 환자분과 인당 30분씩 진득하게 진료를 보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가졌다. 책은 여섯 권을 썼으나, 네 권만 발행되었고, 네 권마저 초판도 다 안 팔렸다고 한다. 왠지 안쓰럽다. 이런 위트 있고 따뜻한 사람의 글은 많은 독자가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의사의 생각』은 환자와의 에피소드, 전공의를 준비하는 과정 중의 일, 가족 이야기 등 잔잔함으로 시작해 충격적인 이야기도 포함된 에세이집이다. 전문서적이 아니라서 술술 읽히지만 때론 묵직함이 느껴지는 글들에 잠시 쉬어가는 그런 책이다. 왠지 나에게는 '의사도 사람이니 조금만 더 봐 달라'라고 전해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뭐든 안 힘든 일이 없지만 이 책으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이들에 열악한 환경은 그대로 환자에게 투영이 되는 현실이 보였다. 또 예기치 못한 보호자의 면담으로 자신의 안위를 위한 대책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본능에 충실한 인간을 보았다. 자꾸만 작아지고 약해지는 어머니로 가슴 아파하는 아들이 보였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가 입원했을 때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다 환자와 같이 잠드는 것이 꿈인 의사가 보였다. 그 양반 인간답고 괜찮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