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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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가, 두 시간 간격으로 순간 이동을?"
s.f. 초능력이 주제인 이야기인가.
<서브머린>, <마리아 비틀>로 이사카님의 진가를 알게 된 이후 다시 만난 신간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앞 전에 캐릭터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후가와 유가'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지진 않았다.
이사카님의 스토리텔링의 실력은 뛰어난 것일까? 특별한 것일까?
나는 <후가는 유가> 속으로 한 걸음 다가가기로 했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공유'였음이 틀림없다.
오직 그 무기 덕분에 살아남은 셈이다. 


두 시간 간격으로 태어난 유가와 후가. 첫째 후가는 차분하면서 부드러운 성격을 갖고 있는 반면에 유가는 거칠고 말보다 행동이 앞선 아이다. 한 뱃속에서 자란 쌍둥이 형제의 성격은 외모만 같을 뿐, 성격과 특기는 동전의 앞뒤처럼 달랐다. 


폭력을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복종을 하며 스스로를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 좁고 허름한 집, 늘 똑같은 식사와 똑같은 옷, 둘이 나눠 쓰는 학용품, 게다가 게임도 스마트폰도 없이 하루하루 살다 보면 기분이 암울해질 따름이다. 그런 생활이 기본이었던 우리에게 1년에 하루라고는 하나 남과는 다르게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신적인 구원이었다. 


생일날 오전 10시부터 밤까지 두 시간 간격으로 서로의 위치가 바뀌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유아기 때부터 어렴풋이 알아차린다. 365일 중 단 하루 형제는 시험을 하며 이 능력을 들키지 않도록 궁리를 한 덕분에 누구에게도 들킨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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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영상을 들이대며 유가에게 접근한 기자 다카스기와의 만남으로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 후가를 돕기 위해 유가는 발가벗고 온몸에 기름칠을 한다. 아기였지만 순간 이동의 능력을 알고 있었는지... 어느새 둘의 자리는 서로 바뀌었고, 아버지는 손에 잡힌 미끄덩한 몸의 아기를 화장실에 패대기치며 폭력을 멈췄다. 그때부터 능력의 시작이라고 기억하는 후가는 다카스키에게 특별한 힘으로 얽힌 에피소드를 열거한다. 


"제 동생은 저보다 훨씬 터프합니다."


유가는 언제나 후가를 이렇게 소개를 한다. 신발 한 짝 같았던 쌍둥이 형제는 열다섯 살을 기점으로 떨어져 지내게 되는데 공부에 흥미가 없던 후가는 고철상 암굴 아주머니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되고, 유가는 불우한 가정 안에서 꿋꿋하게 학업에 매진했다. 비록 떨어져 지내지만 오히려 유대감은 깊어져 만나는 날에는 자신이 체험한 일과 얻은 정보를 이야기했다. 그러다 후가의 여자친구 고다마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의 오래된 불행을 직접 목격하게 되는데...




<후가는 유가>의 책 제목과 다르게 첫째가 유가이고 둘째가 후가인 이 소설은 다 읽은 후의 제목에 의미를 알 수 있었고, 곳곳에 복선이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형제의 주변 인물 중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고 체념하는 사람들뿐이다. 

쌍둥이 형제를 세상에 내어놓은 어머니마저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 맞고 있는 후가를 보며 한 숨만 쉬었다. 초등학교 동창 와타보코리는 히로오의 괴롭힘을 그대로 받아냈다. 가출했다는 소녀 또한 살인마에게 희생물이 되어 버렸다. 피해자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고 가해자의 잔혹함은 더욱 강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쌍둥이 형제들은 필살기, 천사와 악마를 번갈아 보는 순간의 틈을 노려 악과 대응하려고 한다. 

인터뷰로 시작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진행되는데 흥미진진했고, 재미의 절대 요소 반전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다. 이사카 고타로는 자신의 초반 작품들의 독자 후기에 '슬프고 씁쓸하지만 읽고 나면 따뜻해진다'라는 느낌을 이번 작품에서 받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고 한다. <후가는 유가>에서 이사카님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이사카 고타로 초반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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