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반짝반짝
이공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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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문구를 사랑하지만 자제력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의 필통은 국어책과 맘먹는 정도의 사이즈였고, 그 안에 세상은 '윌리를 찾아라'보다 더욱 부산하고 복잡했다. 색연필 전용 필통, 연필 전용 필통, 볼펜 전용 등 나뉘어 가지고 다녔으면 찾기가 쉬웠을 텐데, 나의 필통에서 바로 사용할 필기구를 찾기란 '윌리'보다 더더욱 어려운 숙제였다. 다 이쁘고 소중한데 한 놈만 고른다는 건 무척이나 고민되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지금도 문구와 미술용품들이 많지만 분류라는 것을 터득한 어른이라서 여러 개의 꽂이에 종류별로 정리를 해놓았다. 보기만 해도 참으로 뿌듯하다.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핑크색 자석 필통 안에 정갈하게 깎인 연필 몇 자루와 뽀얀 지우개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학교를 빨리 가고 싶었다.
초록색 토끼 문양이 찍힌 하얀 실내화는 빨간색 실내화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어쩌다가 책상 중간에 금을 넘어온 짝꿍의 연필이나 지우개의 주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곤 했다. 하루 중에도 수없이 뺏기고 뺏는 문구 약탈전이 벌어졌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직접 손으로 하는 작업 중에 글쓰기와 그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문구는 베프 이상이었다. <작지만 반짝반짝>의 저자도 나와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문방구 앞에서는 설렘에 얼굴이 붉어지는 소녀의 모습은 영락 없이 나였다. 문구덕후로서 동질감을 느낀 나는 그녀의 문구 사랑법이 궁금했다.

어린 시절의 꿈이자 좋아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마음을 담아 '리멤버 유어 걸후드'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내가 만든 문구에 넣었다. p24

쭈뼛쭈뼛 문방구 안을 몇 시간이고 서성이던
어린 시절의 나는 문방구 사장이 되었다.
한없이 어설프고 엉뚱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애틋이 품고 살다 보니 전혀 상상도 못한
어른이 되었다. p180

대학 졸업전에 디자이너로 취업한 저자는 그림이 그리고 싶어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프리랜서로서 길을 가게 되었다. 어릴 적 일기장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결국 문방구 주인이 되었다. 일러스트로서는 여러 기업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하고 개인사업자로서는 이공 일러스트 굿즈 브랜드인 '스탠더드 러브 댄스'를 운영하고 있다.

내 마음이 제일 많이 애탔고 또 두근거렸던 곳,
바로 문방구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결핍'이라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p22

그랬다. 그건 결핍이었다. 갖고 싶지만 모두 갖지 못하고, 문구 캐릭터만큼 이쁘게 그려내고 싶었는데 되지 않는, 모두 소유할 수는 없다는 가르침을 준 곳이 문방구였다. 반지 사탕과 각종 불량식품들의 유혹에도 매서운 엄마의 눈초리에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고, 이쁜 색칠공부도 많은데 한 가지만 선택해야 했다. 분명 어린 나도 작가처럼 크면 문방구 사장님이 되고 싶을 것이다. 

저자를 설레게 했던 캐릭터는 콩콩이, 발렌타인, 소담이라는데, 내가 기억하는 캐릭터는 디즈니 캐릭터와 일본 캐릭터인 키티, 스머프, 국내 문구 캐릭터는 금나래와 산머루(?), 머털도사, 둘리 정도이다. 역시나 옛날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얼마 후면 냉동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시대가 바뀌지만 문구 사랑의 공감은 여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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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감정과 생각보다는 일정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감정을 쏟아버렸던 흔적을 읽었을 때 분명 혼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귀바퀴가 터질 것 같은 창피함이 밀려왔던 기억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일보다는 우울했던 기록을 더 보기 싫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나 자신을 그대로 꺼내 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기장 사용법을 바꾸기로 했다. 행복했던 일과 감사했던 일들로 채우기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을 때 미소가 지을 나를 위해 오늘의 하루 중에서 행복을 찾아 기록하기로 했다.

사물을 허투루 보지 않았던 저자는 패키지도 모았다고 한다. 컬러, 작업시간, 패턴 등 디자이너의 생각을 전부 읽고 싶었다고 하니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쉽게 버려지는 것들 속에서 가치를 찾아낸다는 모토로 더 들여다 보 거 예리하게 찾아내려 했다고 한다. 그렇게 패키지를 모았다고 한다.
지금은 자제하고 있지만 포장지, 박스를 버리는 걸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마음에 든 것은 버리지 못한다. 화이트데이에 받았던 초콜릿을 감싸던 포장지를 묶어주던 작은 리본, 특히 리본을 잘 못 버리는 것 같다. 언젠가는 꼭 쓸 일이 있을 거하는 생각에 자꾸 모으게 되는 것 같다. 10년도 넘게 주인을 못 찾은 리본도 있다. 

<작지만 반짝반짝>는 문구 러버인 저자의 에세이로, 어린 시절의 추억과 소중했던 문구, 그리고 지금의 일을 하게 되기까지 수없이 자신을 들여다본 이야기들이 있었다. 솔직하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드러난 글을 보며 조금 더 용기 내어 살아도 괜찮겠다고 나를 응원하게 되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하루를 보내는 나에게 선물의 시간을 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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