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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 메마르고 뾰족해진 나에게 그림책 에세이
라문숙 지음 / 혜다 / 2020년 3월
평점 :
특별한 기대도 희망도 없지만
그런 날들이 모여
괜찮은 한 달이 되고
기억하고 싶은 한 해가
된다는 비밀을 내게
알려준 게 그림책이다.
_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p9
작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고 펑펑 울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감동의 깊이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삶의 경험치가 많아진 만큼 공감력이 커진 이유일까. 2D로만 느껴졌던 그림이 머릿속에서 4D로 재현되고 지나쳤던 나의 시간을 자꾸 대입시켜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아이가 보는 그림책과 어른이 보는 그림책의 감동은 다르다는 것을 체험한 계기였다.
그림책에 관심은 꾸준히 있었지만 왠지 모를 아이들의 전용 소유물이라는 편견과 어른은 어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였다. 공갈젖꼭지와 헤어져야 하는 것처럼 일정 나이가 되면 그림책과도 이별해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어떤 책을 만나면서 자유를 찾게 되었다. 바로 김건숙 작가의 <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얼 보았나>를 만나고는 나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어른이 읽는 그림책의 맛을 알게 해준 이 책은 참 고마운 존재였다.
그림책에서 삶의 의미, 삶의 교훈을 찾는 게 아닌, 살면서 깨우친 나만의 정답과 존재의 고마움을 느꼈을 때 문득 생각나는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책을 만났다.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그림책이 많았다는 저자의 글이 궁금했다.
'혼자'와 '함께'는 동시에 있을 수 없지만, 서로 자리를 바꿀 수는 있다.
오히려 '홀로'와 '함께' 사이를 빈번하게 오갈수록 우리는 더 강해지고 우아해질지도 모른다. 다만 그걸 위해서는 내 코가 빨개졌다는 걸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p59 그림책 [곰씨의 의자]
어쩌면 정돈된 일상이 흐트러진 그것보다 더 답답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좋아하는 일들이 꼭 쓸모 있는 일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87 그림책 [도서관]
경계를 넘어서는 보다 쉬운 방법은 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걸 아는 것, 그래서 시도해 보는 것이다. (중략) 삶의 어느 부분은 좀 모자란 듯 놔두어도 괜찮다. 안 되는 것, 겁나는 것, 피하고 싶은 것들을 인정하고 나면 삶이 그만큼 편해진다. 안 보이던 게 보인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진다. 좋아하는 것들에 한층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p178 그림책 [수영장 가는 날]

그림책은 보통 50쪽 내외로 글보다는 그림의 분량이 많이 차지한다. 때로는 글자가 없는 그림책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림 안에서 생각을 풀어내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때 그때 다른 결말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글자가 없는 그림책들이 항상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고 하는 저자의 말에 매우 공감한다. 또한 활자로 가득한 책에서 얻는 깨달음과 맘먹는 깊이를 그림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의 최애 그림책 [도서관]이 이 책에 포함이 되어 뿌듯한 마음에 공감하며 읽었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이 책은 육아에 지친 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우한폐렴으로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요즘에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