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면
오사키 고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크로스로드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시신이 사라졌다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체가 사라졌다는 문구로 김희애 주연의 <사라진 밤> 영화가 생각이 났다. 미스터리 스릴러로 재밌게 보았던 영화였다. <문을 열면>에 사라진 시체는 독거노인 구시모토 씨로 502에 살던 주민으로 쓰루카와의 유일한 말벗이었다.
빌려온 사진잡지를 돌려주려고 502호로 간 쓰루카와는 쓰러져있는 구시모토를 발견하지만 신고를 내일로 미룬다. 이사준비 중이었고 내일이면 매매계약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이 성사되면 경찰에게 연락하려던 터였다. 양심의 가책은 느꼈지만 나중에 하기로 한다. 잠시 후 방문한 소년은 502호에서 나오는 자신을 찍었다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다시 들어가서 수첩을 찾아달라고 협박을 하는데.. 구시모토 씨의 시체가 사라졌다.



둘이 머리를 맞대어 봤는데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시신이 사라졌다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p82



제멋대로 건방진 데다 사람을 막 부려 먹는다. 이제 막 그런게 아니라 이 아이는 처음부터 이랬다. 유사쿠는 종이 몇 장과 연필꽂이를 가져다주었다.
아무리 의욕이 넘쳐 봤자 진상과 올바르게 대면할 확률은 상당히 낮을 것이다. 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아이의 열의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p117



50대 무직 독신남과 동영상을 미끼로 사람을 협박하는 프로 협박범 소년은 구시모토의 사망사고의 의심을 품고 함께 조사하기로 한다. 같은 아파트인데도 구시모토는 평판이 달랐다. 아기 엄마들에게는 구시모토가 위험한 사람으로 소문이 났고 관리인이나 옆집, 어르신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인식이 되고 있었다. 구시모토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인 걸까. 살인당한 걸까. 병사인 걸까.

우리 모두는 다양한 농도를 지닌 회색 덩어리가 꿈틀거리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어느 시대든 어느 사회이든 마찬가지다. 타인의 마음속은 볼 수가 없는 것이다. 159



우리는 한 사람의 일부분만 보고 쉽게 판단해버린다. 확실하지 않은데 소문만으로 오해를 하고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피할 뿐이다. 여자아이 행방불명 사건이 있던 이 동네 엄마들은 구시모토의 행동에 더 불안해했다. 용의자라고 잡혔던 사람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사진 찍는 취미가 있는 구시모토는 해당 초등학교 근처에서 여학생들에게 추근대는 사람으로 찍혔다. 하지만 그에게도 사연이 있었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진부한 상상일까. 아이가 없는 유사쿠는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괴로움은 몇 년,, 몇 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구시모토 씨가 아내에게 보냈던 사진엽서에는 두 사람만 공유할 수 있는 슬픔과 위로가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p252




예전부터 사람들이 날 싫어했다. 미움받는 인간이었다는 생각 말이야.
하지만 사실은 달라. 너를 싫어하는 사람은 너 아닌 다른 사람도 다 싫어해.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멋대로 싫어해. 싫어하는 게 당연해져서 아주 쉽게 싫어하지. 그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어.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런 건 결코 아니야. 극히 일부지. p298



<문을 열면>은 평범했지만 현대 사회의 고독과 심리들을 다룬 점에서 재밌게 읽었다. 아기들은 사랑으로 자라듯이 어른도 사랑으로 살아진다. 나눠주지는 못할망정 미워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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