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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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죽은 후에 어떻게 처리될까. 어떻게 처리되기를 원한다고 언제쯤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까. 어떤 게 좋은 죽음일까라는 생각을 진중하게 해 본 적이 없다. 단 형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 것 같다. 즉 화장. 가루가 되어 산이든 강가든 뿌려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건 매장되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내 관속에서 구더기와 각종 곤충들이 있고, 또는 뱀들이 지나다닌다. 또는 동물들이 파헤쳐서 살점을 나눠 먹어 나의 일부가 어떤 것의 뱃속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깔끔한 건, 화장뿐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이었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에서는 죽음 후의 시체와 처리 과정, 좋은 죽음은 무엇인지에 대해 여성 장의사 케이틀린이 유쾌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죽음을 유쾌하게? 문맥상 괴리감이 들지만, 정말 그녀에는 일상의 유머처럼 툭하고 가볍게 전달해 주는 유쾌함이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23세에 취업한 장의 업계에서의 6년간 경험을 담은 책으로 화장장 경험뿐만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하고 있다. 숨을 다한 사람의 몸은 장의사의 손에 냉장트럭에 옮겨지고, 레토르트에서 뜨거운 불길 속에서 가루가 되어 유골함에 들어가기까지의 신랄하게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화장 업체에서는 생각보다 굉장한 수고를 하고 있었다. 저자는 가급적 모든 경우의 수와 특이한 사례까지 꼼꼼하게 알려주려고 부단히 애쓰는 듯했다. 죽음에 대해 모른다면 두려움이 더 깊어지기 때문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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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eesluising, 출처 Pixabay

 웨스트윈드에서 나는 처음인 듯 느낀 것을 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직면을 현실과 맺는 일이었다. 그건 아주 소중했고, 나는 죽음을 직면하는 데 빠르게 중독되어 갔다. p.49

 사업으로서 장의업은 일정 유형의 '존엄성'을 팔아서 발전했다. 가족들에게 존엄성이란 잘 조율된 마지막 순간, 잘 매만져진 시신으로 완성된 순간을 누리는 것이다. p.178

 죽음은 알려져야 한다.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정서적 과정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p183

 전통 매장, 화장, 수목장 외에도 친환경 장례가 존재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별도로 알아보니 미국에서 내년부터 퇴비화 장례가 시행된다고 하는데 수년간 연구 끝에 매우 안전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얻어냈다고 한다. 탄소 배출이 전통 매장에 비해 1톤 이상 감소된다고 하니 착한 장례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도 얼마 뒤에 도입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사실인데 그동안 안이하게 넘겼던 것 같다. 묵직한 주제를 대수롭지 않게 일상처럼(그녀에게는 일상이 맞다^^) 이야기해 주는 저자의 글은 재미도 있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숨 쉬는 동안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친구이고 싶고, 숨이 다하는 날부터는 자연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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