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번역은 해석이 아니다. '해석'이 문장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설명하는 것이라면 번역은 원래의 문장을 있는 그대로 도착어로 옮겨 주는 작업이다. 잘 된 번역은 그것을 얼마나 정확히 옮겨 주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지. 역자가 얼마나 읽기 좋게 옮겨 주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_ 역자 후기 중에서


 이번 새움에서 출간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기 전에는 다수의 번역서를 보면서 읽기 쉬운 것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의 역자는 읽기 쉬운 책은 잘못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한다. 여러 역자들로 다른 해석이 된 이방인의 번역을 보니 정말 전혀 다른 내용으로 비쳤다. 원작은 번역자로 인해 원래의 의미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존에 다른 이방인의 책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역자의 노트에서 다양한 사례가 있으니 번역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올바른 번역, 좋은 번역의 정의를 감히 내릴 수 없다. 하지만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역자의 주장은 인정하고 싶다.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어머니의 사망 전보 한 통을 받고 이틀간 휴가를 냈다. 어머니가 계신 영안실에서 뫼르소와 관리인은 함께 밀크커피를 마시며 가끔 담배도 피우며 대화를 했다. 익일 오전에 장례를 치렀고 뫼르소는 피곤했다.


나는 피곤했다. 관리인이 나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주어서 나는 간단하게나마 씻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밀크 커피를 마셨는데 아주 맛이 좋았다. 밖으로 나섰을 때, 날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마랭고를 분리시키는 언덕들 위,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가득했다. (중략)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27p


언제나처럼 또 한 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42p


장례식에서 돌아온 뫼르소는 수영장으로 향했고 거기서 마리를 만나 영화도 보고 잠자리를 한다. 일상으로 복귀는 아주 성급해 보이지만 뫼르소는 그런 사람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엄마를 양로원에 보낸 일로 자신을 안 좋게 여기는 것을 최근에 알았고, 엄마를 보살펴 드릴 돈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양로원에 보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다. 그와 함께 있는 엄마는 외로워 보였기도 해서 양로원에서 말동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그다. 


뫼르소에게는 레몽이라는 이웃 친구가 있는데 함께 지내는 정부가 악질이라 혼내주려고 편지를 쓰려는데 글을 몰라 그에게 대신 써주길 부탁한다. 얼마 후 레몽과 그의 정부가 방에서 심하게 다퉜고 주민 신고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레몽은 곤란한 처지가 되었지만 뫼르소가 레몽이 유리하게 증언해준다. 유대관계가 깊어진 그들.

레몽의 초대를 받아 뫼르소와 마리는 그의 친구가 거주한다는 해변 목조 별장에서 일요일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그곳에서 레몽의 정부의 오빠인 아랍인 무리들을 만나고 한 번의 시비 후 두 번째 만남에서 뫼르소는 아랍인을 향해 다섯 발을 쏘게 된다. 그리고 뫼르소는 체포되고 심판을 받기 위한 재판이 열린다. 



내 존재가 긴장했고 나는 손으로 권총을 꽉 움켜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카롭고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87p

 재판 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 느닷없이 어머니의 장례식이 화두가 된 재판장.
뫼르소가 충분히 슬퍼 보이지 않았다고 냉소적으로 보였다고, 그의 범죄는 죽어 마땅한 결과가 되고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한 사람의 목숨을 들었다 놨다 하는 판결이라는 것이 이틀 정도로 지켜본 관찰자(양로원의 원장, 관리인, 간호사)의 증언만으로 재단해도 되는 것인지... 결국 배심원뿐만 아니라 재판장도 등을 돌렸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죄질이 아닌 인간성으로 판단했다. 죽어도 되는 인간인지를 판단하는 듯 보였다.
뫼르소가 타임머신이 있었더라면 그 당시로 돌아가 영안실에서 거짓 눈물을 흘렸어야 했다. 그저 태양이 뜨거워 아랍인을 향한 총질했던 것을 용서받기 위해서 말이다. 뫼르소는 스스로 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겨진 소망은, 내 사형 집행이 있는 그날 거기에 많은 구경꾼들이 있고 그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67p


 역자의 추측과 생각이 배제된 온전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읽기를 끝내고도 한참을 서평을 쓸 수 없었다. 주변 인물은 평범한 사람에 반해 뫼르소는 독특하고 복잡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외부 환경에는 극히 예민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무척이나 곤란했다. 뫼르소와 재판장의 사람들은 비논리적이었다. 제목의 의미가 뫼르소를 제외한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두 번째 읽었을 때의 어떤 생각의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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