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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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얀 거탑>이라는 드라마의 각본가 이노우에 유미코의 원작 베스트셀러인 <해러스먼트 게임>의 주제는 기업의 컴플라이언스이다. 기업에서 컴플라이언스는 법률 준수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사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괴롭힘을 소설에서 다루고 있다. 2018년 10월 TV 도쿄에서 9부작으로 카라사와 토시아키가 주연으로 인기리에 방영했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재미는 보장이겠구나 싶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주제도 신선하다.



오늘도 이른 아침 낚시에 빠져 비린내를 풍기며 출근한 아키스 와타루. 마루오 슈퍼 추오점에서 점장을 맡고 있었다. 과거 도쿄 본사의 중추였던 점포개발부에서 유망한 존재였지만 7년 전 어떤 사건으로 좌천되었다. 느닷없이 인사발령 전화를 받고 당황했으나 이동 날짜는 당일이라니! 이동 부서는 해러스먼트를 다루는 컴플라이언스 실의 실장이다. 인사이동 기간도 아닐뿐더러 당일 이동이라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7년 전에는 좌천시키더니 갑자기 본사로 불러들이는 회사의 사정은 무엇일까.


 렌마점에서 판매된 당사 오리지널 브랜드 '완전 안심'시리즈의 크림빵에서 1엔짜리 동전이 나왔다는 고객 불만을 주제로 임원 회의가 한창 중인 회의실. 고객 불만이 있기 바로 전일 폐점 직전에 전화가 수상쩍었다. 어떤 여성이 '파워하라'(일본식 준말로 상사의 괴롭힘)을 중단하지 않으면 마루오 슈퍼 모든 점포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말하고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사건이 터졌다.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한 컨플라이언스 실에 마코토가 긴급히 보고를 올렸고 모두 내부 범행이라고 추측하는 가운데 마루오 사장은 비어있던 컨플라이언스실의 실장의 적임자로 아키스를 당일 임명한다. 그리고 아키스에게 사건 해결과 함께 밀명을 내린다.


 긴급한 사건부터 해결하는 아키스는 사장의 밀명에 대해 고민을 한다. 다름 아닌 와키다 상무를 제거하기 위해 비밀리에 해러스먼트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와키타는 과거에 아키스의 부하직원이었다. 7년 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은 채 바닷속에 몸을 던지게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사장을 그것을 이용해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아키스를 불러들인 것이다. 와키타는 임원들을 장악해서 마루오 일가를 축출하려는 것을 알게 되어 사장은 비장의 카드를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마루오사장과 와키타 상무의 기싸움, 아키스와 와키타의 껄끄러운 과거, 각종 해러스먼트 발생과 해결 과정을 재밌게 읽었다.


 우리나라도 줄임말을 즐겨 쓰듯 일본에서도 준말을 사용하는데 해러스먼트를 하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파워하라, 젠더하라, 파타하라, 모라하라. 카스하라로 다양한 종류의 학대가 소재로 나온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무리 안에서 안정감을 갖는 존재라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혼자가 아닌 집단이라는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그렇다 보니 무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보통은 섣불리 아니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책 속에 여러 가지 해러스먼트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모라하라였다.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를 불안에 빠트리거나 인격에 존엄에 상처를 임하는 정신적인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하면 '왕따'같은 것이다. 인류가 행하는 최악의 폭행이며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학대이다. 따뜻한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은 언제든 이런 학대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모든 해러스먼트는 없어야 하지만 모라하라만큼음 절대적으로 단종되기를 바래본다. 



"미끼를 걸고 그걸 먹으러 온 물고기를 낚아 올린다. 산 채로 가지고 돌아가 회를 떠서 먹는다. 잔혹한 유희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회사원의 인생을 느꼈고, 그래서 푹 빠져버렸습니다."


"아니오. 대신 이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 점장님이 1엔짜리 동전을 주우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두세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주의 한 번 주지 않는 것을 방치라고 합니다. 그게 훨씬 더 잔혹하고 무자비한 파워하라입니다."


"누군가를 혼내줄 말은 많이 알고 있어도 각오와 반성을 위해 해야 할 말은 모르는 것이다." 


"- 왜 넌, 나를 판 거냐?"


"스스로 책략가임을 인정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책략에는 둔감하다. 자신만이 계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까? 난…… 그냥, 높은 자리에 오르면 시시한 인간이 돼버릴 것 같은데. 지방에 가서 앞치마 걸치고 고객을 상대하면서 …… 세상에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


 아키스가 7년 전 파워하라로 고발되어 목숨까지 버릴 뻔한 사건으로 인생의 맛을 통달한 듯 보였다. 명석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과 그의 능청스러움과 따뜻한 인간미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며 속마음을 꺼내놓게 만드는 그는 참 멋진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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