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사계절 그림책
울프 에를브루흐 그림,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 사계절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도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은 늘 올바르고 깨끗하고 근엄한(?) 내용이 주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막 걸어다니는 댁의 아이들에게 위인전이나 과학나라 같은 책을 전집으로 보여주시나요? 그런 부모님들이 보시기에 이 책은 너무나 불경스럽고 발칙한 책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더럽게 코딱지를 후비고 남에게 똥침을 놓는 것을 즐거워하는 나쁜 버릇의 아이인데 이런 책을 권하다니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라고요. 하지만, 부모님, 어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바른 생활의 습관을 갖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우애좋은 사이로 지내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교도적인 책만은 아닙니다. 3~5세의 아동에게 중요한 것은 책을 좋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자꾸만 옆에 두고 보고싶은 책을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점점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점차적으로 독서량과 독서의 폭을 늘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3~5세 아동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데에는 '장영희'라는 이름값이 컸다. 조선일보의 주말 북리뷰에 격주로 나오는 장영희씨의 글에 그녀만의 강직한 마음과 따뜻한 시선이 묻어나기 때문에 이 책도 분명 그러리라 생각하고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나는 장영희씨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사실 무언가 핸디캡을 갖고 있는 사람이 큰 인물이 되었을 때 가장 많이 쓰는 것이 그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했으며 그 핸디캡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뭐 그런 얘기다. 그러나 장영희씨는 (장애인 치고는) 정말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적다. 그리고 중간중간 장애의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그것이 삶에 쩔어 비루하거나 스스로 가슴아파 하며 한탄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일상에서 나오는 평범한 소재로 등장한다. 마치 우리가 '콩나물' 이나 '뾰루지' 또는 '커피'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간에 있었던 사건에 관해 수다를 떨 때 처럼.

처음에는 이 분이 장애를 부정하고 일부러 말을 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장영희씨에게 장애는 이미 장애가 아니기에 글 소재로 자주 오르지 않는 것이다. 장애에 관해 마음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부러 애써 숨기거나 또는 과장되게 드러내며 자기 연민에 빠지지만 장영희씨는 장애를 그저 자신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나의 삶의 마이너스적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을 그렇게 인정을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글에는 전혀 나타나있지 않은 이런 저자의 모습에 나는 진심으로 감동 받으며 나를 되돌아 보았다. 도대체 무슨 컴플렉스에 불만이 그리 많은지. 내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했다. 글 자체도 상당히 소담하고 가슴을 촉촉히 적셨지만 내게는 글 이면의 저자의 마음가짐과 삶이 더욱 더 인상적이었다. 에세이는 다 똑같다고, 다 뻔하고 진부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뻔한 것'의 힘을 알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 봉지 공주 비룡소의 그림동화 49
로버트 먼치 지음, 김태희 옮김, 마이클 마첸코 그림 / 비룡소 / 199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동화는 이렇게 끝맺는다. 아름다운 공주님과 씩씩한 왕자님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고. 정말 그랬을까? 어린 여자 아이들은 유난히 공주 이야기를 좋아하며 스스로를 공주라고 칭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줄 왕자님을 애타게 기다린다. 멋지고 씩씩한 왕자님을. 그러나 꿈꾸는 소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현실 세계에 그런 왕자님은 없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왕자가 있다고 해도 그와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왕자는 유리 구두 사이즈로 반려자를 고르는 바보이거나 처음 본 무방비 상태의 여자에게 제 멋대로 키스하는 난봉꾼이니까. 시대가 바뀌었다고 일컬어지는 요즘까지도 동화만큼은 성역에 속해있어 여러가지 차별적 요소가 녹아든 낡은 동화책이 무방비로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가치관이 자리잡기 시작하는 시기인 3~7세 아이들이 매일 허구의 공주이야기를 읽으며 비현실적인 환상에 사로잡히게 두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종이봉지공주는 바로 그 점을 파고든 흔치 않은 동화책이다. 이 책은 여아들에게 아름다움 그 이상의 가치를 찾도록 도와주고 누군가(왕자님)의 도움 없이 혼자 설 수 있도록 격려해준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도 귀뜸해주기까지 한다. 오랜만에 속이 다 후련한 동화를 만나 반갑고 정이 간다. 많은 부모님께서 이 책을 선택하여 가능한 한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아이 - 유아교육신서 10
토리 L.헤이든 / 샘터사 / 1998년 4월
평점 :
품절


(여기에는 표지가 나와있지 않지만) 이 책의 표지에는 제목 그대로 한 아이가 서있다. 그 아이는 추레한 몰골을 하고 손을 주머니 속에 깊이 찔러 넣은 채 반항적인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다. 글 속의 쉴라도 이 그림과 비슷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고 아주 반항적인데다가 공격적이어서 모두들 쉴라를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토리 선생님은 그런 쉴라를 사랑으로 감싸안으며 심리치료를 시도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되는 것은 아주 어릴적인 젖먹이 때라고 한다. 쉴라는 이 시기에 어머니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토리 선생님도 경계한다. 그러나 토리 선생님은 커다란 소동을 일으키고 포악하게 굴기도 하는 쉴라의 모든 행동을 부드럽게 받아주며 신뢰감을 심어준다. 결국 쉴라는 토리 선생님을 믿게 되고 점점 스스로를 고쳐나가게 된다. 내가 아동상담사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 책이었다. 지금은 여러가지 이유로 아동상담사의 꿈을 접었지만 '한 아이'는 아직까지 나의 베스트 서적에 올라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계속 상위권을 지키리라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영페미니스트 기획집단 달과 입술 / 동녘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여성주의 책을 적잖게 보는 내게 누군가가 물었다. '너, 페미니스트냐?' 나의 대답은 당황스런 말줄임표였다. 어째서 이 세상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을 두려워 하는가. 누군가가 '당신 페미니스트지!' 라고 하면 '아니, 나 페미니스트 아니야.' 라고 대답해버리고 마는 것인가. 여성주의적, 그러니까 페미니즘적인 페미니스트의 발언을 하면서도 왜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이는가. 솔직히 말해,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은 모든 여성에게 버겁다. 그 이름을 솔직하게 받아들임으로 인해 생겨나는 주위와의 불협화음을 감당할 만한 용기를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갖는 이미지, 구체적으로, 독선적이고 차갑고 자기만 알아서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떽떽거리고 이지적이며 히스테리를 부리는데다 속은 온통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찬 가엾지만 우습고 귀찮은 인간, 이라는 이미지가 뿌리깊이 박혀있기에 모든 여성은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만 하지 않을뿐인 페미니스트가 많이 있다. 자신은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는 전여옥씨나 자우림의 김윤아씨도 내가 보기엔 훌륭한 페미니스트이다. 힐러리도 모니카 르윈스키도 한비야씨도 분명 페미니스트의 노선을 걷고 있다.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여성의 권리가 적다고 분개하며 끈임없이 여성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것이 페미니즘인 것이다. 그리고 현대 여성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된 생활을 해왔는지를 알려준다. 나도 그랬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미지가 너무나도 싫어서, 어떤 주의에 얽매이는 것이 우물안 개구리짓 같아서 언제나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을 보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페미니스트이며 휴머니스트인 나 자신을 숨기지않고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상당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지만 어쩌면 숨기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