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미니스트이다
영페미니스트 기획집단 달과 입술 / 동녘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여성주의 책을 적잖게 보는 내게 누군가가 물었다. '너, 페미니스트냐?' 나의 대답은 당황스런 말줄임표였다. 어째서 이 세상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을 두려워 하는가. 누군가가 '당신 페미니스트지!' 라고 하면 '아니, 나 페미니스트 아니야.' 라고 대답해버리고 마는 것인가. 여성주의적, 그러니까 페미니즘적인 페미니스트의 발언을 하면서도 왜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이는가. 솔직히 말해,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은 모든 여성에게 버겁다. 그 이름을 솔직하게 받아들임으로 인해 생겨나는 주위와의 불협화음을 감당할 만한 용기를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갖는 이미지, 구체적으로, 독선적이고 차갑고 자기만 알아서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떽떽거리고 이지적이며 히스테리를 부리는데다 속은 온통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찬 가엾지만 우습고 귀찮은 인간, 이라는 이미지가 뿌리깊이 박혀있기에 모든 여성은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만 하지 않을뿐인 페미니스트가 많이 있다. 자신은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는 전여옥씨나 자우림의 김윤아씨도 내가 보기엔 훌륭한 페미니스트이다. 힐러리도 모니카 르윈스키도 한비야씨도 분명 페미니스트의 노선을 걷고 있다.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여성의 권리가 적다고 분개하며 끈임없이 여성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것이 페미니즘인 것이다. 그리고 현대 여성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된 생활을 해왔는지를 알려준다. 나도 그랬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미지가 너무나도 싫어서, 어떤 주의에 얽매이는 것이 우물안 개구리짓 같아서 언제나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을 보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페미니스트이며 휴머니스트인 나 자신을 숨기지않고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상당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지만 어쩌면 숨기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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