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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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시작되는 글을 읽어 가면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건가 의아해했다.
책을 내고 아팠다 했기에.. 악몽이 시작되었다 했기에..
읽으면서 아 그냥 1인칭인거구나 했더랬다.

한겨울 새벽의 서늘함을 어둠을 닮은거 같다고
읽는 내내 느꼈다.
그만큼 가슴에 차가운 고드름이 박힌거마냥 내 시리고 아픈 책이다.

소년이 온다는 여름을 느끼게 했는데..
무더위와 습한 한낮에도 무언가 한기가 드는 그런 서글픔이라 해야할까 그런책

이책 초반..손가락이 잘려 다시 신경이 되살리려면 3분에 한번씩 바늘로 찔러 피를 내고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친구의 부탁으로
새장에 홀로 남은 새의 밥을 주기위해 폭설이 내린 제주 산간을
찾아가는 화자를 나는 내심 재촉했다.
되돌아갈까 생각할땐 안된다고 조바심치며
늘 달고 지낸다는 위경련이 찾아오려는 조짐에서는 더는 지체말고 얼른 찾아가라고...
제발 살아있어줬으면 했다.
책 내용이 무엇을 다루는지 어떤 사실을 담고 있는지는 사전에 알지도 못했고 그저 한강이라는 작가가 책을 냈다는 알림에 구입을 했을뿐인지라..
새가 살았으면 했다.

새는 작은 위와 채액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날기위해 뼈에 구멍이 숭숭 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래서 하루라도 굶으면 ..
물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도...
아마라는 새가 살았으면 하고 빌며 읽었다.
고양이를 키워선지 동물이야기나 조류든 사람이 아닌 생명이 깃든 것에 진심이 된다.
어느순간..
아미라는 새가 죽었을때를 얘기하는 친구의 말에 공감이 갔다.
새는 아픈걸 감춘다고.. 떨어지는 순간 이미 죽은거라며..
그래..아니.. 라는 말을 할줄 아는 아미가 왜 아픈걸 숨겼는지 내가 천적이 아닌데 라며 얘기할때...
나는 떠나보낸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범백을 앓다 떠난 콩순이
수술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애니
장폐색으로 급작스레 떠난 유월
역시 증상 없다가 갑자기 떠나버린 떼루
당뇨였던 가을 ..
적혈구에 기생하는 진드기로수혈을 계속 받아야했던 포동
폐렴으로 떠난 문순
상부호흡기감염이던 곰돌이
유기되어 아팠던 생명들 ..
끝내 살리지 못했던 그때..

그때 나도 그랬었다.
아프다고 앵기지..
참지 말고.. 아프다하지
장례를 치르면서.. 묻어주면서
그랬더랬어서 공감갔었다.
새도 그러는구나...

조바심 내던 내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가던 내용은
어느새 병원에 있던 친구 엄마의 어릴때 이야기로 이어진다.
따라오려던 8살 막내 동생을 언니들 귀찮게 말라는
엄마의 만류로 언니와 둘이서만 다녀온 그길에
운동회가 있던 그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널부러져 있던 수많은 사람들
피로 뒤덤벅 되어 쓰러진 사람들을
엄마의 언니가 피로 물든 얼굴을 닦으면 당시 13살이던 그 친구의 엄마는 가족인지 얼굴 확인을 했더라고..

그래도 막내동생이 안보여 설마하고 찾아간 집마당에
처음엔 빨간 헝겁조각인줄 알았다 했다.
몸과 턱에 총을 맞은 8살 아이가 피를 쏟으며
기어오면서 그 공포와 통증을 마주하며 어떤 생각이였을까
언니들이 돌아와 자기를 도와줄꺼란 기대감에 기다렸을꺼라는 글에서 나도 모르게 얼마나 울었던지...

제주 4.3사건은 그저 객관적으로 있었다더란 역사적 얘기에서 누군가의 가족이 어린생명들이
보통의 사람들이..
그저 아이였을뿐이던 생명만 1500명
그리고 수만명의 민간인이 단지 남한 단독정부수립을 제주에서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의 협력아래 빨갱이들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와 사람들을
심지어 갓난아이를 안고 있던 여인들까지도
총살로 몰살해버린 4.3사건을 한줄 요약이 아닌
그 상황으로 그 마음들을 들여다볼수 있게 해주는
아린 책이다.
읽고 나서도 내내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
그당시에 어린 생명들이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아무 죄없이 죽어간 생명들이 슬퍼서..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들이 아파서...

아직도 지구상에선 아무 죄없는 어린 생명들이 겪고 있을 공포와 고통의 전쟁...
아이들과 동물들에게 공포스런 고통은 없었으면 좋겠다...
한동안 이 감정에 메여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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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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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예약한 날짜가 토요일, 그러니까 자살하기 하루 전날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이어리에 따르면 그는 사람들도 만나고 점심도 먹고 미용실에도 다녀오고 테니스도 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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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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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자리에 실린 어머니가 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그도 익히 아는 태도를 보이며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고 모든 감정을 강철 뚜껑으로 꾹 누른 채 냉랭하게 겉으로만 예의를 갖추었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레인지 위에 달린 전등 이야기였다. 그냥 평범한 전구인데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는 1주일 전에 고쳐 주겠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문제가 생기면 종종 로지 하우스를 들여다보았다.

사람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시골 유지와 할리우드 여배우라고나 할까. 산초 판자와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고나 할까. 작위가 있는 쪽은 그였지만 사실 그녀에게 더 잘 어울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녀의 면상을 견딜 수가 없었어. 그 아들 녀석도 그렇고. 늘 느끼던 거였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괴팍한 구석이 있었어. 종종거리면서 다니던 거하며……. 나는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을 하고서 말이야.」

프랜시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고 경멸과 혐오 사이 어디쯤에 해당하는 표정이 언뜻 그녀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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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망자들 을유세계문학전집 101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태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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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밤이면 손끝이 피가 나고 갈라 터져 맨살이 드러날 지경이 되도록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 낮에는 어떻게든 그 흔적을 가리려고 애쓰는 것이다

지독한 실패 뒤에 서글프게 박수갈채를 구걸하는 서커스 광대 같은 모습이었죠. 불쌍한 인간 같으니.

그녀의 눈앞에는 해변 사건에 이어지는 어떤 극적 장면이 갑자기 기억의 섬광 속에 포착되어 나타난다. 바다가 보이는, 더 자세히 특정할 수는 없는 어떤 호텔 방 침대의 위. 뜻하지 않게 그 장면이 나타나자 그녀는 네겔리가 심히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는 그녀 속으로 고통스럽게 밀고 들어왔고, 짧고 둔탁한 신음소리와 함께 침 두 방울이 그의 입에서 떨어지며 그녀의 등을 찰싹 때렸다

앗, 이제 정말. 차가 도착하는 소리. 쿵 하고 차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 자갈길의 저벅저벅 소리. 맑은 초인종 소리. 한 번, 두 번, 세 번(예전에 스위스에서 늘 그랬듯이 세 번). 여행 가방이 티크재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편안하고 둔탁한 소리.이다! 하고 외치는 친숙한 소리. 바로 이것. 젠체하는, 목구멍에서 살짝 길게 끄는 스위스식 ‘ㅣ’ 음. 세상에, 그가 정말 왔다. 그녀는 생각한다. 이제 그가 안으로 들어올 것이고 손목 돌리기로 모자를 소파에 던질 것이다.

구두는 마치 제 나름의 독자적 삶을 살기라도 하듯이 차례차례 소파 탁자 아래로 사라진다.

그 옆에는 좌판을 전부 스코틀랜드의 다양한 씨족 상징 문양으로 씌워 놓은 신고딕 양식의 의자들이 있다. 약간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집이 마치 영화 세트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잠깐만. 그는 그의 애인을 위해 뭘 가져왔다. 그는 진짜 얼마나 기쁜지 어쩌고저쩌고.

그는 그녀에게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마치 잃어버린 둘만의 시간을 속성으로, 퀵모션으로라도 만회해야 한다는 듯이, 쉴 새 없이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냥 서로 무시하고 지내게 마련이다. 윤회의 길은 다른 동류의 인간과 함께 나누기에는 너무 고되고 끔찍한 것이다. 망자들은 끝없이 고독한 피조물이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유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혼자 태어나서 죽고, 또 혼자서 다시 태어난다.

카메라는 다다미 바닥에 맞는 높이로 내려와 있다. 일본의 공간 감각에 의자와 침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더 높은 관찰자 시점, 그러니까 카메라 일인칭 눈의 시점은 전적으로 서양식 시각이라는 것.

그는 몸을 뒤로 젖혀 등받이에 기대고 천재적인 것을 볼 때 늘 그러듯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아마카스가 <풍차>를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은밀하게, 프로테스탄트적 태도로 기뻐한다.

아마카스는 영화관 맨 뒤 구석에서 자기를 향해 혀를 내밀어 신호를 보내는 나신에 붉은 물감을 칠한 젊은 여자를 못 본 척했다.

그녀가 밤 화장을 끝냈을 때, 그는 가터를 풀지도 않고 코를 골면서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있다. 게으른 금발의 파충류 같은 모습. 가발은 그의 옆에 화장 자국이 묻은 베개 위에 놓여 있다. 그녀는 그 부숭부숭한 물건을 들어 올렸다가 손가락 사이로 털이 미끄러져 내리게 한다

그녀는 실수로 벽의 발목 높이에 튀어나와 있는 먼지흡입 장치 헤드를 차서 집 전체의 중앙 진공청소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신경을 건드리는 기계음이 집의 지하층에서 올라오면서 네겔리의 드르렁 소리와 합쳐져, 정말 못 참겠다. 꼬박 두 시간의 잠을 빼앗아간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서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파인더에서 (그냥 삶 속에서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약혼녀와 일본인 사이에 오가는 내밀한 감정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가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는 모습이라니.

클럽은 가볍게 오른쪽으로 올리고, 하늘은 예쁜 구름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그렇게 그는 그녀를 뒤에서 느슨하게 안고 그녀의 손을 골프채 그립 주위로 이끈다. 믿기지가 않네. 네겔리는 생각한다.

그냥 카메라를 내리고,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한쪽 엄지손톱을 물어뜯지만 초승달 같은 손톱 끝은, 제기랄, 뜯길 생각이 없다.

아직 추측의 영역에 있는 문제가 여기서 지금 빨리 둘 사이에 해명될 수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그는 바닥없는, 노란, 떨리는 무기력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아마카스가 다가오자 바로 그에게서 손을 뺀다. 네겔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손 안쪽이 완전히 축축하고 끈끈하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침대 위에 벌거벗은 몸을 뻗고 누워 있는 마사히코와 이다의 기괴한 환상극을 관찰한다. 그는 보고 보고 또 본다. 이다의 굴종적 비명 속에서 ? 입 속에 쑤셔 넣은 하얀 아마포 조각이 그 소리를 억제한다 ? 마사히코가 마침내 그녀 위에 올라간다.

그들이 함께 내는 이 뻔뻔하고 구역질 나는 신음소리,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이 굴욕. 구멍에 대고 있는 그의 눈 속 담청색 홍채에 방 안의 광경이 비쳐, 마치 그의 시선 자체가 이 혐오스러운 장면을 만들어 내는 영사기인 것만 같다.

그는 셔터를 당기고 필름 카트리지가 슬랩스틱과 비극이 뒤엉킨 이 조야한 혼합물로 꽉 채워질 때까지 기다린다. 마사히코와 이다의 비명을 재생할 수 있는 사운드트랙이 없는 것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끔찍한 상상이 그렇지 않아도 이미 타격을 입어 쇠약해진 신경에 극도의 고통을 가한다. 마치 신경이 산(酸) 속에 푹 담긴 느낌이다.

그는 잊어버리고 모자를 빌라에 두고 왔다. 저런, 기막히게 상징적이네.

네겔리는 고개를 들고, 침을 꿀꺽 삼킨다. 여린 눈물 두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주인 여자는 공개적인 감정의 분출에 민망해하며 바닥을 내려다본다. 마음씨 좋은 작가는 식탁에 앉아서 안경을 벗고, 주인 여자에게 사케와 잔 두 개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신의 저편에서 울리는 그 커다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요지부동의 농밀한 남성적 정력으로 자살에 대한 굳은 결의를 품고 이를 신념으로 삼은 자뿐이다.

네겔리는 노래하는 피의 합창이 귀에 쟁쟁히 울리는 가운데, 주먹을 움켜쥐고 의자에서 일어나 주인 남자를 거칠게 밀친다. 그러고는 입구에 가만히 놓여 있는 짐을 집어 들고, 잠겨 있지 않은 미닫이문을 격하게 열어젖히며 거리로 나간다. 나가자. 무조건 여기서 떠나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태평양은 평화롭다. 증기선의 스크루가 대양 속에서 단조롭게 돌아간다. 마치 수족관 속에 들어 있는 거품기 같다.

공은 벌써 쌩하고 총알처럼 창공으로 날아가고, 결국에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게 되어 아무 의미도 없이 저 멀리 바닷속에 빠져 버린다.

귀를 먹먹하게 하는 멜랑콜리한 증기선의 고동 소리가 출발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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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망자들 을유세계문학전집 101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태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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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너무나 무서워, 우린 모두 너무 외로워, 우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증해 줄 우리 바깥의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라져 버린다. 반드시 사라져 버린다. 마치 그림자들이 해시계를 지나가듯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이다.

- 포드 매독스 포드

아스팔트의 움푹 팬 자리에 물이 가득했고, 그런 물구덩이마다 저녁때면 식당의 화려한 조명 간판과 초롱들이 고집스럽게 비치고 있었다. 박자도 없이 철벅이는 끝없는 소낙비 줄기에 부서지고 쪼개진 인공의 빛.

하얗고 고운 뱃살을 살짝 째자마자, 칼날은 벌써 사내의 부드러운 피부 조직을 통과하여 내장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 한 줄기 핏물이 옆쪽에 무한히 섬세한 붓질로 그려진 족자, 가케지쿠 위로 날았다.

그는 긴장과 초조 속에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곧 현실이 될 것만 같은 파국적 재앙이 닥쳐오고 있음을 감지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손끝을 빨고 물어뜯었다. 피부에 생채기가 나고 빨개져 가는 동안, 그는 비행기가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하면서 터져 버리는 것을 거듭 상상했다.

눈 속에서 먹이를 찾으며 스스로에 대한 어떤 의식도 없이 우아하게 납빛 하늘을 떠다니는 까마귀들을.

그는 섬세하고 주의 깊었으며, 신경이 말하자면 피부 바깥에 나와 있는 타입이라서, 얼굴이 빨리 빨개졌다. 확고한 세계상에 대한 건강한 회의는 그의 천성이었다.

그는 몸이 전반적으로 처지고, 둔중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정없이 닥쳐오는 덧없음의 공격 앞에서 무언의 멜랑콜리는 계속 늘어만 갔다.

그 손은 그를 안심시키고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그가 그렇게 원하던 느낌, 잘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그를필립이라고 불렀다. 45년 동안 아버지는 유머로 서툴게 위장된 잔인함을 그에게 투사한 것이다

그는 낄낄거리며 말하기를, 자기가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 닦기를 거부했고, 삶의 마지막 1년 동안은 오로지 초콜릿과 설탕을 탄 따뜻한 우유만을 마셨기 때문에 구강은 푹푹 썩어들어 가는 중인데 이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것, 최종적인 말을 속삭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중화 제국에서 한 범법자가능지처참의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죄수는 야만적이게도 칼로 이리저리 저며졌고, 그렇게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성 세바스찬처럼 황홀경 속에서 하늘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아마카스는 마치 만지면 죽는 독이 그 사진에 발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경악하며 사진들을 떨어뜨렸다. 재현하고 복사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어떤 사건은 우리가 그 일이 재현된 것을 보기만 해도 스스로 거기에 연루된 것 같은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네겔리의 카메라는 때때로 석탄 아궁이에, 장작더미 위에, 동그랗게 머리를 땋은 하녀의 뒤통수에, 금빛 솜털이 먼지처럼 앉은 뒷목에 오랫동안 별 이유 없이 머물러 있다가, 열려 있는 창을 통해 마법처럼 전나무 숲 쪽으로, 눈 덮인 산정으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지금 그가 눈앞에 둔 것은 저 혐오스러운 자살 영화였다. 실제 죽음의 기록. 아마카스는 손을 까딱하여 영사기를 끄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탁상용 선풍기의 눅눅한 바람 속에 앉아 필름을 독일에 보내지 않고 차라리 정부 지하 문서 보관소에 처박아 두고 잠가 버린 다음 영영 잊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속 장교의 고통은 매혹적인 동시에 참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끔찍한 것이 뭔가 더 높은 것, 신적인 것으로 거룩하게 변용되는 것. 흠 없는 죽음의 동경을 지닌 독일인들은 이를 잘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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