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너무나 무서워, 우린 모두 너무 외로워, 우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증해 줄 우리 바깥의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라져 버린다. 반드시 사라져 버린다. 마치 그림자들이 해시계를 지나가듯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이다.
- 포드 매독스 포드
아스팔트의 움푹 팬 자리에 물이 가득했고, 그런 물구덩이마다 저녁때면 식당의 화려한 조명 간판과 초롱들이 고집스럽게 비치고 있었다. 박자도 없이 철벅이는 끝없는 소낙비 줄기에 부서지고 쪼개진 인공의 빛.
하얗고 고운 뱃살을 살짝 째자마자, 칼날은 벌써 사내의 부드러운 피부 조직을 통과하여 내장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 한 줄기 핏물이 옆쪽에 무한히 섬세한 붓질로 그려진 족자, 가케지쿠 위로 날았다.
그는 긴장과 초조 속에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곧 현실이 될 것만 같은 파국적 재앙이 닥쳐오고 있음을 감지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손끝을 빨고 물어뜯었다. 피부에 생채기가 나고 빨개져 가는 동안, 그는 비행기가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하면서 터져 버리는 것을 거듭 상상했다.
눈 속에서 먹이를 찾으며 스스로에 대한 어떤 의식도 없이 우아하게 납빛 하늘을 떠다니는 까마귀들을.
그는 섬세하고 주의 깊었으며, 신경이 말하자면 피부 바깥에 나와 있는 타입이라서, 얼굴이 빨리 빨개졌다. 확고한 세계상에 대한 건강한 회의는 그의 천성이었다.
그는 몸이 전반적으로 처지고, 둔중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정없이 닥쳐오는 덧없음의 공격 앞에서 무언의 멜랑콜리는 계속 늘어만 갔다.
그 손은 그를 안심시키고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그가 그렇게 원하던 느낌, 잘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그를필립이라고 불렀다. 45년 동안 아버지는 유머로 서툴게 위장된 잔인함을 그에게 투사한 것이다
그는 낄낄거리며 말하기를, 자기가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 닦기를 거부했고, 삶의 마지막 1년 동안은 오로지 초콜릿과 설탕을 탄 따뜻한 우유만을 마셨기 때문에 구강은 푹푹 썩어들어 가는 중인데 이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것, 최종적인 말을 속삭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중화 제국에서 한 범법자가능지처참의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죄수는 야만적이게도 칼로 이리저리 저며졌고, 그렇게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성 세바스찬처럼 황홀경 속에서 하늘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아마카스는 마치 만지면 죽는 독이 그 사진에 발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경악하며 사진들을 떨어뜨렸다. 재현하고 복사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어떤 사건은 우리가 그 일이 재현된 것을 보기만 해도 스스로 거기에 연루된 것 같은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네겔리의 카메라는 때때로 석탄 아궁이에, 장작더미 위에, 동그랗게 머리를 땋은 하녀의 뒤통수에, 금빛 솜털이 먼지처럼 앉은 뒷목에 오랫동안 별 이유 없이 머물러 있다가, 열려 있는 창을 통해 마법처럼 전나무 숲 쪽으로, 눈 덮인 산정으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지금 그가 눈앞에 둔 것은 저 혐오스러운 자살 영화였다. 실제 죽음의 기록. 아마카스는 손을 까딱하여 영사기를 끄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탁상용 선풍기의 눅눅한 바람 속에 앉아 필름을 독일에 보내지 않고 차라리 정부 지하 문서 보관소에 처박아 두고 잠가 버린 다음 영영 잊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속 장교의 고통은 매혹적인 동시에 참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끔찍한 것이 뭔가 더 높은 것, 신적인 것으로 거룩하게 변용되는 것. 흠 없는 죽음의 동경을 지닌 독일인들은 이를 잘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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