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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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규가 인류의 속셈을 모르겠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박민규의 속셈을 모르겠다, 라고 말한다. 확실히 누군가의 평처럼 화가 났다, 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뭐랄까, 박민규의 이름으로 나온 네 권의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쩌면 그 평을 보고 나서,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분명한 건 읽는 내내 재미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문체가 너무 어지러웠던 것 같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자꾸 다른 말을 나열해 놓은 것 같다. 읽는 내내 완전히 몰입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분명히 멋진 문체이긴 하지만, 문장간의 호흡이 부족했던 것 같다.

 

 못과 모아이. 그들은 세계가 깜빡한 이들이다. 세계가 깜빡, 깜빡, 깜빡해버린 둘. 읽는 동안 나도 혹시 세계에서 깜빡해버린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무난한 삶은 아니었다, 라고 할까. 어지럽다. 무난한 삶을 꿈꾸는 못. 나도 무난한 삶은 꿈꾼다. 20대 초반의 나이를 가진, 이 시대의 청년들은 무난한 삶을 원할까. 무언가 튀고, 독특하고, 멋진, 그런 삶을 꿈꿀테지. 어째서 나는 야심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무난한 삶을 꿈꾸는 이 시대의 젊은이. 만약 나같은 젊은이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너무 암울할테다.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왜 사는지 아는 인간이 있다는 게 말이나 될까. 일단 이 세상에 인간 중에 태어나서 태어난 인간들이 있기나 할까. 의문이다. 그건 누구도 모른다. 도대체 태어난 걸까.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왜 지구상에 태어나 지구를 망치는 걸까. 배출하는 것은 똥밖에 없는 주제에. 허나 용서한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건 더욱 용서할 수가 없다. 인간에게 그러한 물음은 죄악이다. 끝도 없는 질문의 고리를 달게 되니까. 도무지 답을 내릴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종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교를 믿진 않지만.

 

 그리고 의아함이 들었다. 도대체 왜 따가 존재하는 걸까. 그걸 만든 사람들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 걸까. 다수인 척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아함이 들었다. 다수인 척 살아갈 권리가 있는 걸까. 주위를 둘러 보면 어느 곳에나 따가 있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그것을 주도하는 무리의 우두머리는 항상 존재하고, 그 밑에는 수하들이 항상 존재한다. 다수를 자랑하며. 그 다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은 언제나 다수에 의해 움직여 진다. 그러므로 그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소수의 의견은 묵살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필요악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소수의 권력에 의해 돌아가고, 소수만이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그 사실은 일상에서 망각된다. 다수인 척 살아가는 것이 권력있는 소수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마냥 어리석은 착각을 하는 것이다. 문득 토악질이 치솟는다.

 

 어지러워진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이상기후를 맞은 지구처럼 병들고 썩은 느낌이다. 이럴수가.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잠자고 싶다. 병든 닭새끼마냥 힘이 없어진다. 꾸벅꾸벅, 졸음이 몰려든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달려가는 걸까.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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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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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하지 않게 다시 읽게 되었다. 첫장을 펼치고 나서야 읽었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뽑아 들기 전까지 몰랐다. 한 번만 펼쳐 보았더라면 알았을텐데, 도서관이 문 닫아 버린 후라 급하게 후다닥 챙긴 탓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펴든 책. 아, 그 때도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된 기억이 어렴풋 떠올랐다. 그제서야.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울 준비를 하고 살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 문득 들었다. 준비를 하고 우는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건 간사한 인간들이나 할 수 있는 짓이 아닌가. 갑작스레 닥쳐 온 일의 놀라움 때문에 우는 것이 정상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허나, 울 준비가 되어 있다니. 이 무슨 되먹지도 않은 소리인가.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울 준비를 해야 하는 인생. 그 서러움이 절절히 느껴진다.

 

 당신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우리 지금, 막다른 골목에 있는 거야.

 우리 한 때는 서로 사랑했는데, 참 이상하지. 이제 아무 느낌도 없어. 당신, 그거 어떻게 생각해?

 시간을 질질 끌면서 제집인양 즐기는 어리석고 고독한 젊은 여자나 한가하고 고독한 주부하고는 다르니까.

 과거, 빛나는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우리, 이제 곧 추락할거야.

 

 에쿠니 가오리. 그는 언제나 이별을 말하는 듯 하다. 수 많은 여자들이 그의 소설에서 등장하지만, 사랑과 결혼은 언제나 다다를 수 없는 꿈이며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절망이다. 한 때, 내 몸 전체를 달아 오르게 만들었던, 반짝 반짝 빛나던 그 사랑. 한 때, 내 전부를 바쳐도 아깝지 않으리라 믿었던 그 열정과 애틋함. 그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아스라히 사라져 버린 빈 자리를 쳐다보는 것 같은 서글픔을 표현한다. 그것이 너무, 안타깝다.

 

 이 단편집은 사랑이 끝난 자리에 서 있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고독함은 일상처럼 곁에 와 있고, 그것을 말릴 생각도, 식혀버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이 고독함은 무엇인지 사색하는 듯 하다. 마치 그것 또한 사랑이라 여기며, 즐기는 것 처럼. 물론 언제고 사랑은 끝난다.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언제나 이별은 예견된 것이다. 그것은 생겨나는 동시에 예고한다. 안녕하세요, 난 사랑입니다. 하지만 난 언젠가 죽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세요, 라고. 그러니까 마치, 우린 이제부터 추락하기 시작할 거에요, 기억해 두세요. 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울 준비를 해두세요, 라고. 그가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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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Z
야마다 에이미 지음, 이유정 옮김 / 태동출판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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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 일본 3대 여류작가, 라고 늘상 말하는 작가 중 하나가 야마다 에이미란 사실을 몰랐었다. 한국에서는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에 비해 그다지 비중이 없는 작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주위에서 야마다 에이미 작품을 읽어 봤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일본 3대 여류 작가 중 나머지 하나가 누구였더라, 했던 기억이 나곤 한다. 바로 그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글을 처음으로 읽어 보았다. A2Z. 비로소 나의 짧은 독서량이 드러났다고나 할까.

 

 읽고 나서야 알았다. A2Z가 야마다 에이미 답지 않은, 그러니까 하드하지 않은 글이라고 하는 것을.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꽤나 담백한 작가로군, 하고 생각했다. 겨우 스물여섯글자로 담아 낸 사랑. 스물여섯글자에 맞추기 위해 억지스러운 감이 있기도 했지만, 거의 느껴지지 않도록 한 세심함이 보였다.

 

 겨우 스물여섯 글자로, 관계 모두를 그릴 수 있는 언어가 있다고, 그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예전에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일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스물여섯이든 이백육십이든, 이천육백이든, 관계를 묘사하 수 있는 정확한 말은, 단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혹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온 세상 말을 다 갖다 붙여도, 완전히 묘사할 수 없는 게, 본디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미리 포기했던 부분부터 다시 시작할 때, 말은, 사탕이 녹아들듯, 혀에 익숙해지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거다.

 

 야마다 에이미는 그렇게 말한다. 역시, 아무래도 상관이 없겠지, 라고 나도 생각해 버린다. 실로 글이란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그렇지 않기도 하니까. 누구나 아는 문장이지만, 누구나 생각하지는 않는 그 문장에 마음이 빼앗긴 느낌이다.

 

 나츠는 응, 그랬어. 난, 여태까지, 당신 혼하고 사이가 좋았는데...... 어느새, 나만 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더군. 이라고 솔직하게 털어 놓더니, 별안간 나는 집어든 넥타이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만두자. 내 손은 이런 싸구려 넥타이를 자르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내 가위는, 질투용으로 쓰기엔 너무 아까운, 독일제다. 라며, 귀엽게 말하기도 한다. 서로 바람을 피우는 부부. 그리고 각자의 어린 상대. 일에 대한 열정. 모든 것이 잘게 어우러져 왠지 모르게 이해하게 만들어 버린다. 잔잔하게 웃기도 하고, 격정적인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그리고 이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랄 때, 곁에 있어주지 않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 차이를 나츠와 가즈는 깨달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호감이 가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반면 그런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츠는 돌아온 것이 아닐까. 가즈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말인가. 돌아올 곳이라는 것은 장소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이 더욱 크다, 고 생각한다. 그 곳에 돌아왔을 때의 묘한 안도감을 둘 다 느꼈으리라. 애잔한 느낌이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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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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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이 아니어서 일까. 한국 국적을 가지고는 있으나 박노자는 객관적이고, 그렇기에 성실하다. 하나의 문장을 쓰기위해 얼마나 많은 문헌을 뒤질지 나로선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교과서적인 핵심에서 비켜 선, 그리고 그 핵심을 비판하는 틀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을 무조건 옹오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 박노자가 그만큼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문제를 거침없이 제기한다.

 

 나는 역사를 잘 알지 못 한다. 하지만 우리와 가까운 근대사 정도는 그에 대한 문제 제기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느꼈다. 우리가 무조건 숭배하던 민족지도자들 또한 여러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나, 집단주의, 오염된 이기주의, 지역주의에 찌들어 사실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들도 새로웠다. 교과서는 안중근을 멋진 의사라고 하지, 지역 이기주의에 찌들어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모순과 무지에 휩쌓여 세뇌 당하고 있었던가. 또 얼마나 많은 무관심에 박수치고 있었던가.

 

 그래서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아니, 나는 반성해야 한다. 교과서 만든 역사관에 찌들려 살았던 현실을 반성해야 한다. 알고자 하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이 세상에는 더욱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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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마마 자마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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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착한 여자였다. 진정한 배드 마마 자마는 정녕 누구인가. 하긴, 내 눈 앞에 나타난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알아 볼리는 없다. 나는 어중간한 여자이니까. 생각보다 하드하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쿨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진정 하드한 인생도, 진정 쿨한 인생도 없다. 진정 착한 여자도, 진정 나쁜 여자도 없듯이.

 

 야마다 에이미의 글은 야하지도 하드하지도 않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한 단어를 찾자면, 관능적이다. 관능, 그것을 가진 여자의 섬세함이 풀어져 나오는 듯 하다. 한 올, 한 올, 날실과 씨실로 헐겁게 매어 놓은 천을 풀어 놓는 것 처럼. 거짓 신음을 낼 때, 여성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안정적인 사랑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헌신적인 사랑이란 또 다른 이름의 이기라는 것을 잘 풀어 놓았던 것 같다. 게다가 여성의 발정기, 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당당함이 묻어 났다. 자신의 성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 묘하게도 착 달라 붙는다. 마치 실크를 휘감는 것 처럼. 조잡한 구성과, 매끄럽지 않은 전개도 휘감아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표현력이었다.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는 야마다 에이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가.

 

 솔직히 기대에 비해 실망해 버리고 말았지만, 야마다 에이미의 당당함만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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