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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나 역시 이러저러한 수사로 <달과 6펜스>의 위엄을 깍아 내릴까봐 겁이 난다.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 하고 하찮은 입을 놀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을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한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것은 개인이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대부분 달의 세계를 흔히 몽환과 신비의 세계, 혹은 예술의 세계로 말한다. 그리고 6펜스를 세속의 세계로 칭한다. 하지만 6펜스라는 아주 작은 화폐 단위를 갖고 굳이 세속의 세계로 칭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것 역시 달의 세계로 가기 위한 지극히 단편적이고 저렴한 도구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를 우러러 보든지, 짓밟든지 개개인의 욕망으로 살아가고 있다.
- 하지만 더 잔혹한 것은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점이 별로 없다는 것이엇다.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그 참혹한 일이 있고 나서도 더 불행해졌다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블란치가 자살을 하고 난 뒤에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가 달의 세계를 우러르든 짓밟든 그것은 개개인의 욕망의 차이일 뿐이니까. 또한 블란치가 달의 세계로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작품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고갱의 삶을 스트릭랜드로부터 살짝이나마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읽게 되었지만, 나 또한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역시'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뭔가 자꾸 겹친다 싶더니, 마침내 고흐와 고갱의 관계가 떠올랐던 것이다. 스트로브와 스트릭랜드와의 관계가 마치 고흐와 고갱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스트로브는 고흐와 달리 얼치기 화가였지만, 서로의 관계만 따지고 보면 그리 다를 것이 없지 않던가. 고갱이 자신을 떠나자 귀를 잘라내 버린 고흐처럼, 스트로브의 괴로움이 느껴지는 듯 했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는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인생 최대의 걸작을 완성하게 되지만 그것을 불사르고 만다. 도대체 왜 그것을 불사르도록 그의 아내에게 시켰던 것일까. 알 수 없다. 이전에 '나'는 스트릭랜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도대체 왜 그림을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인지에 대해서에 논할 때였다. '나'는 스트릭랜드에게 만약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 간다면, 계속 그림을 그리겠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그 질문을 하면서, 작가인 자신은 만약 무인도에서라면 글을 쓰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나 또한 그럴 것 같다. 분명 타인에게 평가받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아 줄 누군가가 없다면 도대체 왜 그것을 완성하려 들겠는가.
사람들은 흔히 달의 세계가 훨씬 이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검증된 달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중에게 검증받지 못한 것이라면, 그것은 달이 아니라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 언젠가 쓰레기였던 것이 달이라 칭송받게 된다면, 대중은 다시 그 쓰레기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달의 아름다움을 논하느라 바쁘다. 나 또한 달을 알아볼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기적인 욕설을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도대체 달의 세계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달의 세계가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 쓰레기가 되는 것일까. 정말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것일까. 서머싯 몸은 책 속의 '나'를 통해 알렉 카마이클에게만 묻는 것은 아니다. 바로 우리에게,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