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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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절한 정원>은 모리스 파퐁의 재판을 지켜보는 광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50여년이나 숨겼지만, 마침내 한 역사학자의 기나긴 추적으로 법정에 서게 된 그는 10년형의 유죄 선고를 받는다. 겨우 10년으로 나치 정권 하에서 저질렀던 극악한 범죄의 댓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의 친일파들을 생각하면, 모리스 파퐁의 재판은 정말 놀랍고도 대단하다. 아직도 친일파들을 처리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어쨌든 <처절한 정원>은 그와 관련한 처절한 가족사를 말하고 있다. 광대 복장을 하고 어디든 달려가는 아버지를 미워했던 아들은 삼촌의 고백을 통해 진실을 접하게 된다. 반전이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프롤로그의 기사에 등장한 광대가 누군지 알게 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막장을 달려 갈수록 가슴 한 구석도 먹먹해 졌다.

 

 이 짧은 소설 안에 담겨진 내용은 미처 다 설명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역사적 의식과, 사회가 가져야 할 소명, 복잡다단한 가정사, 특히 범죄 속에 깃든 인간성을 포착해내는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액자 형식으로 이루어 졌으며, 나름대로의 해학과 반전으로 잘 버무려져 있어 놀랍다.

 

 무엇보다 <처절한 정원>은 감동 뿐만 아니라, 삶의 아이러니에 대해, 확고한 역사 의식을 갖고 주저하지 않았다. 한 때는 말할 수 없던 것들을 이제라도 말할 수 있게 된 현실에, 우리는 감사해야 할까. 아니면 너무 늦었다고 책망하고 주저 앉아야만 할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 라는 말이 있다. 절망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청산해야 할 과오가 있고, 그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잊어선 안 된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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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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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사카 코타로, 그와는 두번째 만남이다. 지금까지 만난 그는, 알듯 말듯한 묘한 분위기와 느긋하면서도 쫓기는 듯한 촉급함, 담백하고 매력적인 인물들, 이런 것들로 능수능란하게 짜여진 그의 책들은 꽤 즐거움을 안겨주는 편이었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당돌하게도 하느님을 가둘 수 있다고 외치는 여자 고토미와 부탄에서 온 그의 연인 도르지, 또 365일을 연인들의 생일로 채우겠다는 다부진 희망을 가진 가와사키의 만남에 유학생 시나가 끼어 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고토미들간에 감춰진 미스테리의 결정적 열쇠를 제공하는 펫숍 점장 레이코까지. 이사카 코타로는 이 인물들을 통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끌어 간다. 게다가 가와사키의 정체라든지 고토미의 마지막이라든지 도르지의 행방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의외의 방식으로, 또 즐겁게 전개된다.

 

 이야기는 고토미들이 겪었던 2년 전의 일과 시나가 끼어들기 시작한 이후부터를 현재의 일로 설정해서, 각기 다른 화자들이 번갈아 들려주는 형식이다. 시작은 이렇다. 씁쓸한 첫사랑의 추억으로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을 흥얼거리는 시나가 옆집에 사는 가와사키의 서점털기 작업에 동참할 요원으로써 낙점된 것이다. 이유는 밥 딜런의 노래를 흥얼거렸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들어야 했다. 또 <Like a rolling stone>도.

 

- 라디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그의 대표곡인 <Like a rolling stone>이었다. "맞아." 가와사키는 그렇게 말하고 그 라디오카세트를 코인로커 안에 밀어 넣었다. 이건 뭔가 특별한 의식일까. 나는 의아했다. "하느님을 가두는 거야." 가와사키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황급히 머리를 굴리며 추측을 해 보았다. 그는 딜런의 목소리를 '하느님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로커에 집어넣고, 그렇게 하느님을 가둔다는 거야?" "그래." 가와사키가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430-431쪽)

 

 시나가 서점의 뒷문을 지키며 불렀던  <Blowin' in the wind>와 가와사키가 코인로커에 가둔 <Like a rolling stone>을 들어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예의인 것 같았다. '하느님을 가두면 된다'고 호언장담하던 고토미의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으면 했다. 설령 그것이 농담이었더라도, 가와사키의 충격과 행동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의 선택을 믿고 싶었던 것이다. 집오리와 들오리가 하느님을 가둔 코인로커를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들의 정의와 선택이 꼭 이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는 못 했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그것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약속했던 다음 만남은 평화롭길 바란다. 나쁜 일은 모두 일본 정치가들을 비교해 욕하는 가와사키나, 그 나쁜 것에 초연해지기 위해 부탄 청년 도르지가 하는 말이 귓가를 쨍쨍하게 울리는 듯 하다. 부탄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경쾌하게 울리는 클랙슨 덕택에 도르지는 무어라 했던가.

 

-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딱 두가지만 지키면 돼. 클랙슨을 울리지 않는 것과, 사소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는 것. 그것 뿐. (312쪽)

 

 그들의 정의는 그들의 것이다. 그들이 선택했으니까, 나의 것이 될 수는 없다. 허나, 그들의 정의든 나의 정의든 신경쓰지 말자. 인생은 단답형도 아니고 정답도 없다.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나의 정의이듯 그들의 정의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슨 상관이랴. 내 스스로 가책없이 자신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정의다.

 

 나도 모르게 밥 딜런을 흥얼거리며.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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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 - 신화 속에서 찾은 24가지 사랑 이야기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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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묘한 습성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대체로 다 알고 있는 이야기면서도 신화에 관련된 책만 보면 덤벼 들게 된다는 것이다. 한 두번 본 것도 아니고 새로운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읽게 되는 것을 보면, 신화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그것은 아마 인간의 이기적인 언사가 그들 자체의 것이 아니라, 신들도 한 몫 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인간의 발버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때때로 그들이 보여주는 질투와 증오, 잔인성을 보며 위안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책을 통해 얻는 카타르시스와도 닮아 있다. 인물에 동화되는 한편,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위안과 함께 주어지는 달콤한 기분 말이다.

 

 같은 레퍼토리라도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있다. 신화라는 방대한 소재 또한 마찬가지다. 이 책은 신들의 사랑을 테마로 엮었고, 그것을 노래한다. 운명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든 자살로 끝나는 비운의 사랑이든 이것을 엮기에는 사랑이라는 주제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 책에서는 기존에 알고 있던 부분을 생략하거나 과감히 덧붙인 부분이 있어 약간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것 또한 저자의 취향이라기 보다 어떤 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체계가 다른 것이라 자위한다.

 

 <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라는 이 책에 등장하는 신들은 아름다운 사랑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질투와 오해, 애달픈 이별도 등장한다. 과장과 전도를 통해 더욱 심화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인간사의 일이라 해도 과히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 유명한 제우스의 바람과 헤라의 질투는 못내 안타깝다. 헤라를 두고 사방팔방에 널린 여자들을 헤집고 다니는 제우스도 제우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헤라도 안타까운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나르키소스를 잊지 못해 메아리로 나은 에코의 사랑이나 레안드로스가 바다를 건널 때 등불을 켜놓고 기다리던 헤로의 사랑이나 그 끝은 괴롭거나 아픈 것일지 몰라도 사랑인 것이다. 순간의 오해로 져버려도 이전의 믿음으로 추억을 남기는 것이 그것 아닐까.

 

 이 책의 테마는 사랑이다. 그리고, 인류의 테마도 사랑이다. 그것이 부모이든 자식이든 혹은 연인이나 친구이든 간에 인류는 언제나 사랑을 꿈꾼다. 사랑을 하고 얻기 위해 그 수단을 쟁취하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또, 신과 달리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것은 더욱 애달프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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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빠지다
김상규 지음 / GenBook(젠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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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국어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보노라면, 화가 난다기 보다 안타깝다. 고등학생 시절, 한국에 대해서 비논리적인 예를 들어 비난만 하고, 자신은 미국을 사랑하며 반드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겠노라며 영어 공부만 아침부터 밤까지 하던 친구가 있었다. 아, 사실 나는 그 시절에는 안타깝기 보다 화가 났다. 안 그래도 새까만 녀석이 서양인의 흰 피부를 찬양하며, 흑인에 대해 아낌없이 비난하는 것부터 짜증이 났었다. 반드시 새파란 눈과 노란 곱슬머리를 가진 서양인과 결혼하겠다고 떠들고 다니던 그 친구가 못내 거슬렸던 것이다. 그렇게 미국이 좋으면 얼른 가버리지, 왜 아직도 한국이 있는 것인지 의아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지금 나와 같은 대학 간호학과에 있다. 즉, 아직도 한국에 있다. 도대체 언제 미국에 이민을 가겠다는 걸까. 더불어 일본을 찬양하며, 한국을 욕하던 친구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런 이들을 보면, 오히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도 나는 한국이 좋다. 한국어가 좋다. 우리말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국수주의에 휩싸여 있는 어리석은 국민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다만, 내 나라가 좋고, 내 말이 좋을 뿐이다. 내가 태어났고,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가 있는 한국이 좋다. 단지 그 뿐이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의사 전달 수단도 바로 모국어 아닌가. 내가 태내에서 부터 듣고 자란, 우리말. 그리고, 그런 우리말을 배워 보겠다고 국문학을 전공으로 택한 내가 아니던가.

 

 현직 국어 교사라는 김상규가 쓴 <우리말에 빠지다>라는 이 책은 그런 우리말을 찾아 뿌리를 알려 준다. 찾아 보려고 애써도 쉽게 찾기 힘든 뿌리를 조근조근 들려 준다. 출퇴근 길에, 혹은 등하교길, 휴식 시간에 조금씩 읽을만큼 짧은 분량으로 우리말의 뿌리, 우리의 뿌리를 알려주고 있었다. 당시 생활상이나 우리 고유의 문화를 덧붙여 가며, 우리가 모르던 우리말, 혹은 잘못 이해하고 있던 우리말을 설명한다.

 

 책에서 소개한 몇가지를 예로 들어 본다.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에비'라는 단어였다. 흔히 아기가 더러운 것을 만지거나 잘못했을 때 '에비, 에비~ 더러워, 만지면 안돼.'라고 말했던 단어가 아닌가. 그 단어의 본래 의미가 귀와 코, 즉 이비(耳鼻)였다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인이 자신의 무공을 증명하기 위해, 학살한 조선 사람들의 귀와 코를 베어 가져간 것에서 '이비'라는 한자를 쓴 것이다. 일본 교토에 있는 천인비총(千人鼻塚)이 바로 조선인 천여명의 코를 묻어 만든 무덤이라 하니, 얼마나 잔인한 단어의 유래인가.

 

 또 가정이 깨진다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파경(破鏡)'이라는 단어는 사실 이별이 아니라 재회를 뜻하는 단어였다 한다. 재회를 약속한 연인이 거울을 깨어, 훗날 그 거울이 정확히 아귀가 들어 맞는 것으로 서로를 확인한 것이 유래이다. 그런데 이것이 와전되어, 우리는 거울이 깨진다는 것을 불길한 의미로 받아 들이고, 헤어진다는 표현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말 어휘를 중심으로 그 어원을 밝히고, 그 말에 담긴 뜻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짧게 쪼개져 있어 부담없이 우리말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부디 많은 이들이 우리말을 더없이 사랑하고, 또 바르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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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재테크 행복한 가계부 - 행복한 돈 이야기
제윤경 지음 / Tb(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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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이 책은 돈을 벌게 해주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의 사실로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재테크 열풍을 살짝 틀어서 돈이 새지 않도록 도와주는 책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돈에 대한 건전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돈맹이나 금융맹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책에서는 돈맹과 금융맹의 정도, 즉 유형을 제시하고,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안타까운 점은 유형과 테스트의 배치이다. 테스트를 먼저 하고 유형에 대해 설명을 했더라면 테스트의 정확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 유형에 대한 장단점을 먼저 제시하고 나니, 부정적인 결과에 속하지 않기 위해 테스트의 설문을 교묘히 피해가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적금과 펀드, 보험 등의 설명과 주의할 점을 보여준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단어들에 대한 이해만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짜여져 있는 점이 돋보인다. 또 설계사와 상담직원에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그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것, 앞서 말한 돈맹과 금융맹에서 벗어나기 위한 몇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말미에는 부동산 투기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지나치게 계몽적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돈에 대한 건전한 태도를 보여 주어 신뢰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말을 동감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오열을 토하는 서민들의 마음이 절절하다. 여기서 또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책 속에서 계속 지칭되는 '서민'이라는 단어인데, 차라리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책의 내용이 서민, 즉 하류층보다는 중산층을 타겟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과 하류층을 한 등속으로 묶어 서민이라고 총칭하기에는 책에서 말하는 서민의 개념이 너무 비좁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용적인 가정경제 입문서로 보기에는 모자르지 않았으나, 덕분에 이 책을 재테크로 분류하기에는 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어쨌든지 간에 지출과 수입에 대한 금전 관리만은 뚜렷했지만 그 밖의 금융 관련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나에게는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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