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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빠지다
김상규 지음 / GenBook(젠북)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모국어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보노라면, 화가 난다기 보다 안타깝다. 고등학생 시절, 한국에 대해서 비논리적인 예를 들어 비난만 하고, 자신은 미국을 사랑하며 반드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겠노라며 영어 공부만 아침부터 밤까지 하던 친구가 있었다. 아, 사실 나는 그 시절에는 안타깝기 보다 화가 났다. 안 그래도 새까만 녀석이 서양인의 흰 피부를 찬양하며, 흑인에 대해 아낌없이 비난하는 것부터 짜증이 났었다. 반드시 새파란 눈과 노란 곱슬머리를 가진 서양인과 결혼하겠다고 떠들고 다니던 그 친구가 못내 거슬렸던 것이다. 그렇게 미국이 좋으면 얼른 가버리지, 왜 아직도 한국이 있는 것인지 의아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지금 나와 같은 대학 간호학과에 있다. 즉, 아직도 한국에 있다. 도대체 언제 미국에 이민을 가겠다는 걸까. 더불어 일본을 찬양하며, 한국을 욕하던 친구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런 이들을 보면, 오히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도 나는 한국이 좋다. 한국어가 좋다. 우리말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국수주의에 휩싸여 있는 어리석은 국민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다만, 내 나라가 좋고, 내 말이 좋을 뿐이다. 내가 태어났고,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가 있는 한국이 좋다. 단지 그 뿐이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의사 전달 수단도 바로 모국어 아닌가. 내가 태내에서 부터 듣고 자란, 우리말. 그리고, 그런 우리말을 배워 보겠다고 국문학을 전공으로 택한 내가 아니던가.
현직 국어 교사라는 김상규가 쓴 <우리말에 빠지다>라는 이 책은 그런 우리말을 찾아 뿌리를 알려 준다. 찾아 보려고 애써도 쉽게 찾기 힘든 뿌리를 조근조근 들려 준다. 출퇴근 길에, 혹은 등하교길, 휴식 시간에 조금씩 읽을만큼 짧은 분량으로 우리말의 뿌리, 우리의 뿌리를 알려주고 있었다. 당시 생활상이나 우리 고유의 문화를 덧붙여 가며, 우리가 모르던 우리말, 혹은 잘못 이해하고 있던 우리말을 설명한다.
책에서 소개한 몇가지를 예로 들어 본다.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에비'라는 단어였다. 흔히 아기가 더러운 것을 만지거나 잘못했을 때 '에비, 에비~ 더러워, 만지면 안돼.'라고 말했던 단어가 아닌가. 그 단어의 본래 의미가 귀와 코, 즉 이비(耳鼻)였다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일본인이 자신의 무공을 증명하기 위해, 학살한 조선 사람들의 귀와 코를 베어 가져간 것에서 '이비'라는 한자를 쓴 것이다. 일본 교토에 있는 천인비총(千人鼻塚)이 바로 조선인 천여명의 코를 묻어 만든 무덤이라 하니, 얼마나 잔인한 단어의 유래인가.
또 가정이 깨진다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파경(破鏡)'이라는 단어는 사실 이별이 아니라 재회를 뜻하는 단어였다 한다. 재회를 약속한 연인이 거울을 깨어, 훗날 그 거울이 정확히 아귀가 들어 맞는 것으로 서로를 확인한 것이 유래이다. 그런데 이것이 와전되어, 우리는 거울이 깨진다는 것을 불길한 의미로 받아 들이고, 헤어진다는 표현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말 어휘를 중심으로 그 어원을 밝히고, 그 말에 담긴 뜻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짧게 쪼개져 있어 부담없이 우리말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부디 많은 이들이 우리말을 더없이 사랑하고, 또 바르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