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사카 코타로, 그와는 두번째 만남이다. 지금까지 만난 그는, 알듯 말듯한 묘한 분위기와 느긋하면서도 쫓기는 듯한 촉급함, 담백하고 매력적인 인물들, 이런 것들로 능수능란하게 짜여진 그의 책들은 꽤 즐거움을 안겨주는 편이었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당돌하게도 하느님을 가둘 수 있다고 외치는 여자 고토미와 부탄에서 온 그의 연인 도르지, 또 365일을 연인들의 생일로 채우겠다는 다부진 희망을 가진 가와사키의 만남에 유학생 시나가 끼어 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고토미들간에 감춰진 미스테리의 결정적 열쇠를 제공하는 펫숍 점장 레이코까지. 이사카 코타로는 이 인물들을 통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끌어 간다. 게다가 가와사키의 정체라든지 고토미의 마지막이라든지 도르지의 행방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의외의 방식으로, 또 즐겁게 전개된다.

 

 이야기는 고토미들이 겪었던 2년 전의 일과 시나가 끼어들기 시작한 이후부터를 현재의 일로 설정해서, 각기 다른 화자들이 번갈아 들려주는 형식이다. 시작은 이렇다. 씁쓸한 첫사랑의 추억으로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을 흥얼거리는 시나가 옆집에 사는 가와사키의 서점털기 작업에 동참할 요원으로써 낙점된 것이다. 이유는 밥 딜런의 노래를 흥얼거렸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들어야 했다. 또 <Like a rolling stone>도.

 

- 라디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그의 대표곡인 <Like a rolling stone>이었다. "맞아." 가와사키는 그렇게 말하고 그 라디오카세트를 코인로커 안에 밀어 넣었다. 이건 뭔가 특별한 의식일까. 나는 의아했다. "하느님을 가두는 거야." 가와사키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황급히 머리를 굴리며 추측을 해 보았다. 그는 딜런의 목소리를 '하느님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로커에 집어넣고, 그렇게 하느님을 가둔다는 거야?" "그래." 가와사키가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430-431쪽)

 

 시나가 서점의 뒷문을 지키며 불렀던  <Blowin' in the wind>와 가와사키가 코인로커에 가둔 <Like a rolling stone>을 들어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예의인 것 같았다. '하느님을 가두면 된다'고 호언장담하던 고토미의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으면 했다. 설령 그것이 농담이었더라도, 가와사키의 충격과 행동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의 선택을 믿고 싶었던 것이다. 집오리와 들오리가 하느님을 가둔 코인로커를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들의 정의와 선택이 꼭 이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는 못 했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그것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약속했던 다음 만남은 평화롭길 바란다. 나쁜 일은 모두 일본 정치가들을 비교해 욕하는 가와사키나, 그 나쁜 것에 초연해지기 위해 부탄 청년 도르지가 하는 말이 귓가를 쨍쨍하게 울리는 듯 하다. 부탄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경쾌하게 울리는 클랙슨 덕택에 도르지는 무어라 했던가.

 

-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딱 두가지만 지키면 돼. 클랙슨을 울리지 않는 것과, 사소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는 것. 그것 뿐. (312쪽)

 

 그들의 정의는 그들의 것이다. 그들이 선택했으니까, 나의 것이 될 수는 없다. 허나, 그들의 정의든 나의 정의든 신경쓰지 말자. 인생은 단답형도 아니고 정답도 없다.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나의 정의이듯 그들의 정의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슨 상관이랴. 내 스스로 가책없이 자신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정의다.

 

 나도 모르게 밥 딜런을 흥얼거리며.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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