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의 심리학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654
칼 야스퍼스 지음, 이기흥 옮김 / 아카넷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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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번역서의 제목을 원제목과는 전혀 다르게 짓는 경우들이 많고, 원본조차도 내용과 무관한 그럴듯한 제목을 짓는 경우가 흔한데, 딱딱한 어휘들을 제목에 그대로 드러내는 걸 보면, 역자와 편집자는 매우 우직한 분들인 듯싶다. 제목을 약간만 바꾸었더라면(심리적 세계관?’ ‘세계를 바꾸는 심리’? 등등 ㅎ) 좀 더 시선을 끌지 않을까?.

 

 극한의 전자 현미경적 묘사와 탐구가 끝없이 계속되는 분석을 한다는 점에서는, 칸트나 헤겔류의 관념 철학 저술들과 유사하지만, 연이은 중문의 문장들도 주어와 술어 및 품사들을 따져가며 차근차근 읽으면 결국에는 이해가 된다는 점이, 역시 실존 철학자의 글이 지니는 차이점인 듯하다. 물론 이렇게 매끄러운 문장은 원전에 대한 번역가의 이해가 저자의 이해와 거의 같아야만 가능할 거라는 점에서 역자의 능력도 대단하다 여겨지며, 그 덕분에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본문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영혼이라는 어휘는, 저자의 생애 마지막 저서인 계시에 직면한 철학적 신앙에서 언급되는 계시라는 어휘도 상징하듯, 저자가 생애 초기부터 일관되게 기독 신학적 정체성을 유지해 왔음을 보여주는 근거라 여겨지는데, 그러기에 바로 이점이 결국 저자의 철학적 한계가 아닐까 여겨진다. 신 앞에서는 철학도 실존도 생명도 자유의지도 모두 그 자체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고 말 것이기에.

 저자의 태도 열정적이고, ‘세계상들 형이상학이며, ‘정신의 삶 혹은 힘낭만주의자일 듯하다(p. 825, 2).

 

 역자의 노고에 대한 약소한 답례:

 

p.36, 둘째 문단; ‘경외심이 없다는 비난 받곤 한다’ ---> ‘경외심이 없다는 비난 받곤 한다’. 혹은, ‘경외심이 없다 비난 받곤 한다’. 탈자.

 

p.59, 둘째 문단; ‘사실 자체는 구체적이고 무관하지만 ~’ ---> ‘사실 자체는 구체적이고 무한하지만 ~’. 오자.

 

p.110, 첫째 문단; ‘신비적이거나 이념적인 것 안에 있는 합리적인 것과 심미적인 것~’ ---> ‘신비적이거나 이념적인 것 안에 있는 심미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 뒤바뀐 듯.

 

p.134, 첫째 문단; ‘개념적이거나 심미적인 한정 및 관계 설정의 정도가 아니고는 다른 사람과 ~’ ---> ‘개념적이거나 심미적인 한정 및 관계 설정을 안 하고는 다른 사람과 ~’. 어색함.

 

p.163, 넷째 문단; ‘신의 항상적인 현존(a) 에서 또는 마치 일원성이 이제 묘사될 수 있을 (b)처럼 지양되어 있는(c) ~’;

(a~c)신비로운 침잠 속에서의 삶을 묘사하는 신비적인 태도이고, ‘내용이 아닌 체험으로만 존재(p. 162~163)’ 해야 하므로, ‘내용으로 묘사되는 것지양 되어야 하기에; (b)일원성이 이제 묘사될 수 없을 것처럼로 수정 되어야 하며, 그래야 다음 (c) 문장의 지양과도 맥락이 맞게 된다.

 

p.266, 역자 주. ‘unendlich’‘endlos’의 차이점에 대한 역자의 설명 ‘1인칭 시점‘3인칭 시점은 여전히 모호하다.

 대신 수학에서의 가무한실무한 개념을 ‘unendlich’‘endlos’에 각각 적용하면 어떨지. 정량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최대로 무~~~지하게 큰 수 예로서, 10의 천조 승쯤 되는(?) ('X')는 규정 가능하고 인식 가능하다. 그런데 그 수' X'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보다 하나 더 큰 'X'+1도 여전히 정량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이를 끝없이 반복 지속 할 수 있기에, 끝을 맺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인식할 수 있는수가 실무한이다. 이에 비하여 가무한(수학의 무한기호: 누은 8)처럼 실제 숫자가 아닌 기호로서의 형용사일 뿐이어서, 그 크기를 정량화할 수가 없는 인식할 수 없는 무한이다(수학의 무한기호+1은 의미가 없다). 그러하기에 알려지지 않고 비대상적인 것(p. 265)’이며, 내용이 비워져 있고’ ‘형태와 형상이 없고 단순한 이념일 뿐이다’(p. 266). 수학에서 가무한은 의미가 없는 단어다. 연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p.322, 첫째 문단; ‘아르케, 원리, 원시적인 것 등’ ---> 아르케가 이미 원리, 원시적인 것 등이기에 아르케(원리, 원시적인 것 등)으로 하면 어떨지

 

p.397, 첫째 문단; ‘의지체가 없으면 삶은 아마 멈추어 버릴 것이다’ --->‘의지처가 없으면 삶은 아마 멈추어 버릴 것이다’. 오자.

 

p.493, 셋째 문단; ‘사람은 명료하고 이해 가능한 인정하고 행하려고 하지만~’ ---> ‘사람은 명료하고 이해 가능한 한 인정하고 행하려고 하지만~’. 탈자.

 

p.694, 둘째 문단; ‘그러나 고찰은 또한 다양한 가능성들 중에서~’ ---> ‘고찰은 또한 다양한 가능성들 중에서~’. 그러나는 맥락이 맞지 않기에 삭제되어야 함.

 

p.746, 첫째 문단; ‘우리는 보통 주객 분할 아래서 살아간다 ---> ‘우리는 보통 주객 분할 아래에서 살아간다’. 탈자.

 

p.746, 둘째 문단; ‘빌헬름 아우구스트 메서인용문 서지 사항이 누락 되어있다.

 

p.758, 첫째 문단; ‘플로티노스는 세계가 무엇에 기반해 있는지 알고 있다(a).’;

 명제 (a)는 저자 자신이 일자(一者)에 대한 플로티노스의 확증 편향적 세계관에 동조하는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명제다. 합리적 세계관을 지닌 철학자라면 플로티노스는 세계가 무엇에 기반해 있는지를 믿고 있다.정도로 언급했어야 적절하다.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됬지만.

 

p.767~769, 노자 인용문; 첫 번째 인용문은 노자 48장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지만 48장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짜깁기 문장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노자 20장의 전문을 인용하였는데, 저자가 서양인이 번역한 작품을 인용한 탓인지 느낌이 매우 다르다. 저자는 노자를 신비체험의 세 가지 양상 중 첫 번째 유형으로 분류하지만(p. 756), 이는 혹시 저자가 노자를 오독 한 탓은 아닐지 짐작해 본다. 많은 사람에게 노자는 세 번째 유형으로 여겨지는데, 노자는 제왕을 위한 책이라거나 병가(兵家)의 책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서양인이 동양 서적을 인용한 구절이 있는 책을 번역할 경우, 원서를 그대로 번역하면 두 번의 번역 과정을 거치면서 의미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이를 피하려고 역자가 원본 우리말 책 내용을 인용하고 역자 주를 다는 경우가 많다.

 

p.792, 첫째 문단; ‘심리학의 지도 이념로서의 인격 이념과 ~’ > ‘심리학의 지도 이념으로서의 인격 이념과 ~’. 탈자.

 

p.815, 둘째 문단; 사람들은 그것이 이성의 이념의 반대짝이라는 것, 이성 이념은 개념이라는 것 ~’. 한 문장 안에서 동일한 단어는 통일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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