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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동경대전 1~2 - 전2권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21년 4월
평점 :
2권 영소편 17-1, p. 301, ‘옥안’ 첫 문장: “‘물수탈승미리용勿水脫乘美利龍’에서 의미 있는 글자는 “수승용水乘龍일 뿐이고, “문문범호나무수問門犯虎那無樹”에서 의미 있는 글자는 ‘문호수門虎樹’일 뿐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7자나 3자나) 의미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시는 전형적인 선시다. 첫째 연 ‘花扉自開春風來, 竹離輝踈秋月去’는 육안에 보이는 ‘현상’ 즉 ‘기연’을 묘사한 구절이고, 둘째 연 ‘影沈綠水衣無濕, 鏡對佳人語不和’는 심안에 보이는 ‘실상’ 즉 ‘불연‘을 묘사한 구절이며, 문제의 셋째 연 ’勿水脫乘美利龍, 問門犯虎那無樹”는 불연기연을 묘사한 구절이지 싶다(일반적인 시가 아닌 선시를 해석한다는 게 조심스럽다).
저자는 이 구절이 의미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나, 이 구절은 선어록에서 ’있는 그대로 명명백백하다‘는 의미로 등장하는 다양한 관용구(예; ’삼칠은 이십일‘, 3X7=21; ’뜰앞의 잣나무‘) 같은 언명이라 여겨진다. 선어는 원래 ’짱구‘(저자가 자주 쓰는 표현)를 굴리면 절대 이해 되지가 않는다!
저자가 의미 없다고 여기는 글자들(물勿, 탈脫, 미르美利, 문問, 범犯, 나무那無)은 모두 우리말 발음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한자들이다. ”물수, 탈승, 미르용! 문문, 범호, 나무수!“ 고상한 이론을 머릿속에서 모두 지우고 단순히 읊어보면, 이것은 서당에 처음 간 아이들이 첫날 배워 신나게 외우는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르황“ 그 자체다. 수운은 서당 훈장을 한 사실이 있다.
저자는 ’미르‘가 ’용‘을 나타내는 우리말인 걸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물수, 탈승, 미르용! 문문, 범호, 나무수!“ 명명백백 그대로다. 저자가 매사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여기기 때문에 놓친 실수이지 싶다. 수운은 ’르‘ 발음에 쓰일 한자로 ’利‘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연이 ’기연‘ ’불연‘을 넘어 ‘불연기연’을 묘사한 거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사심 없이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아무것도 가릴 게 없이 있는 그대로 명명백백한 ”山是山 水是水“(‘하늘은 검고 땅은 누런’) 그 자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에 비친 옷 그림자가 물속에 있는 건 엄연한 현상으로서 기연이고, 그런데도 물에 젖지 않는 건 이해되지 않는 불연이지만(우리는 대부분 이걸 놓친다!), 모든 현상은 지금 여기 엄연히 동시에 존재하기에 불연기연이다.
둘째 연 첫 구절은 야보도천의 싯구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低水無痕“을 연상시키는 구절이고, 두 번째 구절은 선시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싯구다. 첫째 연에서 셋째 연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그대로 기연에서 불연을 거쳐 기연불연에 이르는 과정으로서, 수운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