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의 감정사전 : 오늘은 어떤 마음인가요? -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에 대한 일러스트 북 마지의 감정사전
모린 마지 윌슨 지음, 박성진 옮김 / 큐리어스(Qrious)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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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들에 대한 안내서, 

<마지의 감정사전 : 오늘은 어떤 마음인가요?>.

잘 지내느냐는 인사에 무심코 괜찮다, 잘 지낸다는 인사를 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잘 지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아닌 경우가 많지요.

우린 좋은 감정은 공유하기를 꺼리지 않는데, 부정적인 감정은 

남에게 털어놓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에게 드러내서는 안 되는 '나쁜' 감정이라는 것은 없다고 

저자는 생각한대요.

감정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마지의 감정사전 : 오늘은 어떤 마음인가요?>를 읽고 

우리도 어떤 마음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짜증 날 때가 많죠, 어릴 땐 어릴 때라서 어른이 되면 어른이라서 말입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할 때 긴 줄을 보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눈앞에서 놓칠 때 말입니다.

그런데 대체 이런 일들이 '왜' 나를 짜증 나게 할까요?

이런 상황을 좀 더 매끄럽게 하는 방법은, 외부의 불편한 자극들을 향한

내 신경을 나의 내부로 돌려서 짜증 그 자체에 집중해봅시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짜증은 내 머리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거죠.

내 몸이 조용함, 한적함 등의 휴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 

혹은 짧은 낮잠을 원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짜증이 날 때 스트레스 관리법으로 어떻게 할지 평소에 생각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집순이인 전 하루 종일 집에서 잘 지내고, 침대에서 뒹굴 수 있지요.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잠시 후 원래대로 침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라는 글을 보고 저를 보는 것 같았답니다.


우리는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오는 기쁨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발가락 사이의 모래를 핥는 파도,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문장, 

날아온 프리스비를 완벽하게 잡아냈을 때, 공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합주,

우리 엄마의 썰렁한 말장난에 터지는 웃음, 누군가 나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줄 때' 저자는 느낀대요.

전 길을 걷다가 맛난 간식을 파는 가게나 이쁜 카페를 발견했을 때, 

도서관에 갔는데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 신간도서에 꽂혀있을 때, 

아이가 수고했다는 말을 할 때 기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새로운 시도는 겁이 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위한 가이드'를 읽으며 도전해봅시다.

지금 시도한 새로운 것을 남은 평생 계속해야 하는 건 아니며, 

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시도를 하면 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분노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자신의 분노 지수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침착, 거슬림, 짜증, 분함, 기분 나쁨, 분노, 씩씩대는, 몹시 분노, 

격한 분노, 분노 폭발'처럼요.

하지만 그런 분노를 생산적으로 바꿔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답니다.


'당신은 어떤 것에 고마움을 느끼나요?'에 하나씩 체크하다 보면 

감사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다니다 보니 

마스크 없이 다니던 예전이 그렇게 감사한 일인지 몰랐어요.

이제 일상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아야겠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모두 문제없어요. 괜찮아요. 정말로."




기쁨, 슬픔, 희망, 분노 등의 이런 감정들은 자연스럽고 정상이라고 

<마지의 감정사전 : 오늘은 어떤 마음인가요?>에서 말합니다.

감정적이지 않은, 어른인 척하면서 억누르지 마세요.

<마지의 감정사전 : 오늘은 어떤 마음인가요?>에서 인간의 감정이 가진

다양함과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긍정하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어떤 마음인가요, 표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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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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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부터 "머니투데이"에 연재된 <남기자의 체헬리즘>을 묶어서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헬리즘>이란 동명의 책이 나왔습니다.

저자인 기자가 다른 사람의 삶을 하루 체험하고 

그때의 경험과 느낌을 쓴 기사로,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직업 혹은 삶을 체험해봄으로써 그들의 삶의 위대함, 

혹은 힘듦을 느껴보고, 소중함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저자인 남기자가 어떤 체험을 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적었습니다.

시늉만 낸 하루 체험이 아니라 온전히 하루를 체험하면서 

느낀 감정과 불편, 힘듦을 사진과 글로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체험한 하루를 끝내고 자신의 소감을 적었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되면 좋겠다는 저자의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헬리즘>의 첫 번째 체험은 

브라를 착용한 채로 이틀 동안 지냈답니다.

일단 자신의 체형에 맞는 속옷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겨우 찾아서 착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어려웠대요.

브라를 착용하는 순간 갑갑해지고, 숨을 크게 쉬기 어려웠으며, 

약 10분이 지나자 현기증도 오는 것 같았답니다.

이렇게 불편한 것을 10대 때부터 수십 년간 해왔을 여자를 생각하니 

일상 풍경도 다르게 보이더랍니다.

처음엔 걷는 것도 집중할 수 없었고, 더운 여름에 체험하다 보니 

앞가슴 양쪽을 누르는 와이어의 압박과 어깨 끈이 신경 쓰여 

땀이 나고 습기도 차는 것 같았대요.

만원 지하철을 타니 그 강도는 점점 심해졌고, 

착용 세 시간이 되자 불편함에 적응이 되었답니다.

집으로 돌아와 브라를 벗어던지고, 다음 날 아침, '노브라' 시선을 느끼려

얇고 몸에 딱 붙는 흰 티에 브라를 착용해 보았대요.

여성의 '노브라'가 남성의 '브라'만큼 시선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결은 다르지만 선입견을 깨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 시행해보았답니다.

회사에 오는 출근길이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다고 남기자는 털어놓습니다.

육체적인 불편함보다 더 힘든 건, 버거운 시선이었대요.

누가 뭐라 안 했어도 그것만으로도 무언의 족쇄임을 깨달았답니다.



애 없는 남자가 해본 육아, 노인 분장을 하고 노인 체험 장비를 착용해

80세 노인의 하루를 살아보고, 24년 만에 경기도 2곳의 초등학교에서 

초등생의 하루를 지내보고, 취준생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로 

자소서를 솔직하게 쓰고 응시하며 유기견 보호소에서 유기견을 

구조하는 팅커벨 프로젝트 대표와 하루를 동행하고, 

폐지 165킬로그램을 주워 1만 원 버는 생활도 함께 해보고, 

환경미화원으로 홍대 거리를 청소하고, 시각장애인으로 벚꽃축제에 가보고,

소방대원의 하루를 경험하고,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우체국 집배원의 하루를 체험했습니다.


<남기자의 체헬리즘>을 빌미로 50번 거절당하기 프로젝트,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보내기, 착하게 살지 않기, 반려견과 하루 보내기,

스마트폰에서 눈 떼기, 회사 땡땡이치기, 친구에게 '사랑한다'라고 하기

등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체험도 했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헬리즘>의 체험들이 

모두 인상 깊었고,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에필로그에도 언급된 폐지를 줍는 분의 이야기가 

울림이 있었습니다.

잘나가던 주방장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힘들게 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었답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궁여지책으로 폐지를 줍고 있는 일을 시작했고, 

8년 동안 일을 하면서 폐지를 챙겨주는 이웃들도 생겼대요.

그렇게 남기자와 함께 고생하며 모아 겨우 만원 넘게 받고, 

점심은 우유 하나로 때웁니다.

몸이 아프고, 치아 상태가 심각해도 하루에 겨우 만원 벌기 때문에 

치료는 엄두도 못 낸다는 그분의 이야기가 기사로 실리자, 

며칠에 걸쳐 그를 돕고 싶다며 메일이 쏟아졌답니다.

편의점 야간 알바라 넉넉지 않지만 보태겠다고, 고등학생이라 

용돈은 적지만 나누겠다고, 치과 치료를 무료로 해주겠다는 의사도 

생겼으며, 그 후원금을 받은 주인공이 울면서 고마워하셨대요.

정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는 삶을 응원하는 따뜻한 마음들이 

우리 세상엔 아직 많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헬리즘>을 통해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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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발명 - 1572년에서 1704년 사이에 태어나 오늘의 세계를 만든 과학에 관하여
데이비드 우튼 지음, 정태훈 옮김, 홍성욱 감수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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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이 등장했습니다.

주석과 참고문헌, 찾아보기를 뺀 본문만 780쪽이 넘는, 

게다가 과학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책 두께만 보면 살짝 질릴 수 있는

<과학이라는 발명>이 그것입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이 과학혁명의 실재 여부이고, 단순한 

과학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과학 어른이가 읽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교양과 더불어 과학의 지식을 올릴 수 있는 

책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네이처' 올해의 책, '파이낸셜 타임스' 최고의 과학책, '세계경제포럼'

과학기술 분야 최고의 책인 <과학이라는 발명> 읽기에 한번 도전해보세요.



1572년에서 1704년을 근대과학이라고 하고, 그 이전엔 천문학이 

거의 유일한 과학이었으며, 1572년 이후 가장 크게 변화한 것도 천문학입니다.

천문학을 과학으로 만든 것은, 연구 과업과 전문가들의 공동체가 있었으며,

오랫동안 확립된 확실성에 관해서도 새로운 증거에 비추어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을 규명하기 위해 <과학이라는 발명>에서 1572년 이전의 세계와,

1572년~1704년 사이의 세계, 1704년 이후의 세계도 살펴봅니다.

더불어 역사 서술 방법론과 철학을 다루고, 과학혁명이라는 관념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왜 어떤 이들은 그것에 반대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1948년 역사가 버터필드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혁명에 관해 강의했습니다.

그에게 현대 과학을 상징하는 것은 물리학,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었습니다.

버터필드가 강의를 하고 있을 즈음에는 DNA 구조가 별견하기 

이전이었으며 페니실린 연구가 진행 중이던 때였습니다.

과학사가들이 주목한 대로 그 용어를 유행시킨 이는 버터필드였고, 

그의 저서에도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과학혁명은 20세기의 시점에서 바라본 지식인들의 구성물이며,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위에서 생겨났습니다.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과학혁명도 역사상 여러 차례 일어났다는 것과 

시기 확정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주장 속에서도 주된 사건은 바로 '과학의 발명'입니다.



우리는 사실을 아주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를 기술하려는 시도를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가솔린에 의존하는 만큼이나 사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사실의 발명 이전에 지식 지형의 모습은, 한편에는 진리가, 

다른 한편에는 (지배적인) 견해가 있었습니다.

한편에는 지식이, 다른 한편에는 경험이 있었고, 

한편에는 증거나, 다른 한편에는 설득이 있었습니다.

견해, 경험, 설득은 신뢰할 만하지 못했고,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학이라는 발명>에서 사실이 무엇이며, 

어떤 역사를 거쳤는지 알려주고 특정한 예도 살펴봅니다.


과학혁명은 단회의 변혁 과정, 여러 차례 반복된 한 종류의 변화가 아니라

몇몇 다른 유형의 변화, 중복되고 서로 엮인 변화가 누적된 결과였습니다.

그 안에서 과학이 발명되는 문화적 틀이 존재했는데, 이 틀은 

발견, 독창성, 진보, 저작권 같은 개념들, 그리고 

그것들과 연관된 관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낡은 역사가와 철학 학파들은 이 틀을 당연시했지만, 

새로운 학파는 그 개념들을 뒤집고 해체하고 싶어 했고, 

이런 문화는 역사의 특정한 순간에 등장했습니다.

이 새로운 틀과 함께, 인쇄술은 지적 공동체의 본질, 

그들이 교환할 수 있는 지식, 권위에 대한 자세, 

그리고 자연스럽게 증거에 대한 태도를 변혁시키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새로운 기구들(망원경, 현미경, 기압계, 프리즘), 

새로운 이론들(갈릴레이의 낙하 법칙, 케플러의 행성 운동의 법칙, 

뉴턴의 빛과 색깔 이론)이 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과학에 사실, 이론, 가설, 그리고 법칙에 의해 

뚜렷한 정체성이 부여되었습니다.

17세기 동안 다섯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상호작용하고 엮이면서 

근대 과학을 생성했고, 물리적 세계에 관한 우리 지식의 본질에서의 

근본적인 변혁, 과학의 발명이라는 누적적인 효과를 낳았습니다.

이 새로운 과학은 철학에 대한 경험의 승리입니다.

이러한 변화들 하나하나는 철학자들의 지위를 약화했고, 

수학자들의 지위를 강화했으며, 과학의 새로운 언어는 증거, 

당시에는 경험으로 불린 증거를 다루는 도구를 제공한 언어였습니다.

새로운 과학과 낡은 과학의 차이를 나타낸 것은 경험이었습니다.




과학-연구 프로그램, 실험적 방법, 순수 과학과 새로운 기술과의 연결,

해체 가능한 지식의 언어-은 1572년과 1704년 사이에 발명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결과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그러할 것으로 저자는 간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의 기술적 혜택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근대적인 과학적 사유 방식은 우리 문화의 큰 부분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사실, 가설, 이론이 논의되지 않는 세계, 

지식이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세계, 자연이 법칙을 갖지 않은 세계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과학혁명은 그것이 너무나 놀랍도록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다고 <과학이라는 발명>에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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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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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혹은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폭력은 일어납니다.

너무나 자주, 쉽게 발생되는 폭력이라 무신경해지는 요즘 사회에서 

<폭력의 위상학>이 폭력의 논리를 밝힙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폭력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폭력은 그저 변할 뿐 없어지지 않고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오늘날 폭력은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정면 대결성에서 바이러스성으로,

노골성에서 매개성으로, 실제성에서 잠재성으로, 육체성에서 심리성으로,

부정성에서 긍정성으로 이동하며, 그리하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폭력을 거시 관점에서, 미시 관점에서 <폭력의 위상학>이 살펴봅니다.



생산의 어느 수준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자기 착취가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가져오기 시작합니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입니다.

성과주체는 스스로 불타버릴 때까지(번아웃) 스스로를 착취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자기 공격성은 드물지 않게 자살의 폭력으로까지 치닫습니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에서 초자아는 

이상 자아로 긍정적 변신을 이룹니다.

복종 주체가 초자아에게 자신을 예속시키는 데 반해 

성과주체는 이상 자아를 향해 자신을 기획합니다.

초자아에게서는 부정적 강제가 나오지만, 

이상 자아는 자아에게 긍정적 강제력을 행사합니다.

즉 도달 불가능한 이상 자아 앞에서 자아는 자기 자신을 

결함이 많은 존재로, 낙오자로 인식하며 스스로에게 자책을 퍼붓습니다.

현실의 자아와 이상 자아 사이의 간극에서 자기 공격성이 발생하며,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입니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있었던 자리에 스스로 생성시킨 폭력이 들어서며,

이는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까닭에 

타자의 폭력보다 더욱 치명적입니다.



긍정성의 폭력은 자신이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입니다.

성과주체는 자신의 내면에 심어진 이상 자아의 부름을 받아, 

이상 자아처럼 되고자 하는 열망에서 더 많은 성과를 향해 달려갑니다.

저자는 성과주체가 착취자이자 피착취자이며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말합니다.

성과주체의 내면에서 이상 자아는 더 많은 성과를 올리도록 

자아를 강제하지만, 강제 당하는 피해자로서의 자아는 

이에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기꺼이 그 강제에 따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폭력은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강제와 자유가 하나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과주체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강제를 실행합니다.

이상 자아는 강제하기보다는 유혹하는 것이고 자아는 그 유혹에 빨려 들어

자발적으로 이상 자아의 부름에 따르는 것뿐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초자아의 방식이라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이상 자아의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성의 폭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혹이 

결국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과주체는 결국 심리적 질병에 빠짐으로써 폭력이 가하는 고통과 피해는

오직 후유증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폭력을 폭력으로 느끼지 못하고 강제를 자유로 착각합니다.




<폭력의 위상학>에서 폭력의 형태를 통해 

시대를 구분할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이는 한 시대가 어떻게 폭력을 다루는가가 

그 시대의 성격을 말해준다는 것이죠.

절대적 주권자가 통치하는 폭력은 참수의 폭력이었고, 

근대에 들어서면서의 폭력은 정당성을 잃어 감춰야 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형벌의 집행은 전시되지 않고, 

강제수용소도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곳에 설치됩니다.

이런 경향 때문에 사회 전체의 폭력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다른 방식의 폭력으로 대체될 뿐입니다.

성과사회라고 부르는 오늘의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력(=긍정성의 폭력)을 

어떻게 제때 알아차리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시스템적 강제를 충실히 이행하는 

우리들 성과주체 덕택에 시스템이 파열하는 순간이 오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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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
김진엽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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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예술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예술을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에서 예술을 어떻게 정의 내렸고,

시대에 따라 정의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아봅시다.



청계천 입구, 청계광장에 세워진 조형물 "스프링"을 만든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대상을 거대하게 제작하는 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석고, 고무, 천 등을 이용해 만든 

초대형 햄버거도 있는데요, 어느 날 올덴버그의 "햄버거" 옆에 

그 지역의 미술대학생들이 만든 비슷한 크기의 '케첩병'이 생겼습니다.

"햄버거"를 전시하던 미술관 측에서 케첩병을 철거하고 "햄버거"만 남았습니다.

낙서를 좋아하는 원숭이 동키콩이 그린 그림이 미술관에 전시되는 일, 

미국의 실험 예술가 존 케이지가 작곡한 "4분 33초", 자신의 몸을 

성형수술하는 장면을 관중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하는 '육신 아트'의

생트 오를랑, 인공지능 화가까지 어떤 것이 예술이고 

어떤 것이 예술이 아닐지 모호해집니다.


예술 작품과 잡동사니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며, 

케이지의 "4분 33초"나 오를랑의 '육신 아트'는 예술로 인정이 되는 건지,

인공지능이 창작한 예술은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지,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으로 하나씩 살펴봅시다.



예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입장의 '모방론'은 

실제와 똑같이 그릴수록 예술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림은 외부 세계의 대상을 모방하고, 연극은 외부 세계의 사건을 모방하며,

음악은 외부 세계의 조화를 모방한다는 예술관입니다.


주민등록증의 증명사진이나 현상 수배 전단의 몽타주처럼 

잘 모방했음에도 예술이 아닌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방론의 한계에 부딪힌 예술은 외부 대상에 대한 모방이나 재현보다

상상력을 통한 작가의 독창적인 감정 표현을 중시합니다.

따라서 그런 표현을 위해서라면 외부 대상에 대한 모방이나 재현은 

약화되거나 왜곡되어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표현론'.


예술의 본질은 예술 바깥이 아닌 예술 안에서 찾아야 하며, 

예술 안에 있는 본질은 바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순수한 형식입니다.

그 순수한 형식을 통해 아름다운 감정을 느낀다고 말하는 '형식론'.


'예술 정의 불가론'을 주창한 모리스 웨이츠의 예술관은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예술이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등

특정한 이론에 맞추어 예술을 재단하려는 것은 새로워지는 예술을 

질식시키는 일이며, 다양한 시각에서 예술을 조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도론'은 예술 제도에 의해 이미 예술로 인정받은 대상이 

예술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원론'은 평가의 기준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합니다.

가능한 여러 가지 기준을 놓고 그중에서도 

특정 기준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며, 어떤 작품에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가는

선택의 문제라고 합니다.

다양한 기준 내에서의 평가는 좋다/나쁘다 식의 이분법이 아니라 

아주 좋다/좋다/그럭저럭하다/나쁘다/아주 나쁘다 식의 

다분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미술, 음악, 시, 건축, 무용 등의 원조에 해당하는 

예술적 행위를 통해 인간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자연을 

원시시대에 조절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예술을 통한 자연 조절 행위는 일차적이며 직접적인 

조절 행위가 아니라, 일차적 조절 행위를 돕는 이차적 조절 행위입니다.

예술은 정서적인 부분을 뒷받침함으로써 

일차적 조절 행위를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은 생존의 기술은 아니지만 생존을 북돋아 주는 

기술이라고 '진화심리학과 예술'은 정의합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는 '경험'이라고 답합니다.

진화심리학의 주장과 유사하게, 존 듀이는 예술의 기원이 

일상적 삶에 있다고 여깁니다.

근대 이후 예술과 일상적 삶의 본격적인 분리가 이루어지며, 

그 분리에 기여를 한 것은 박물관과 미술관이라고 합니다.

일상이 예술로 들어오고 예술이 일상으로 들어와 이루어지는 

하나의 경험, 바로 경험으로서의 예술을 듀이는 바랍니다.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를 통해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예술 정의 불가론, 제도론, 다원론, 진화심리학과 예술, 

경험으로서의 예술을 살펴보았습니다.

각각의 답변이 어떻게 나왔고, 어떤 비판을 받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답이 어떻게 나왔는지,<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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