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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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혹은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폭력은 일어납니다.

너무나 자주, 쉽게 발생되는 폭력이라 무신경해지는 요즘 사회에서 

<폭력의 위상학>이 폭력의 논리를 밝힙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폭력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폭력은 그저 변할 뿐 없어지지 않고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오늘날 폭력은 가시성에서 비가시성으로, 정면 대결성에서 바이러스성으로,

노골성에서 매개성으로, 실제성에서 잠재성으로, 육체성에서 심리성으로,

부정성에서 긍정성으로 이동하며, 그리하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폭력을 거시 관점에서, 미시 관점에서 <폭력의 위상학>이 살펴봅니다.



생산의 어느 수준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자기 착취가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가져오기 시작합니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입니다.

성과주체는 스스로 불타버릴 때까지(번아웃) 스스로를 착취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자기 공격성은 드물지 않게 자살의 폭력으로까지 치닫습니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에서 초자아는 

이상 자아로 긍정적 변신을 이룹니다.

복종 주체가 초자아에게 자신을 예속시키는 데 반해 

성과주체는 이상 자아를 향해 자신을 기획합니다.

초자아에게서는 부정적 강제가 나오지만, 

이상 자아는 자아에게 긍정적 강제력을 행사합니다.

즉 도달 불가능한 이상 자아 앞에서 자아는 자기 자신을 

결함이 많은 존재로, 낙오자로 인식하며 스스로에게 자책을 퍼붓습니다.

현실의 자아와 이상 자아 사이의 간극에서 자기 공격성이 발생하며,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입니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있었던 자리에 스스로 생성시킨 폭력이 들어서며,

이는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까닭에 

타자의 폭력보다 더욱 치명적입니다.



긍정성의 폭력은 자신이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입니다.

성과주체는 자신의 내면에 심어진 이상 자아의 부름을 받아, 

이상 자아처럼 되고자 하는 열망에서 더 많은 성과를 향해 달려갑니다.

저자는 성과주체가 착취자이자 피착취자이며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말합니다.

성과주체의 내면에서 이상 자아는 더 많은 성과를 올리도록 

자아를 강제하지만, 강제 당하는 피해자로서의 자아는 

이에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기꺼이 그 강제에 따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폭력은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강제와 자유가 하나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과주체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강제를 실행합니다.

이상 자아는 강제하기보다는 유혹하는 것이고 자아는 그 유혹에 빨려 들어

자발적으로 이상 자아의 부름에 따르는 것뿐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초자아의 방식이라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이상 자아의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성의 폭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혹이 

결국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과주체는 결국 심리적 질병에 빠짐으로써 폭력이 가하는 고통과 피해는

오직 후유증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폭력을 폭력으로 느끼지 못하고 강제를 자유로 착각합니다.




<폭력의 위상학>에서 폭력의 형태를 통해 

시대를 구분할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이는 한 시대가 어떻게 폭력을 다루는가가 

그 시대의 성격을 말해준다는 것이죠.

절대적 주권자가 통치하는 폭력은 참수의 폭력이었고, 

근대에 들어서면서의 폭력은 정당성을 잃어 감춰야 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형벌의 집행은 전시되지 않고, 

강제수용소도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는 곳에 설치됩니다.

이런 경향 때문에 사회 전체의 폭력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다른 방식의 폭력으로 대체될 뿐입니다.

성과사회라고 부르는 오늘의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력(=긍정성의 폭력)을 

어떻게 제때 알아차리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시스템적 강제를 충실히 이행하는 

우리들 성과주체 덕택에 시스템이 파열하는 순간이 오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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