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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
이희진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7월
평점 :
뽀야맘 책장에서 읽고 쓴 후기입니다.

지니고 태어난 것보다 선택한 것으로 판단되고 싶다는 저자가 쓴 <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을 보겠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이 신체에 쌓이다가 변이를 일으켜서 신체 말단부터 점차 플라스틱으로 변하다가 결국에는 온몸이 반투명하고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변하는, 일명 플라스틱병이 발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발병 시기와 증세의 악화 속도는 달랐으나 전염이 되고, 단 하나 확실한 사실은 이 병이 처치 곤란한 거대한 환경오염 쓰레기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환경단체의 반발 때문에 플라스틱병 시신은 정부에서도 매장, 화장은 가급적 피하고, 수목장도 금지됩니다.
장례업체에 근무 중인 나영은 5년째 사귀던 준이 3일째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공중전화로 걸려온 통화에 준은 집으로 와달라고 하고, 준은 플라스틱병이 급격히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그는 플라스틱병 감염을 연구했고, 실마리를 잡았고 나영에게 확인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국가에서는 항체를 개발해 보급했으나,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해결책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한때 시신을 행정복지센터에 가져다주면 처리해 주겠다는 방책도 나왔지만, 그 '처리'라는 것이 재활용해버리는 방법이라는 게 알려지자 누구도 시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플라스틱병으로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시신을 남편이 독단으로 집에 모신다고 친척들에게 말합니다.
소개한 이야기 외에도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에서 확인하세요.
온몸이 플라스틱으로 변하는 플라스틱병이 등장해 죽는, 인간이 플라스틱 쓰레기가 되는 전염병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은 제목부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물건에 쓸모를 생각하며 사는 시대다 보니, 인간 존재의 의미마저 유용성을 따지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오히려 플라스틱으로 변한 인간을 처리하기 힘들어서 곤란한 상황이 된 소설 내용은 더욱 의미하는 바가 깊습니다. 불법적인 일을 부탁한 연인의 유언을 들어주는 나영의 이야기 '죽은 연인의 초상', 죽은 시어머니가 있는 안방에서 썩은 내가 나는 것 같은 수진의 이야기 '악취', 불치병에 걸린 딸과 자신을 플라스틱병에 감염시켜달라는 불법적인 부탁을 받게 된 수현의 이야기 '역 피그말리온', 플라스틱 시체들을 재활용하는 센터 직원 태주의 이야기 '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까지, 네 편의 단편을 <인간쓰레기의 처리 방법>에 실었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기에 등장인물들은 상식적이지 않는 방법으로 일을 해결합니다. 대책 없이 일만 벌이는 주변 인물에 비해 주인공들은 외면하지 않고, 고민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결국 그들 덕분에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쓰레기가 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쓸모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집입니다.
괜찮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p.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