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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미술관 - 그림으로 보는 8가지 사회문제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고산 지음 / 앤길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미술작품은 보기만 했지, 감상은 1도 못하는 미. 알. 못인 저.
그래서 미술작품에 대한 해설을 알려주는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질문하는 미술관>은 미술작품에 대한 해설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림에 숨겨진 그 시대의 사회문제를 설명하고,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되는 사회문제를 보여줍니다.
차별, 혐오, 불평등, 위선, 탐욕, 반지성, 중독, 환경오염의 8가지 사회문제를
미술작품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질문하는 미술관>에서 살펴봅시다.

첫 번째 사회문제, "차별"입니다.
영화나 그림에서 많이 접한 메두사는 신의 저주를 받아
머리칼이 징그러운 뱀으로 변화된 여자입니다.
얼굴을 보면 돌처럼 굳는 저주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메두사의 원래 모습은 아테나 신전의 사제로
아테나 여신에 견줄 만큼 아름다웠대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수많은 남자 가운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있었고,
둘은 연인이 되었어요.
아테나의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아테나가 보고
메두사를 변하게 만들고 외딴섬에 가둬버렸답니다.
다른 지역 신화에는 다른 내용의 메두사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포세이돈이 사랑을 고백하지만 메두사는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아 포세이돈이 성폭행했대요.
신전에서의 악행에 분노한 아테나가 역시나 메두사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신화의 결말은 예상 밖이죠.
그녀가 포세이돈의 연인이냐, 혹은 포세이돈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냐에 상관없이
끔찍한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해자인 포세이돈에게는 어떠한 벌도 내려지지 않습니다.
피해자인 그녀에게만 지속적이며 폭력적인 저주가 계속됩니다.
그 폭력에는 페르세우스도 등장합니다.
메두사의 목을 베어 오라는 임무를 맡은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으로 성공하죠.
이렇게 메두사는 두 신들과의 관계 속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습니다.
우리는 이 신화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도리어 괴물로 변해야만 하는
낯설지 않는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녀는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로 변해있죠.
남자를 돌로 만드는 운명으로 인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가해자로만 존재합니다.
남성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죄를 범했다고,
그다음에는 남성을 무력화하는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됐습니다.
일종의 꽃뱀 프레임입니다.
메두사 신화는 남성을 유혹하고 그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여성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이에 대한 처벌의 정당성도 언급하죠.
결국 신화에는 남성이, 남성에 의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지금의 미투 운동을 보며 우리는 무수히 많은 변명을 듣습니다.
'술 때문에', 딸 같아서 그랬다',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라며
꽃뱀 프레임을 걸기도 합니다.
아니면 '피해자다움'이 없으니 '암묵적 동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암묵적 동의'는 '동의'가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 시대의 피해 여성들은 메두사가 되고, 꽃뱀이 되고 있습니다.
메두사를 괴물로 만든 것은 결코 메두사 자신이 아니었어요.
만일 누군가가 반드시 괴물로 되어야 할 운명이었다면
그 누군가는 메두사가 아닌 가해자여야 합니다.
지금은 가해자보다 슬프고도 안타까운 메두사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고대국가 스파르타는 우생학이 나타난 나라입니다.
그들은 열성인 아이가 태어나면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였다고 합니다.
스파르타는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건장한 청년들에게
자신의 아내와의 동침까지도 허용했어요.
또한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훌륭한 군인으로 성장할 아이를 낳는 일입니다.
스파르타의 여성들에게 운동이 권장되고 전투 훈련에 참여하게 한 것도
우생학적인 관점에서 신체를 단련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원로원으로 데려가 아이의 생존을 결정할 건강 상태를 검사받았습니다.
고대로부터 시작된 우생학은 소멸되지 않고 내려오다
1800년대 후반 분리주의를 실시한 미국에서 나타났습니다.
가난은 타고난 '기질'이라며 열등한 혈통이 문제라고
이들에 대한 추방과 출산 제한을 시행했으며 차별적인 이민법을 만들었어요.
서구에서는 나치 정권이 자행한 무차별 학살이 대표적이고,
얼마 전 제주도로 온 난민들에 대한 한국 사회가 보인 편견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형은 경제적인 차이에 의한 편 가르기입니다.
계층의 분리와 갈등은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하나의 주제로 다루어져 왔고,
화가들은 예술 작품을 통해 그 오만함을 경고했어요.
사회고발 그림을 많이 그린 오노레 도미에의 '삼등열차'와 '일등열차'를 보면
영화 '설국열차'가 떠오릅니다.
사상에 의한 편 가르기는 더 끔찍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좌와 우의 대립입니다.
해방 이후 사상 대립이나 한국전쟁, 4·3 제주 항쟁, 5·18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수십 년을 지속해왔죠.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십자군 전쟁의 그림들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영화 "라쇼몽"은 밝은 대낮에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한
세 가지 시선, 세 가지 자기합리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억, 같은 사건이라도
그것을 자신의 입장에 맞춘 해석은 심리학적 용어, '라쇼몽 현상'을 낳았어요.
자신의 입장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취사선택해 기억한다는 것이죠.
라쇼몽 현상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하게 겪습니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닙니다.
때로는 거짓이 숨어있다 해도 편견이 작용해 그것을 진실로 여길 때도 있어요.
눈은 우리가 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경험은 시야를 좁히고 우리를 동굴 속에 가둬버립니다.
페테르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 영화 '왜그 더 도그', 밀레의 '이삭줍기',
쥘 브르통의 '이삭 줍는 여인들의 귀가'에서 육체의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신의 눈으로 보는 진실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소개한 사회문제 외에도 더 많은 사회문제를 다룬 미술작품이 많습니다.
미술작품을 다룬 책들은 읽었지만,
<질문하는 미술관>처럼 사회문제와 엮은 책은 처음이었어요.
소개한 미술작품을 단순히 그림 감상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그 시대만을 그려낸 작품인 줄 알았는데,
지금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이렇게 많다니,
<질문하는 미술관>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바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임을,
8가지 사회 문제를 푸는 첫 단추가 되는 길임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