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손님과 어머니 ㅣ 아이세움 명작스케치 6
주요섭 글, 장호 그림, 김서정 해설 / 미래엔아이세움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1930년대의 단편 소설을 그림책으로 읽는다?
어째, 독자 대상과 형식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이 책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느낌이었다.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임에도 아직까지
그림책을 사서 볼 만큼 그림책을 좋아하는 나로서야 반가운 일이지만
보편적인 독자는 좀 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느껴졌던 느낌은
사진으로 봤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A4 정도의 큰 사이즈에 유화를 보는 듯한 깊은 그림,
두툼하고 고급스런 표지와 종이질...
상당히 고급스럽고, 품격이 느껴지도록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아마도 그림책이 주는 독특하면서도 멋진 매력이
유아나 초등 저학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워 그 영역을 확대해보려는 시도가 아닌가,
책을 들고, 읽기 전에 이리저리 살피며 한참을 생각해 봤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림책의 매력에 쏙 빠졌었다.
그러면서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유치한 책이 아니라
웃음과 기쁨, 치유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랬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는 그림책은 서서히 한 켠으로 밀려나고
연령에 맞춘 책들이 책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줄었다기 보다는
그 연령에 맞는 그림책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관심의 빈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늘 한구석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초등 고학년은 물론이고, 성인까지도 공감하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림책이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물론, 그런 그림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활성화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랬는데 이 책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보니 이제 조금씩
그런 움직임들이 시도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와 설렘을 갖게 했다.
이 책은 [아이세움 명작스케치]의 6번째 책이라고 한다.
아니, 벌써 다섯 권이나 나왔다고?
급하게 인터넷 서점에서 시리즈를 검색해보니
한국 단편 [수난 이대] 를 비롯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모파상의 [목걸이]도 선을 보였었다.
외국 작품에는 외국 작가의 그림이, 국내 작품은 국내 작가의 그림이
사용되었는데, 그 느낌은 화집을 보는 것처럼 강렬하고 색다르다.
그림의 역할의 굉장히 중요한 시리즈라는 것에 감탄을 하면서
이 시리즈, 슬슬 탐나기 시작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는 아이세움 명작스케치 시리즈 중
한국 단편으로는 두 번째 책이다.
주요섭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이며,
영화는 물론이고 코미디의 모티브가 되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렇게 대중화 아닌 대중화가 된 작품이니
내용은 물론 결말 역시 대부분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가물가물해도
결말 만큼은 확실하게 각인되어 있던 터였다.
도대체 이렇게 잘 알려진 작품을
그림책으로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표지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표지의 앞면을 보면 어머니와 딸인 나의 모습이 전면에 나온다.
나는 정면을 보고 있지만 어머니는 어딘가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그곳인 어디인지는 책의 뒷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이야기의 갈등을 가져오게 될 남자 주인공이
어머니의 시선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표지를 양쪽으로 펼쳐 보면 마치 결말을 말해주는 듯한
구도가 잡히게 된다.
어머니가 아래 위로 차려 입은 순백색의 한복은
아이가 얼떨결에 거짓으로 건냈던 빨간 꽃과 강한 대조를 이루며,
순수해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들의 사랑처럼 느껴진다.
꽃잎이 흩어져 내리고 있는 모습에서
이들의 사랑의 결말을 느낄 수 있다.
그림책은 이렇게 나만의 방법으로 상상하면서
그림을 해석해가는 맛이 있어 참 좋다.
그것이 정답이든 아니든, 작가가 그러한 의도로 그렸던 그렇지 않던 간에
내가 마음대로 감탄하고, 감동도 하면서 그림을 읽는 재미는
그림책만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매력 중에 하나일 것이다.
책 표지를 넘기면 <일러두기>가 나온다.
1935년 잡지 <조광>에 실렸던 작품을 기본으로 하고,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말투가 옛스러운 느낌이 나지만
워낙 자연스럽게 윤색을 잘 하여 오히려 글 속으로 더 잘 빠져들 수 있었다.
첫장을 넘기면 나에 대한 소개와 어머니,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외삼촌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그리고 그림은 이들이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지를 한 눈에 보여준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2009년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서
올 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혔다던 그림 작가의 그림은
마치 갤러리에 걸려 있는 유화로 된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거칠지만 주인공들의 섬세한 심리 상태가 잘 표현되어 있어
마치 글과 그림이 한 작가의 작품처럼 느껴질 만큼
그림에 작품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리고 갈등을 가져오게 될 큰 외삼촌의 친구이자
돌아가신 아빠의 친구 '사랑 아저씨'가 등장한다.
아저씨가 동네에 교사로 오면서 사랑방 한 켠을 빌어 쓰게 된 것이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풍금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우리집에도 풍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빠가 사준 풍금을 엄마는 아빠가 돌아간 후에는 한 번도
켜지 않고 윗간에 올려다 놓았다.
풍금은 곧 아빠이며, 돌아가셨지만 아빠라는 존재로 인해 엄마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살아가고 있다.
풍금 너머 굳게 닫혀져 있는 창문은 엄마의 그러한 마음과 생활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23살, 마음의 문을 닫고 살기에는 어머니의 나이는 너무나 젊다.
사랑 아저씨로 인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그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먼저 깨닫는다.
복잡한 심경에 어머니는 그동안 한 번도 타지 않았던
'풍금'을 연주하면서 마음을 다스려 보려 하지만,,,
요동치는 사랑의 뜨거운 감정을 누르기에 어머니는 너무 젊었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는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딸 '옥희'가 있다.
엄마로 인해 손가락질 받으면 살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아저씨를 떠나 보낸다.
그리고 혼란한 감정으로부터 다시금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근다.
어머니에게 있어 유일한 빛이고, 희망인 나 '옥희'를 위해서.
책을 읽는 내내 절제되고 생략된 두 사람의 감정에
몰입되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지금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건만...
그렇기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다잡는 상황이 더 절절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옥희 아나문 그뿐이야. 응, 그렇지......."
여자를 포기하고 엄마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그 순간,
활자를 따라가던 내 눈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목이 메였다.
아주 오래 전에도 이 소설을 읽었었는데,
그 때도 이 뜨거움이 느껴졌던가......?
나이가 들면서 자식에 대한 사랑, 삶의 고단함이
공감이 되어서 그런지,
어머니의 마음과 하나가 된 듯한 그림 때문인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책 속에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