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소녀와 좀비의 탐험
도마스 아키나리 지음, 박주영 옮김 / 한언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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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치가 않았다.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분명 '철학'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 순정 만화에 나올 법한 주인공들이며, 좀비는 또 뭔가?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철학을 다루다보니 조금 편하게 접근하라는 뜻으로 캐릭터를 친숙하게 잡았나보다 하면서 책을 펼쳐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표지가 발랄하고 격이 없게 느껴지니 '철학'이라는 제목도 그다지 거리감 없이 다가온다.

 
표지를 넘기니 책 날개에는 이 책의 목적이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맥을 형성하고 있는 핵심 주제가 눈에 띈다.
 
 
"단언컨대, 철학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한 유일한 이정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와 철학을 할 때와 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삶이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보여준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더 나아가서는 현대의 마이클 샌델까지 관통하고 있는 주장을 근거로 제시하지만 궁극적인 이 책의 목적은 바로 '철학'을 하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이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에는 '재미'와 '흥미'에 비중을 크게 실었다. 표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에는 세 명의 소녀 좀더 정확히 얘기하면 세 자매가 나온다. 이 세자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화신으로 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과 그의 딸이 벌이고 있는 우경화 정책에 '철학'이라는 무기로 맞서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 것은 주인공 '나'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2년간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고백하려는 순간 일주일 전부터 친한 친구와 이미 사귀고 있었다는 고백을 받으며 실연 아닌 실연을 당하게 되는 불운의 사나이다. 시련은 사람에게 고통도 주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아무도 모르는 실연의 고통으로 허우적되면서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일기 시작할 때 철학 전사 소크라테스의 화신 '기리시마 린'을 만나게 되면서 내 삶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린은 학교의 이사장과 그의 딸 '기베인 아이'가 자신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을 사유하지 못하도록 영혼을 빼앗아 '철학 좀비'로 만드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전한다. 아직 영혼을 뺏기지 않았기에 자신을 선택했으며, 일명 아틸란티스 계획을 저지하는데 동참할 것을 종용한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의 화신답게 린은 문답법(산파술)으로 왜 철학이 필요한 지, '궁극의 답' 즉 '진리'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지를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인생에는 끝없는 문답이 필요해. 전보다 조금씩 진리에 가까이 가고 있잖아. 가장 나쁜 것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는 거야. 철학의 역할은 자신이 굳게 믿고 있던 편협한 생각을 없애고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 가는 거야. 그러니까 계속 의문을 품고 대화하고 지금과는 다른 자신을 꺼내면 되는 거야." ---p.47
 
다소 튀는 행동과 사이비 종교 단체의 교주같은 린의 행동에 반신반의하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철학적인 사유를 하게 되는 것을 깨닫고는 본격적으로 철학을 배워보기로 결심한다.
 
린은 좀더 강력하게 철학을 배우기 위해 동생 '마리'를 찾아가라고 한다. 마리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의 화신이다. 플라톤처럼 그녀는 학교의 모든 운동부 활동을 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자랑한다.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통해 내면에서 올바른 것 즉 진리를 깨닫게했다면 플라톤은 진리란 '이데아'이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다른 차원에 있으며, '이성'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도서관에서 만난 막내 도모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화신으로, 이데아는 다른 차원이 아닌 현실 속에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어지는 철학 사상을 철학에는 무지한 주인공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추상적인 개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질료, 형상과 같은 익숙하지 않은 용어도 '재료', '설계도'처럼 쉽게 비유하고 풀어서 설명을 해주니 거부감없이 의미를 곱씹어보면서 주인공과 같이 고민하면서 사유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은 목적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주인공도 얘기한다. 누구에게나 목적이 있다고. 자신도 목적이 있다고....
그런데 왜 많은 현대인들은 허무함을 느끼고, 심지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그렇게 말씀드린 이유는 목적이 욕구이기 때문이에요. 욕구들만 연결해서 살기 때문에 인생이 허무한거예요. 모두들 무엇을 위해서라는 욕구들의 연결 속에 묻혀 있어요. 그 당시는 좋지요. 하지만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가 연결된 큰 전체인 인생을 생각해요. 결국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순간순간의 욕구를 어느 정도 채워도 인생은 의미를 갖지 않아요. 그러니까 허무한 거예요." ---p.152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중심을 갖는 것. 돈이나 명예는 안 돼요. 더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어야 해요. 최종 목표는 궁극의 목적지이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적, 그것은 최고선......" ---p.153
 
"지금 이 순간에 만족으로 가는 선한 목적을 찾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없어요."
아이 선배도 필사적으로 반격을 가했다.
"내 이야기하고 뭐가 다르니?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는 것이 선한 목적이라면 음악을 듣는다든지, 먹는다든지, 춤을 추는 것. 눈앞에 있는 욕구를 채우는 것이 그런 것들이잖아."
"그런 것들이 아니예요. 하나의 욕구가 다른 욕구를 위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서 원하는 것이 필요해요. 다른 모든 것이 그 자체를 위해 원하는 궁극의 목적인 최고선이요."---p188~189
 
"우리들은 눈앞의 욕구에 사로잡혀 자신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이 세상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떤 목적이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것으로 괜찮다. 눈앞의 욕구에서 인생 전체의 목적으로 눈을 돌리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기 위해 이성을 활용해서 일상적이 모든 것을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생의 모든 것에 의미가 생긴다."---p.189
 
영혼을 뺏겼다는 의미의 '철학좀비'라는 표현이 조금 살벌하기도 하지만, 정말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 필요성을 점점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쾌락과 욕구가 인생의 목적인양 몰입하면서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고 있지 않은 지조차도 모른 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지도...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사회판 '철학좀비'가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같은 공간에 모여 있으나 각자의 쾌락 세계에 빠져 있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누군가에 의해 세뇌되어 조종되는 인형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겉은 멀쩡하지만 영혼을 빼앗긴 '철학좀비'처럼.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성인도 성인이지만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더더욱 철학좀비가 되기 십상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점점더 물질욕이 과열되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중심을 갖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쓰여진 것이다. 물론 철학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가장 일차적인 목적은 바로 청소년들에게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기 위함이다. '철학좀비'는 사유하지 않는 삶을 살았을 때의 우리들의 모습이며, 철학소녀의 '로고스 머신'이라는 공격에 의해 깨어나 다시 프시케를 얻게 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영혼없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역시 '철학'이라는 것을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빠져 나오며 마지막장을 덮을 순간 '철학적인 지식'보다는 '철학의 필요성'이 더 무게있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부제 '십대, 철학을 다시 읽을 시간'이 말해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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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다 다르다 - 유럽의 길거리에서 만난 그래픽 디자인 디자인은 다 다르다 1
황윤정 지음 / 미술문화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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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전공은 아니었지만 디자인과 관련된 회사에서 3년간 근무를 했었다. 직접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때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와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색깔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생각과 결정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이를 기능적으로 아름답게 정돈해놓은 디자인의 영향력을 따로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다가 회사를 떠나면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디자인과 내 삶은 별개가 되었다. 
 
과연 정말 내 삶과 디자인이 동떨어져 있었을까? 적어도 그런 줄 알았었다. 디자이너도 아닌데 디자인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이 책 [디자인은 다 다르다]를 만나기 전까지.
 
[디자인은 다 다르다]는 저자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본 그래픽디자인이 나라별로 다른 특색이 있는 것을 발견한 후 본격적으로 그 배경을 파헤치며, 왜 각기 다른 특징을 갖게 되었는지,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 지 등을 비교 연구한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디자인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이라도 길거리의 그래픽디자인이 나라별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렇지만 저자의 전문가적인 관점으로 조목조목 풀어내는 설명을 들으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나라마다 다른 특색이 묻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유럽 중에서도 그래픽디자인의 중심지이며, 지척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그래픽디자인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보이는대로 정신없이 사진 찍기에 바빴다는 저자의 노력 덕분으로 독자는 직접 유럽을 활보하지 않아도 풍부하게 제공되는 사진으로도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각 나라들의 그래픽디자인 특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그 나라의 특색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수준높은 그래픽디자인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독일은 엄격한 군인 같았고, 스위스는 깔끔한 수학자 같았으며, 네덜란드는 사치스러운 무역상 같았다. 프랑스는 주근깨 가득한 발랄한 화가 지망생이었고, 영국은 지킬과 하이드였다." ---p.276
 
저자가 한 마디로 정리한 각 나라별 그래픽디자인의 느낌이다. 그렇다면 서로의 영향권 안에 있는 나라들의 그래픽디자인 왜 이렇게 상이한 형태로 발전되어 온 것일까? 저자는 독일에서 출발하여 영국까지 가는 여정을 그대로 밟아가며 다각도로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각 나라별로 그래픽디자인이 어떻게 다르고, 또 그 배경은 무엇인지를 찾아낸다.
 
구성 포맷은 나라별로 동일한데 맨처음에는 여행하는 나라의 길거리를 스캔하며 그래픽디자인은 물론 건축 양식, 제품디자인, 공공디자인, 거리의 낙서 등등 전반적인 그 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느껴본다. 건축과 그래픽디자인의 흐름이 함께 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예술 사조가 같은 시기에 함께 작용을 하면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듯 싶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최소의 물자로 최대의 효과를!" 외치는 독일이다. 반듯한 거리의 건물 형태와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그래픽디자인은 세트처럼 많이 닮아 있다. 그 나라의 상징적인 것을 토대로 살짝 맛을 본 후, 본격적으로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독일의 그래픽디자인들을 살펴보며 두드러진 특징과 장단점 등을 짚어본다.  
 
 
독일의 디자인은 기능성은 우월한 반면 일러스트나 장식적인 부분에서는 취약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독일은 왜 이런 특징을 가지게 되었을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으로는 그 나라 디자인이 발전되어 온 디자인의 뿌리 즉,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본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은 다른 나라로 가기 전 그 나라에서 보고 느꼈던 디자인의 느낌과 다소 깊게 들어갔던 역사적 배경 등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를 떠나며'로 마무리 한다.
 
"독일은 척박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물자 부족에 시달려 왔고 이 물자 부족은 기능적인 디자인의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제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기능성은 기계의 힘을 빌려 더욱 강력해졌고 잠시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되며 기능주의는 이념적 타당성이 세워졌다. 독일의 기능주의는 사회 변동과 함께 형태를 바꾸며 진화해 갔고 디자인 역시 이에 발맞추어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변모해 나갔다." ---p55
 
 
이렇게 마무리하고 떠난 다음 여행지는 "독일과 비슷하게, 그러나 독일보다 아름답게!"로 함축될 수 있는 '스위스'다. 스위스를 비롯 뒤에 오는 나라들 역시 독일과 같은 포맷으로 구성되어 었다. 독일에서 상징적인 특징을 BMW와 제품디자인에서 찾았다면 스위스에서는 '철도역'의 디자인을 꼽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시나 길거리를 포함 다양한 그래픽디자인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저자의 말처럼 독일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독일에서와 같이 각 디자인들은 어떤 특징이 있고 또 닮은 듯 다르게 발전한 이유와 발전된 디자인의 뿌리를 살펴본다. 다시 '스위스를 떠나며'를 통해 스위스 디자인의 전체적인 인상을 정리한다.
 
 
 
그 다음 여행지는 "꽃무늬와 몬드리안이 만난" 네덜란드, "모든 것이 ART!"인 프랑스, 그리고 "영국 신사와 펑크족의 기묘한 동거" 영국까지 같은 패턴으로 각 나라의 그래픽디자인을 샅샅이 살펴본다. 뒤로 갈수록 점점 회화적인 요소가 들어가고 개념과 풍자가 가미된 디자인이 등장하면서부터는 그래픽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점점 커진다.
 
 

 
마지막에는 에필로그처럼 5개국의 그래픽디자인을 비교해본 결과를 다시 한 번 정리해놓았다. 나무만 보는데 그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숲 전체를 정리해주는 참 친절한 책이다. 이렇게 비교하며 정리해 놓은 것을 다시 한 번 읽으니 각 나라의 특징이 한 눈에 잡히며 정리가 된다.
 
디자인에 관련된 책이지만 디자인을 몰라도 저자가 포인트를 짚어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캡션을 쫓아가다 디자인을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각 나라의 수준 높은 디자인에 한껏 취하다 보면 디자인을 보는 안목과 감각도 저절로 높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읽고 거리를 나서니, 각기 개성을 뽐내며 어지러이 밀집해 있는 거리의 그래픽디자인들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은 어떨까? 디자인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은 과연 우리를 얼마나 대변해 주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간 글씨만 한국어일 뿐 때로는 스위스풍, 때로는 네덜란드풍, 또 때로는 일본풍으로 보이는 그래픽디자인을 많이 봐왔다. 유럽의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이 매력적인 이유는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에 따라 디자인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서로 '다름'에서 매력과 가치가 생긴다면, 이제는 우리의 디자인이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달라야 할지 고민해 볼 때이지 않을까."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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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문화 여행 - 부모와 함께하는
오주환.최정훈 지음 / 북허브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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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에서는 일년 내내 사회 시간에 우리나라 역사를 배운다. 짧지 않은 역사의 수많은 내용을 아무리 일 년 동안 나누어서 배운다고 하더라도 쉽지만은 않은 과정일 것이다. 특히나 전후의 인과 관계를 생각해가며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고, 전체적인 역사의 큰 그림을 그리기까지는 많이 접하고 즐겨야만 할 것이다. 역사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이상 자주 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7차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교과서는 암기 위주에서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개편되었었다. 6학년 1학기에 뚝딱 끝내 버리면서도 수많은 암기 거리를 만들었던 개정 이전에 비해 1년 동안 이야기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배워 나가는 것은 분명 아이들에게 부담도 줄일 수 있고, 역사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더 자주 접하고, 깊이있게 들어가지 않은 이상 학교에서 배운 것도 잊어버리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재미를 느끼며 자주 다양하게 접해야만 할 것이다. 배우고, 직접 눈으로 보는 오감을 통해서 배운다면 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부모와 함께하는 조선시대 역사문화여행]은 이렇듯 학교에서 배우는 제한된 역사의 범위와 시각을 좀더 넓힐 수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학교 교과서를 통해서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면, 이 책으로는 조선 시대의 정치, 문화, 경제, 생활 등 분야별로 세세한 부분을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살펴봄으로서 당시의 생활상을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불어 역사에 대한 흥미도 키울 수 있다.
 
 
1장 '조선의 왕'에서는 왕의 탄생에서부터 교육, 하루 일과, 결혼, 음식, 질병, 취미 생활 등 평소 역사책에서는 접하기 힘든 왕의 모든 것을 시시콜콜하게 살펴볼 수 있다. 각각의 편은 길지 않아서 일단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며, 기자 출신답게 짧은 글에서도 핵심이 분명하게 드러내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나 출처를 구체적으로 풍부하게 들고 있어 내용의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며, 편하게 호의호식하는 줄 알았던 왕의 하루 일과가 그렇게 팍팍한 줄 처음 알았고, 끊임없는 공부의 연속된 생활을 했으며, 안전을 이유로 개인 사생활마저 거의 보장되지 못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하늘과 동격이었던 조선의 왕은 하루 몇 시간이나 잠을 잘 수 있었을까? 왕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많이 자야 6시간, 대개는 5시간 내외였다. 왕이 처리해야 하는 집무가 만 가지나 될 정도로 많다 하여 '만기'라 불렸으니 마음껏 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만민의 모범을 보여야 할 제왕이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편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아침 조회 국정 업무 보고받기, 회의 주제, 신료 접견 등과 같은 공식적인 업무 외에도 하루 세 차례 유학 공부를 해야 했으니 그야말로 눈코 뜰 새없이 바빴다."---p.44
 
만일 유학을 배우는 경연을 소홀히 한다면 신하들에게 잔소리도 들어야 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년(1401)의 기사를 보면 권근이 왕에게 경연의 중요성을 아뢰는 대목이 보인다.
"경연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제왕의 도는 학문으로 밝아지고 제왕의 정치는 학문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 비록 경연을 베풀었으나 쉬는 날이 많았습니다. 학문하는 뜻이 너무 가벼운 것 아닙니까. 날마다 경연에 납시어 마음을 비우고 뜻을 공손히 해 하루라도 빼먹지 마십시오."
경연은 왕이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사안이 아니었던 것이다."---p.45
 
이렇게 격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가 높다 보니 자연히 건강을 해치는 일도 많았다. '왕의 질병'에서는 왕이 가장 많이 앓았던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계절 산해진미를 먹고 24시간 어의와 궁녀들에 둘러싸여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왕들은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46세에 불과하다. 환갑을 넘긴 왕이라야 태조(74세), 정종(63세), 숙종(60세), 영조(83세), 고종(67세) 정도다. 불혹을 넘기지 못한 왕도 11명이나 된다.
장수를 했을 것만 같은 왕들이 오래 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도한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영양 과다가 그 원인이다. 왕들의 사인은 고혈압, 당뇨병, 중풍 등이 일반적이다. 상당수의 왕들을 재위 기간 내내 괴롭힌 질병은 단연 종기다. 종기 때문에 몇 개월 동안 문 밖 출입을 못하고 누워 지낸 경우가 허다했다.
--- 중략 ---
왜 조선의 왕들은 종기에 시달렸을까? 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큰 이유는 운동 부족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아니었나 싶다. 왕은 세수도 궁녀가 대신 해 줄 만큼 몸을 움직일 일이 거의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 종일 궁궐을 지키며 업무를 봐야 했다. 고작해야 편전과 침전 정도를 오갈 뿐이었다. 정치적 스트레스도 한몫했다. 왕의 모든 행동은 유교적 정치 이념에 부합해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여러 신하들의 따끔한 충고를 감수해야 했다. 종기가 생겨 온천을 가려고 해도 왕의 어가 행렬이 민폐를 끼친다고 신하들이 만류하면 갈 수 없었다. 가뭄, 홍수 등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조차 왕의 부덕으로 여겨졌던 시대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운동 부족이 겹쳤으니 혈액 순환이 원활할 리 만무했고, 악성 종기는 물론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의 퇴행성 질환으로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p.53~56
 
문종은 종기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조선 시대 왕들을 괴롭힌 질병이 '종기'라니 의외지만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왕과는 대조적으로 정치에 나갈 수 없도록 법으로 묶인 왕족들은 오히려 너무 할 일이 없어서 억지로라도 공부를 시키기 위해 학교를 만들어 의무적으로 다니는 제도를 만들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정종의 아들이자 세종대왕과는 사촌지간인 순평군은 마흔이 넘도록 글자를 모르는 일자무식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왕의 취미 생활이나 무덤인 왕릉, 그리고 '조'나 '종'과 같이 우리가 현재 부르고 있는 왕의 호칭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2장은 '궁궐과 궁중생활'로 4대 궁궐과 화려해보지만 극한의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궁궐에서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왕이 죽은 후에 후궁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지, 왕 외에는 절대 사랑을 나눌 수 없는 궁녀가 다른 남자와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궁녀의 지위와 월급 등등을 살펴볼 수 있다.
 
3장은 '양반과 서민 생활'에 대해서 살펴 본다. 출세의 관문 과거제도를 비롯 성균관에서의 생활, 관리들의 생활, 농민, 천민, 그리고 기생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다.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노비의 값은 얼마였을까? 그나마도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15~40세 정도의 노비 가격이 말 1필 정도였다고 한다. 주인 맘대로 사고 팔고, 형벌을 가해도 웬만하면 책임을 묻지 않은 사회에서 노비는 그야말로 사람 아닌 사람으로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 노비와 평민이 결혼을 하면 신분은 어떻게 될까?
 
 
4장은 '정치, 외교 이야기'를 다룬다. 첩보 영화를 방불케할 정도로 직업 의식이 투철했던 '사관'의 활약상, 그리고 젊고 유능한 관리들에게 1년 동안 독서와 공부에 몰두할 수 있도록 안식년과 같은 시간을 주었던 '사가독서', 우리말을 쓰면 적발된 횟수만큼 곤장을 맞아야 할 정도로 외국어 몰입교육을 시켰던 '사역원'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조선 시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마지막 5장은 조선 시대의 '사회, 문화 이야기'를 다룬다.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실행했던 현대판 그린벨트 제도나 여성의 가발의 폐해와 금지령의 노력을 살펴볼 수 있으며, 당시 강간범에게 내려지던 처벌과 여성의 행실에 따라 달리 적용되었던 유연한 판결 사례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금은 채광이 줄어들게 된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책은 '조선왕조 가계도'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복잡한 가계도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책 속에서는 이 뿐만 아니라 기자 특유의 간결한 정리가 돋보이는 표들이 곳곳에 삽입되어 이해를 돕고 있다. 조선의 왕릉이나 과거제도, 중앙정치기구, 당파의 정리 등 필요할 때 참고해보기에 좋을 듯 싶다.
 
 
역사는 학창 시절에 배우고 끝내는 과목이 아니다. 그동안 역사를 소홀히 한 결과 우리는 많은 위기를 맞아야 했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기도 했다. 이제 역사를 수능에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는 등 다시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는 많은 것 같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현명한 사람은 역사를 통해 배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해 역사에 대한 관심과 공부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 역시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 놓을 것이 아니라 제목에서 얘기하고 있듯이 '부모와 함께' 읽고 가능하면 많이 직접 찾아가서 보고 느낀다면 역사를 훨씬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고, 흥미도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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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 자연을 품은 우리 소리 피어라 우리 문화 5
노유다 지음, 유지연 그림, 원일 기획.감수 / 해와나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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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 우리의 소리...
한국인으로 한국에 살면서 정말 많은 시간을 잊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굳이 찾아 듣지 않으면 한 달이 가도, 일 년이 가도
스쳐지나가는 음악으로라도 듣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소리'가 아닐까 싶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서조차도 우리 음악보다는 서양 음악을 더 많이 더 자세하게
배우고 접했으니 '국악'과 점점 멀어진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 싶기도 하다.
 
그렇게 '국악'과 안친한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었는데
이제는 가볍고 인스턴트같은 음악보다
가슴 속의 울림이 느껴지는 우리의 소리에 점점 더 끌리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벼움에 질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랜 여행을 하고 돌아온 집에서의 안락한 휴식같은
우리의 소리에는 그런 깊은 편안함이 있다.
마치 엄마의 품 속 같은...
 
이렇게 우리의 음악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될까 싶어 국악 공연도 종종 데려가고,
듣기 편안한 음악도 들려주기도 하고 했는데,
자극적인 음악 탓에 아직은 담백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렇게 대를 물려가며 점점 우리의 소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운 때
이 책 [한국 음악, 자연을 품은 우리 소리]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 음악에 대해 나도 아는 것이 백지에 가깝지만
아이들도 학교에서 배운 것 이상의 지식은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과 함께 이 참에 우리 음악에 대해 배워 볼 생각으로 책을 보게 되었다.
해와 나무의 '피어라 우리 문화' 시리즈는 이전에 [한지, 천년이 비밀을 밝혀라!]로 먼저 알게 되어
재미있게 읽은 지라, 아이들도 반가워하며 기대에 차서 책을 펼쳤다.
 
자세히 읽기 전에 전체적으로 책을 한 번 죽 훑어보니 이 책을 기획, 감수하신 분이
한국음악 앙상블 '바람곶'의 대표 원일이라는 분이시란다.
바람곶? 그런 단체가 있었나?
인터넷을 부랴부랴 뒤져보니 2010년 월드 뮤직 박람회 워맥스(WOMAX)'에서
찬사를 받았던 타악그룹이란다.
2011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도 출연했었다기에
인터넷 다시보기로(무료로 볼 수 있다~!) 방영된 영상을 봤다.
우리의 소리에 다양한 옷을 입힌 것같은 세련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곡들이었다.
혼은 그대로지만 듣기에 편안해졌다고나 할까?
낡고 고루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우리만의 색깔을 살리면서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점점 더 진화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마지막장에는 바람곶 외에도 21세기 한국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는
여러 음악 집단들과 그들이 세계에서 거두고 있는 찬사와 관심을
소개하고 하고 있어서 역시 인터넷으로 좀더 찾아서 들어봤다.
고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은 산산이 부서지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명과 흥,
그리고 공연하는 사람과 관객의 구분없이 하나가 되는 어울림의 음악으로
우리의 소리는 그렇게 현재 속에서, 세계 속에서 우뚝 서고 있었다.
 
 
 
 
정말, 가슴이 뜨끈뜨끈해진다.
이렇게 좋은 음악을, 우리는 왜 외면하고 잊고 산 것일까?
 
이제라도 자주 접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에 앞서 우리 음악의 뿌리부터 알아야겠다는 각오을 다지며 첫 장을 넘겼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장 '옛날 먼 옛날 소리가 있었다?'는 옛날 우리나라의 첫 소리인 마고할미 소리를 시작으로 
단군소리, 공부도하 노래까지 우리 소리의 기원을 살펴본다.
 
 
2장 '한국 음악은 놀랍도록 다양해'에서는 본격적으로 세종대왕이 작곡한 여민락부터
판소리, 민요, 불교음악 등과 같은 우리 음악을 종류별로 자세하게 다룬다.
 
 
각 장의 끝에는 좀더 자세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나 정리가 필요한 내용들을
따로 묶어서 '소리의 꼼수 수첩'으로 정리해두고 있다.
 
 
우리 소리의 기원과 종류별 특징을 알았으니
3장 '우리 악기에는 자연이 담겨 있어'에서는 이를 연주할 수 있는 악기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악기의 유래에서부터, 특징까지 자세하게 담고 있는데
자연 그대로를 이용해서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려고 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마음에 새삼 놀라게 되고,
악기의 종류가 65가지나 된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그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과연 몇 개나 될까?
 
 
이 장의 '소리의 꼼수 수첩'에서는 가야금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야금 한 대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과정을 읽기 것조차도 벅차기만 하다.
 
 
다음 장 '소리의 꼼수 수첩'에서는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직접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고 계신 악기 명장을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 4장 '21세기 한국음악을 소개할게'는 앞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계속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21세기 한국음악에 대한 소개가 이뤄진다.
 
그리고 악기를 비롯 다양한 곳에서 우리 음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들의 소개와 
'한국 음악 연표'를 끝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우리 음악에 대해 소개를 하는 책이기 때문에 
많은 정보의 양에 지루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겠지만  
가야금의 일인자가 되고 싶어하는 엉뚱한 캐릭터 '소리'와
거칠지만 속은 따뜻한 국악계의 고수 '고래고래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풀어내기 때문에 술술 넘겨가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꼼꼼한 자료 조사와 흥미있는 구성, 깔끔한 편집은
익숙한 듯 낯선 우리의 소리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볍게 접근하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간 만큼 다가오는 내용들은 진지하고 묵직하다.
 
이렇듯 우리 음악을 지키려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 음악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가고 있다.
단지,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좀더 많이 생겨야 하는 숙제가 남겨져 있긴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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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길이 있단다 - 민족과 교육을 사랑한 으뜸 기업가 대산 신용호 샘터 솔방울 인물 13
김해등 지음, 김진화 그림 / 샘터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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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위해 큰 일을 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위인을 찾아 소개하는 '샘터 솔방울 인물' 시리즈에 대한 믿음때문에 신간이 나오면 언제나 설레고 기대를 하게 된다. 전형필, 손보기, 올리버 R. 에비슨이 그랬다. 인물에 대한 감동 뿐만 아니라 흡인력 있는 글과 편집은 이야기 속으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며,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종이나 제본은 책의 품격을 높여주면서 인물을 더 무게감을 더해준다. 그런데 이 시리즈의 신간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한껏 기대를 하고 과연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하면서 책을 만나게 되었다.
 
'민족과 교육을 사랑한 으뜸 기업가 대산 신용호 회장'의 이야기였다. 책의 제목은 [책에는 길이 있단다]. 우리나라 최대의 서점 '교보문고'의 설립자 답게 신용호 회장을 가장 잘 표현한 한마디는 기업도 보험도 아닌 바로 '책'이었다. 책에 대한 관심과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신용호 회장이 걸어온 길과 정신은 누구보다도 공감이 갔고, 더 깊은 감동의 여운을 주었다.
 
사실 신용호 회장에 대해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지만 근래들어 종종 접하게 되었다. 아니, 혜택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신용호 회장의 뜻을 받들어 설립된 '대산농촌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두 번 농촌체험을 다녀왔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 있었나? 들어보지는 못했는데...'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교보생명'의 창립자였던 것이다. 의식있는 기업가구나 정도가 당시에 알게된 신용호 회장의 전부였다.
 
그것이 벌써 5~6년 전이었으니 한참을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48분 기적의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신용호 회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책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로 잠깐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이윤을 마다하고 책에 대한 그의 신념을 실천했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래서 기회가 닿으면 신용호 회장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히 접하게 된 신용호 회장을 불과 두어 달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반갑고 신기한 마음도 잠시 마음 한 편으로는 훌륭한 분이기는 하지만 책 한 권을 엮을 만큼의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하며 책을 받자 마자 묵직한 표지를 넘기고는 서둘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일러스트가 신용호 회장의 사진으로 된 콜라주 기법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생략이 많이 된 장난스런 그림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사진이 조화를 이루며 사실적이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 낸다. 마치 그 옛날의 신용호 회장을 직접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준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한복판에 대형 서점을 열고 누구나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했던 신용호 회장이 돈이 없어 책을 훔친 아이를 감싸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매정하게 대했던 직원에게 자신의 신념이 담긴 지침을 내리면서 가난해서 제대로 배우기 어려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 떠올리게 된다.
 
 
1917년 8월 11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난 신용호 회장은 부친의 항일 운동으로 인해 집안이 가난하기도 하였지만, 입학 전 걸린 폐병으로 인해 학교도 못간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죽음의 문턱을 들락거리던 신용호 회장은 어머니의 지극한 간호와 정신력으로 치사율 높았던 폐병을 이겨내게 된다.
 
 
학교에 갈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였다. 신학문의 열풍과 학교를 통해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라 입학할 나이가 한참 지난 신용호 회장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신용호 회장이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괴로워할 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신 분이 바로 신용호 회장의 어머니였다. 그의 가슴에 꿈의 씨앗을 심어주셨고, 신 회장은 독서로 성공했던 링컨을 롤모델 삼아 독서와 독학으로 그 씨앗의 싹을 키워 나갔다.
 
독학으로 자기 또래의 그것도 중상위권 실력을 갖추게 된 신용호 회장은 병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천 일 독서'를 시작하게 된다. 말이 독학이고, 천일독서이지 일을 하면서 그것도 뚜렷히 눈에 보이는 목표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심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는지 그 의지력이 놀랍기만 했다.
 
 
학문에 대한 문리가 트이게 되니 세상 돌아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상깊게 읽었던 '카네기 전기'를 통해 그는 카네기같은 사업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을 떠나 현재의 서울인 경성으로 와서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회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곧 일본인들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경성에서 만난 친척뻘 되는 아저씨인 '신갑범'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도움으로 만주로 건너가 꿈을 펼칠 기회를 찾는다. 그곳에서 그는 끊임없는 연구와 부지런함, 그리고 뛰어난 사업적 수완을 발휘해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방법으로 사업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말이 쉬워 성공이지 일본인 회사에서 시기와 질투, 냉대를 받으며 성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발로 뛰며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는 부지런함과 치밀함 그리고 마음 먹은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 덕분이었다.
 
 
작은 성공에 취해 있는 그를 채찍질한 것은 바로 신갑범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중국 땅으로 발을 옮긴다. 그곳에서도 신용호 회장은 가장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예리한 눈으로 시장을 파악하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때를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어김없이 그 기회를 낚아챈다. 아니,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을 찾는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간다!"
 
그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되새기던 이 문구는 책에서 보고 마음에 새긴 그의 좌우명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이 좌우명처럼 현실이 막힐 때마다 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갔다. 학교도 나오지 못한 그가 독학이라는 새로운 길로 지혜를 얻은 것도, 경성이 아닌 만주에서 그의 길을 찾은 것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도매상을 운영해서 성공을 거둔 것도 모두 그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이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아무것도 없는 중국땅에서 홀로 시작하는 것 역시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그가 새롭게 만들어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중국에서도 해내고 만다. 철저한 시장 파악을 통해 세운 곡물회사는 직원 5명으로 출발해 20명까지 늘어날 정도로 성장을 해나갔다.
 
그러나 그에게 성공의 꿀맛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모든 재산을 날리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숱한 고비도 있었으나 그는 특유의 철저한 준비와 배포로 위기를 넘기며 마침내 직원 100명이 훌쩍 넘는 베이징 제일의 곡물 회사로 키워낸다.
 

그렇지만 격동하는 역사의 한 중간에 있었던 그에게도 역사의 소용돌이는 피해가지 않았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소란스럽던 중국은 외국인들의 재산을 동결해버렸고, 신용호 회장은 모든 재산을 두고 귀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지고 있던 돈마저 귀국을 준비하던 어려운 동포들을 위해 모두 써버렸다.
 
그의 이러한 행동의 배경에는 나라의 독립과 약자의 권익을 위해 싸웠던 아버지와 형들의 영향도 있었지만 만주로 떠날 때 도움을 주었던 신갑범의 당부가 있었다. 
 
"내 말 한마디만 명심하게. 독립운동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네. 자네처럼 사업가가 되어서 조선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조선인의 자부심과 희망이 되어 주는 것도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네. 스스로 일으킨 사업으로 사업가의 꿈을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p.60~61
 
이후 신용호 회장은 이를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해나갔다. 또한 독립운동가이자 유명한 시인이었던 이육사를 만나면서 그의 이러한 생각은 더욱 단단해졌다.
 
"신 군, 일본이 조선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짓이 뭔 줄 아는가?
총칼부터 들이댄 게 아니라네. 일본은 조선의 상권부터 먼저 빼앗아갔네.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은 진기하고 새로운 물건을 조선에 들여와 상점을 열었다네. 코딱지만 한 조선 상점들이 버텨 내질 못했지. 일본 상점들은 순식간에 조선의 상권을 쓰러뜨리고 재물을 끌어모았지. 조선은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야." ---p.84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빈손이 되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절망에 빠져 허우적되고 있을 때 그는 또다시 철저한 분석과 시장조사를 통해 힘을 내어 직물회사를 세워 또다시 성공을 맛봤다. 그러나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을 치루면서 기업가라는 이유하나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가 하면, 대출금의 갑작스런 중단으로 사업이 엎어지면서 또다시 그는 큰 시련을 맛봐야했다.
 
어떻게 또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허탈하고, 힘들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외친다.
 
"시련은 절대 공짜가 아니라고!"
 
그리고 그는 또다시 일어선다.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칭할 정도로 온 가족의 재산을 팔아서라도 가르치려는 교육열이 팽배해 있던 시절, 그는 세계 어디에도 없던 '교육보험'을 만든다. 개척이라는 말과 꼭 어울리게 수많은 시행착오와 편견, 실패를 딛고 일어서며 당당히 그의 좌우명대로 그는 자신의 길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1958년 8월 7일 창립한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는 창립 9년 만에 1,500명의 직원을 둔 거대한 회사로 성장했으며, 1983년에는 보험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회사가 성장을 거듭하고 있을 1979년, 신용호 회장은 처음 창립 당시 직원들에게 '25년 안에 서울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사옥을 짓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킨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종로 한복판에 최첨단의 22층 빌딩을 우뚝 세운 것이다.
 
신용호 회장의 기업가로서의 신념은 그 이후부터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종로 한복판의 금싸라기 땅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형서점'을 만든 것이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1981년 6월 1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인 '교보문고'를 연 것이다. 678평이나 되는 서점에 60만 권의 책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서점에서 신 회장은 이익을 내기 보다는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마음대로 책을 볼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잘 팔리는 불량 서적을 전량 철수시키고,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분야별로 고르게 비치해놓도록 지시한 것만 봐도 이윤을 추구하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듯 하다. 처음보다 비좁아진 매장의 공사를 위해 1991년 1년간 문을 닫을 때에도 직원의 월급은 그대로 지불하게 했으며, 오히려 해외연수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게하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있어 '교보문고'는 '책'이라는 상품을 팔기 위한 공간이 아닌,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이었다.
 
책을 좀더 가깝고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므로써 사회가 책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되고, 이렇게 성장한 인재가 다시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그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그는 사회와 나라에 책을 통한 꿈의 씨앗을 심고자 했던 것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교보문고를 들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책 속에서 길을 찾았던 신용호 회장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언니들의 손을 잡고 교보문고를 자주 방문했었다. 처음에는 숨막히게 높은 건물에 압도되어 놀랐고, 다음에는 서점에 펼쳐진 수많은 책들의 향연에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책 한 권을 골라 사고서는 읽고 또 읽으며 책과 가까워졌었다.
그때 입구에 붙어 있던 노벨상 수상자들과 아직 채워지지 않았던 빈 자리, 이를 보면서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작은 몸짓이었지만 커다란 희망으로 다가왔던 기억. 교보문고는 내게 그런 꿈의 장소였다.
 
두 딸의 엄마가 된 지금, 나는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교보문고를 찾는다. 두 번의 리모델링을 거친 지금의 교보문고는 내 어릴 적 들렀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지만, 아이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많은 책들에 놀라며 뛰어다닌다. 그리고는 각각의 취향에 맞는 책 한 두 권씩을 골라오며 뿌듯해 한다. 이렇게 신용호 회장이 사회에 건넨 책의 향기는 대를 이어 퍼져 나간다. 이제는 강남점을 비롯 전국에 매장이 생기면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뜻이 전달되고 있다.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만들어가며 기업을 세우고, 그 기업의 수익을 아름답게 사용할 줄 알았던 대산 신용호 회장, 그는 진정 아름다운 으뜸 기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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