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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소녀와 좀비의 탐험
도마스 아키나리 지음, 박주영 옮김 / 한언출판사 / 2013년 9월
평점 :
범상치가 않았다.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분명 '철학'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 순정 만화에 나올 법한 주인공들이며, 좀비는 또 뭔가?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철학을 다루다보니 조금 편하게 접근하라는 뜻으로 캐릭터를 친숙하게 잡았나보다 하면서 책을 펼쳐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표지가 발랄하고 격이 없게 느껴지니 '철학'이라는 제목도 그다지 거리감 없이 다가온다.
표지를 넘기니 책 날개에는 이 책의 목적이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맥을 형성하고 있는 핵심 주제가 눈에 띈다.
"단언컨대, 철학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한 유일한 이정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와 철학을 할 때와 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삶이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보여준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더 나아가서는 현대의 마이클 샌델까지 관통하고 있는 주장을 근거로 제시하지만 궁극적인 이 책의 목적은 바로 '철학'을 하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이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에는 '재미'와 '흥미'에 비중을 크게 실었다. 표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에는 세 명의 소녀 좀더 정확히 얘기하면 세 자매가 나온다. 이 세자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화신으로 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과 그의 딸이 벌이고 있는 우경화 정책에 '철학'이라는 무기로 맞서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 것은 주인공 '나'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2년간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고백하려는 순간 일주일 전부터 친한 친구와 이미 사귀고 있었다는 고백을 받으며 실연 아닌 실연을 당하게 되는 불운의 사나이다. 시련은 사람에게 고통도 주지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아무도 모르는 실연의 고통으로 허우적되면서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일기 시작할 때 철학 전사 소크라테스의 화신 '기리시마 린'을 만나게 되면서 내 삶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린은 학교의 이사장과 그의 딸 '기베인 아이'가 자신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을 사유하지 못하도록 영혼을 빼앗아 '철학 좀비'로 만드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전한다. 아직 영혼을 뺏기지 않았기에 자신을 선택했으며, 일명 아틸란티스 계획을 저지하는데 동참할 것을 종용한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의 화신답게 린은 문답법(산파술)으로 왜 철학이 필요한 지, '궁극의 답' 즉 '진리'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지를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인생에는 끝없는 문답이 필요해. 전보다 조금씩 진리에 가까이 가고 있잖아. 가장 나쁜 것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는 거야. 철학의 역할은 자신이 굳게 믿고 있던 편협한 생각을 없애고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 가는 거야. 그러니까 계속 의문을 품고 대화하고 지금과는 다른 자신을 꺼내면 되는 거야." ---p.47
다소 튀는 행동과 사이비 종교 단체의 교주같은 린의 행동에 반신반의하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철학적인 사유를 하게 되는 것을 깨닫고는 본격적으로 철학을 배워보기로 결심한다.
린은 좀더 강력하게 철학을 배우기 위해 동생 '마리'를 찾아가라고 한다. 마리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의 화신이다. 플라톤처럼 그녀는 학교의 모든 운동부 활동을 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자랑한다.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통해 내면에서 올바른 것 즉 진리를 깨닫게했다면 플라톤은 진리란 '이데아'이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다른 차원에 있으며, '이성'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도서관에서 만난 막내 도모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화신으로, 이데아는 다른 차원이 아닌 현실 속에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어지는 철학 사상을 철학에는 무지한 주인공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추상적인 개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질료, 형상과 같은 익숙하지 않은 용어도 '재료', '설계도'처럼 쉽게 비유하고 풀어서 설명을 해주니 거부감없이 의미를 곱씹어보면서 주인공과 같이 고민하면서 사유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은 목적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주인공도 얘기한다. 누구에게나 목적이 있다고. 자신도 목적이 있다고....
그런데 왜 많은 현대인들은 허무함을 느끼고, 심지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그렇게 말씀드린 이유는 목적이 욕구이기 때문이에요. 욕구들만 연결해서 살기 때문에 인생이 허무한거예요. 모두들 무엇을 위해서라는 욕구들의 연결 속에 묻혀 있어요. 그 당시는 좋지요. 하지만 인간은 무엇을 위해서가 연결된 큰 전체인 인생을 생각해요. 결국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순간순간의 욕구를 어느 정도 채워도 인생은 의미를 갖지 않아요. 그러니까 허무한 거예요." ---p.152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중심을 갖는 것. 돈이나 명예는 안 돼요. 더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어야 해요. 최종 목표는 궁극의 목적지이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적, 그것은 최고선......" ---p.153
"지금 이 순간에 만족으로 가는 선한 목적을 찾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없어요."
아이 선배도 필사적으로 반격을 가했다.
"내 이야기하고 뭐가 다르니?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는 것이 선한 목적이라면 음악을 듣는다든지, 먹는다든지, 춤을 추는 것. 눈앞에 있는 욕구를 채우는 것이 그런 것들이잖아."
"그런 것들이 아니예요. 하나의 욕구가 다른 욕구를 위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서 원하는 것이 필요해요. 다른 모든 것이 그 자체를 위해 원하는 궁극의 목적인 최고선이요."---p188~189
"우리들은 눈앞의 욕구에 사로잡혀 자신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이 세상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떤 목적이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것으로 괜찮다. 눈앞의 욕구에서 인생 전체의 목적으로 눈을 돌리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기 위해 이성을 활용해서 일상적이 모든 것을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생의 모든 것에 의미가 생긴다."---p.189
영혼을 뺏겼다는 의미의 '철학좀비'라는 표현이 조금 살벌하기도 하지만, 정말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 필요성을 점점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쾌락과 욕구가 인생의 목적인양 몰입하면서 스스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고 있지 않은 지조차도 모른 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지도...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사회판 '철학좀비'가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같은 공간에 모여 있으나 각자의 쾌락 세계에 빠져 있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누군가에 의해 세뇌되어 조종되는 인형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겉은 멀쩡하지만 영혼을 빼앗긴 '철학좀비'처럼.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성인도 성인이지만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더더욱 철학좀비가 되기 십상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점점더 물질욕이 과열되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중심을 갖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쓰여진 것이다. 물론 철학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가장 일차적인 목적은 바로 청소년들에게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기 위함이다. '철학좀비'는 사유하지 않는 삶을 살았을 때의 우리들의 모습이며, 철학소녀의 '로고스 머신'이라는 공격에 의해 깨어나 다시 프시케를 얻게 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영혼없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역시 '철학'이라는 것을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빠져 나오며 마지막장을 덮을 순간 '철학적인 지식'보다는 '철학의 필요성'이 더 무게있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부제 '십대, 철학을 다시 읽을 시간'이 말해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