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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다 다르다 - 유럽의 길거리에서 만난 그래픽 디자인 ㅣ 디자인은 다 다르다 1
황윤정 지음 / 미술문화 / 2013년 8월
평점 :
학교를 졸업하고 전공은 아니었지만 디자인과 관련된 회사에서 3년간 근무를 했었다. 직접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때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와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색깔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생각과 결정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이를 기능적으로 아름답게 정돈해놓은 디자인의 영향력을 따로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다가 회사를 떠나면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디자인과 내 삶은 별개가 되었다.
과연 정말 내 삶과 디자인이 동떨어져 있었을까? 적어도 그런 줄 알았었다. 디자이너도 아닌데 디자인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이 책 [디자인은 다 다르다]를 만나기 전까지.
[디자인은 다 다르다]는 저자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본 그래픽디자인이 나라별로 다른 특색이 있는 것을 발견한 후 본격적으로 그 배경을 파헤치며, 왜 각기 다른 특징을 갖게 되었는지,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 지 등을 비교 연구한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디자인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이라도 길거리의 그래픽디자인이 나라별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렇지만 저자의 전문가적인 관점으로 조목조목 풀어내는 설명을 들으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나라마다 다른 특색이 묻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유럽 중에서도 그래픽디자인의 중심지이며, 지척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그래픽디자인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보이는대로 정신없이 사진 찍기에 바빴다는 저자의 노력 덕분으로 독자는 직접 유럽을 활보하지 않아도 풍부하게 제공되는 사진으로도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각 나라들의 그래픽디자인 특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그 나라의 특색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수준높은 그래픽디자인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독일은 엄격한 군인 같았고, 스위스는 깔끔한 수학자 같았으며, 네덜란드는 사치스러운 무역상 같았다. 프랑스는 주근깨 가득한 발랄한 화가 지망생이었고, 영국은 지킬과 하이드였다." ---p.276
저자가 한 마디로 정리한 각 나라별 그래픽디자인의 느낌이다. 그렇다면 서로의 영향권 안에 있는 나라들의 그래픽디자인 왜 이렇게 상이한 형태로 발전되어 온 것일까? 저자는 독일에서 출발하여 영국까지 가는 여정을 그대로 밟아가며 다각도로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각 나라별로 그래픽디자인이 어떻게 다르고, 또 그 배경은 무엇인지를 찾아낸다.
구성 포맷은 나라별로 동일한데 맨처음에는 여행하는 나라의 길거리를 스캔하며 그래픽디자인은 물론 건축 양식, 제품디자인, 공공디자인, 거리의 낙서 등등 전반적인 그 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느껴본다. 건축과 그래픽디자인의 흐름이 함께 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예술 사조가 같은 시기에 함께 작용을 하면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듯 싶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최소의 물자로 최대의 효과를!" 외치는 독일이다. 반듯한 거리의 건물 형태와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그래픽디자인은 세트처럼 많이 닮아 있다. 그 나라의 상징적인 것을 토대로 살짝 맛을 본 후, 본격적으로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독일의 그래픽디자인들을 살펴보며 두드러진 특징과 장단점 등을 짚어본다.
독일의 디자인은 기능성은 우월한 반면 일러스트나 장식적인 부분에서는 취약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독일은 왜 이런 특징을 가지게 되었을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으로는 그 나라 디자인이 발전되어 온 디자인의 뿌리 즉,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본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은 다른 나라로 가기 전 그 나라에서 보고 느꼈던 디자인의 느낌과 다소 깊게 들어갔던 역사적 배경 등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하는 '...를 떠나며'로 마무리 한다.
"독일은 척박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물자 부족에 시달려 왔고 이 물자 부족은 기능적인 디자인의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제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기능성은 기계의 힘을 빌려 더욱 강력해졌고 잠시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되며 기능주의는 이념적 타당성이 세워졌다. 독일의 기능주의는 사회 변동과 함께 형태를 바꾸며 진화해 갔고 디자인 역시 이에 발맞추어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변모해 나갔다." ---p55
이렇게 마무리하고 떠난 다음 여행지는 "독일과 비슷하게, 그러나 독일보다 아름답게!"로 함축될 수 있는 '스위스'다. 스위스를 비롯 뒤에 오는 나라들 역시 독일과 같은 포맷으로 구성되어 었다. 독일에서 상징적인 특징을 BMW와 제품디자인에서 찾았다면 스위스에서는 '철도역'의 디자인을 꼽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시나 길거리를 포함 다양한 그래픽디자인의 특징을 살펴보는데 저자의 말처럼 독일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독일에서와 같이 각 디자인들은 어떤 특징이 있고 또 닮은 듯 다르게 발전한 이유와 발전된 디자인의 뿌리를 살펴본다. 다시 '스위스를 떠나며'를 통해 스위스 디자인의 전체적인 인상을 정리한다.
그 다음 여행지는 "꽃무늬와 몬드리안이 만난" 네덜란드, "모든 것이 ART!"인 프랑스, 그리고 "영국 신사와 펑크족의 기묘한 동거" 영국까지 같은 패턴으로 각 나라의 그래픽디자인을 샅샅이 살펴본다. 뒤로 갈수록 점점 회화적인 요소가 들어가고 개념과 풍자가 가미된 디자인이 등장하면서부터는 그래픽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점점 커진다.
마지막에는 에필로그처럼 5개국의 그래픽디자인을 비교해본 결과를 다시 한 번 정리해놓았다. 나무만 보는데 그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숲 전체를 정리해주는 참 친절한 책이다. 이렇게 비교하며 정리해 놓은 것을 다시 한 번 읽으니 각 나라의 특징이 한 눈에 잡히며 정리가 된다.
디자인에 관련된 책이지만 디자인을 몰라도 저자가 포인트를 짚어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캡션을 쫓아가다 디자인을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각 나라의 수준 높은 디자인에 한껏 취하다 보면 디자인을 보는 안목과 감각도 저절로 높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읽고 거리를 나서니, 각기 개성을 뽐내며 어지러이 밀집해 있는 거리의 그래픽디자인들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은 어떨까? 디자인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은 과연 우리를 얼마나 대변해 주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간 글씨만 한국어일 뿐 때로는 스위스풍, 때로는 네덜란드풍, 또 때로는 일본풍으로 보이는 그래픽디자인을 많이 봐왔다. 유럽의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이 매력적인 이유는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에 따라 디자인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서로 '다름'에서 매력과 가치가 생긴다면, 이제는 우리의 디자인이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달라야 할지 고민해 볼 때이지 않을까." ---p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