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어린이책 200선
이주영 지음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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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고, 독서지도를 배우고 하면서 늘 고민은 어떤 책을 어떻게 고를까였다. 여러 기관에서 추천해주신 도서를 찾아서 읽어보는 가하면 나 스스로도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 직접 골라보기도 하는데 아직도 책을 고르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반면, 나에게 맞는 음식이 따로 있듯이 나에게 맞는 책 역시 각각 다를 수 있으니 유연하게 좋다고 느껴지는 책으로 고르면 된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도 있어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하루가 멀다하고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속에서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래서 독서를 권하고, 책을 추천하는 책도 자주 보는 편이다. 독서 전문가들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택하는 지, 책을 어떻게 읽는 지 그 책을 모두 읽어 볼 수는 없지만 그 중 한 권의 책이 실마리가 되어서 몇 권의 책이 술술 풀릴 때도 있어 꽤 많은 도움을 얻곤 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어린이책 200선] 역시 그런 마음으로 접한 책이다. 이제 초등학교 막바지에 들어서는 둘째가 편독이 심해지는 경향이 생겨서 균형 잡혀서 책을 읽혀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터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제목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책이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이 의미를 몰랐었다. 이 책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으며 책을 고르라고 하는 것인가,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저자가 선정한 200선의 책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으라는 의미였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우습기 짝이 없는 생각이어서 혼자 피식 웃었는데, 내가 왜 그렇게 착각했을까 곰곰히 따져보니 어린이책을 나는 읽을 필요가 없고, 아이는 읽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다. 오로지 읽게 해야 겠다는 생각에 갇혀서 어떻게 하면 한 권이라도 더 읽힐까 하는 목적의식으로 책을 보니 그런 관점에서 해석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을 좋아하고, 많이 본다고 자부했는데 사실은 내가 즐기고, 느끼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교육을 목적으로 했었다는 것을 새삼 직시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책만 읽으려고 할 때 못마땅하고, 불안해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고 공감하면서 얘기를 나누려는 여유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를 바랬을 뿐.
 
처음에는 이 책을 그런 불순한 의도로 만났었지만 첫 장을 넘기고, 책을 한 권 한 권 만나가면서는 사실 그 목적을 잃어버렸었다. 저자는 애초에 아이들을 똑똑하게 한다거나, 다양한 지식을 선사해 학교 공부에 도움을 준다거나 하는 목적으로 책을 추천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어린이책을 좋아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만큼 많은 책을 읽고, 정말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는데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을 골라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볼 수 있는, 분야별로 기계적으로 선별해서 구색을 갖추는 형식이 아니라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 전학년으로 연령 구분만 했을 뿐 책의 성격보다는 책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위주로 책을 선별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식을 전달하는 정보책은 거의 없고, 대부분 이야기책이나 시집 등 직접적인 전달 방식보다 이야기나 인물을 통해 은은하게 전달하는 책을 주로 선정하고 있다.
 
 
글의 형식도 이 나이에 이것이 필요하다라는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저자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유로 글의 문을 열고 소개하는 책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고 있으며, 글의 마지막에는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함께 얘기해볼 수 있는 거리나 활동 등을 넌지시 전해주고 있다. 꼭 해보라는 강요가 아니라 '~해보면 좋겠다'는 표현으로 확장된 활동을 조용히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스런 권유에 오히려 더 강한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이런 배려는 평생을 아이들과 교감하며 교직 생활을 했던 저자답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2000년부터 5년간 한겨레신문에 실었던 글을 2005년에 출간한 이후 다시 수정을 거쳐서 복간한 책이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 중에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들도 있고,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꾸준히 읽히고 있는 책들도 상당히 많다. 이는 그만큼 시대를 막론하고 읽힐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유연하면서도 완성도 있게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책들이 즐비한 이 책은 그야말로 책의 홍수 속에서 바른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리하여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함께 읽어 좋은 '좋은 책'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가 얘기하는 진짜 '좋은 책'을 말이다.
 
"좋은 책이란 단순한 교훈성이나 수준의 높낮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 책이, 그 작품이 담고 있는 기본 정서와 가치관이 독자가 갖고 있는 문화의 정체성과 어떻게 서로 교류할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p.5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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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 세계적 건축가와 작은 시골 빵집주인이 나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건축 이야기 더숲 건축 시리즈
나카무라 요시후미.진 도모노리 지음, 황선종 옮김 / 더숲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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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는 직업이 아닌 사명을 가진 두 장인이 '빵집'을 짓는 과정에서 나눈 교감을 표지만큼이나 담백하고 아기자기하게 보여주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책을 여러 권 출간했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 씨는 어느 날 편지를 한 통 받게 된다. 프랑스 요리사였다가 빵 만드는 일에 매료되어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운 후 지금은 홋카이도 맛카리무라에서 '블랑제리 진'이라는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진 도모노리 씨로부터 온 편지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홋카이도 맛카리무라에서 사는 진 도모노리라고 합니다.
맛카리무라는 손바닥만 한 마을이며, 저는 이곳에서 아내와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조립식 패널로 만든 작은 집에서 빵집 '블랑제리 진'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빵집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장작가마를 설치해놓고 거기에서 빵을 굽고 있죠. 그런데 공방과 가마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 수시로 들락나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게다가매장도 작아 손님 서너 명만 들어와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지요. 요즘에는 이런 점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또한 여러 가지 문제도 생겨 이참에 새롭게 건물을 짓고 빵 가마도 큰 것으로 바꾸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중략-
저희는 주로 그냥 단순하게 구워서 내놓기만 하는 소박한 빵을 만들고 있어요. 별도로 마무리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 구워진 빵의 표정에 마음을 담아 만들고 있죠. 따라서 이와 같이 단순하고 간소하고, 그곳에서 일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공간을 꿈꾸고 있어요.
커다란 빵 가마를 설치할 수 있는 공방, 장작을 패는 방과 쌓아놓는 곳, 밝고 기분 좋은 지나치게 넓지 않은 매장,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생활공간이 있어야 해요. 거창하게 보이지 않고 겉으로 봐서는 가게라고 여겨지지 않는 평범한 건물이 저희 가족이 그리고 있는 빵집이에요.
 
 
-중략-
예전에는 빵을 가마에 넣을 때 십자가를 긋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가마 속의 빵이 부풀어오르고 노릇하게 구워지는 모양을 매우 신비스럽게 여겼죠.
우리도 가마 속에 넣고 난 뒤에 맛있게 구워지도록 손을 모아 빌고 있으니 기도하는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조용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공간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저희 가족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작은 빵집을 부탁드립니다." ---p.29~32
 
손글씨로 쓴 편지는 '삶'의 공간을 짓는 건축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결국'삶'을 굽는 그의 경건한 작업 공간을 짓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처음 의뢰를 시작으로 설계를 하면서 의견을 주고 받았던 편지와 팩스의 내용을 모아서 그 따뜻했지만 여러모로 긴박했던 과정을 엮은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생각했던 '건축'에 대한 견해와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단순히 공간 뿐 아니라 집을 짓고, 빵을 굽는 일에 대한 철학, 삶에 대한 생각들도 자연스럽게 주고 받게 되면서 건축주와 건축가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서로 정신적인 교감을 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예산도 넉넉하지 않은 시골의 한 빵가게 주인의 편지를 통해서 시작된 인연은 결국은 건축가가 빵가게 주인에게 기꺼이 절반의 비용을 대며 아름다운 서재를 선물하기에 이른다. 물론, 종종 예고없이 쳐 들어와 맛있는 빵과 음식을 대접받으며 별장으로 이용하려는 행복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그의 계획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선생님은 우리 가족을 위해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여기저기에 만들어주셨다. 최근에는 안락함에 '집착'하는 나카무라 요시후미 선생님에게 이런 이메일이 왔다.
"벽돌집을 개량한 서재에 야콥센의 가죽으로 된 계란의자를 놓아두면 어떨까요. 디자인, 품격, 분위기가 서재에 안성맞춤! 게다가 책을 읽기에도 딱 좋은 의자라서 도모노리 씨의 승낙을 기다리지 않고 주문해 두었어요. 이번 책 출판 기념 선물이에요."" ---p.203
 
 이전에도 이미 두 사람의 응수는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
 
"기본 설계가 끝났을 때 나는 진 도모노리 씨에게 설계 비용의 절반을 빵으로 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한결같이 식탐이 많은데 매일 점심을 직접 만들어 먹기 때문에 맛있는 빵이 정기적을 배달된다면 식사 메뉴가 풍부해져 모두 뛸 듯이 기뻐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진 도모노리 씨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설계 비용의 절반을 빵으로 지불해달라는 따뜻한 마음씨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선생님 말에 못이기는 척하며 빵으로 지불할게요. 이번 달부터 한 달에 두 번씩 블랑제리 진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선생님의 사무실이 없어질 때까지 빵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결국 매달 받게 된 빵 값이 설계비보다 더 나오게 될지 어떨지는 내 사무실의 존망에 달려 있게 된 셈이다."---p.6~7
 
 
소박하지만 혼신의 힘으로 빵을 굽는 진 도모노리씨와 소박한 공간에 역사와 철학을 최대한 살려내려고 수없이 설계도를 고치고, 옛 창고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나카무라 요미후리 씨가 함께 만들어 완성한 빵집은 서로의 신뢰 속에 만들어 낸 교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했던대로 되지 않아서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서로 믿고 화합하며 신명나게 일한 끝에 완성한 새 가마에서 처음 빵을 굽는 '첫 불 기념식'의 장면을 읽을 때는 나도 떨리면서 흥분되었고, 진 도모노리 씨의 엄숙한 분위기에 경건해지기도 했다. 이어지는 만찬에 나 역시 그 자리에 초대 받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아름다운 교감에 푹 빠져 들었다.
 

 
진 도모노리 씨의 네 살배기 아들의 '트리하우스'까지 완성된 빵집은 소박하지만 제대로 맛을 낸 그의 빵 만큼이나 평화롭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그런 따뜻하고 평온한 공간에게 살게 된 진 도모노리 씨의 가족이 부럽지 그지 없지만 사실 더 부러운 것은 빵집보다 더 큰 '선물'를 얻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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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영화관에 가다 탐 철학 소설 6
조광제 지음 / 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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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철학 소설 시리즈'는 얼마 전에 읽은 [장자, 사기를 당하다]로 처음 접했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에 끌려 보았었는데, 추상적인 철학의 개념들을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어렵지 않게 철학에 다가갈 수 있었게 해주고, 모호한 개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용만 철학적일 뿐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제대로 갖춰진 소설의 구조는 긴장감과 흥미를 더해준다. 공자, 퇴계, 루소 등 이미 5권이 출시가 되었고, 여섯 번째로 나온 책이 바로 [플라톤, 영화관에 가다]이다.
 
[장자, 사기를 당하다]에서는 동양을 대표하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이 현대를 배경으로 한데 모여 각자 주장한 사상에 맞게 생활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장자'의 사상을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현대화 된 동양 철학의 주인공들이 한 곳에 모인다는 상상이 재미있고도 신선했었다.
 
그렇다면, [플라톤, 영화관에 가다]는 서양 철학의 굵은 핵심 줄기인 '플라톤'의 사상을 과연 어떻게 전달하고 있을까? 몹시 궁금했다. 플라톤이 영화관에 간다고 하니 마찬가지로 현대가 배경인가본데...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될까?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플라톤의 모습은 몸은 현재에 있으나, 과거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트는
"서양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서양 철학사에 플라톤이 끼친 영향을 막대하다. 평생 철학을 연구하면서 집필한 수많은 저서에서 주장한 방대하고 깊이있는 내용을 다 다룰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어떤 주장을 어떤 배경에서 펼치게 되었는 가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SF 영화와 같은 흥미로운 스토리로 살펴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특이하게도 '프롤로그'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성헌'은 친구이자 스승같았던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는다. 현재는 완쾌가 된 상태이지만 엄마마저 우울증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성헌은 '죽음'과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기 시작했다. '죽음 후에 세상은 어떤 것인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진짜 세상인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이제 막 세상으로 시선이 뻗어나가기 시작한 중학생 소년에게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들은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내가 보는 세상은 진짜일까?'라는 수수께끼같은 메일 한 통이 성헌 앞으로 전달된다. 성헌이 알고 싶어했던 그 질문,,,어쩌면 그 답에 근접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성헌은 무심코 삭제했던 메일을 복원하여 찬찬히 들여다 본다.
발신자는 '나골'이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왜 사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
인생에 있어서 더 없이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임.
열다섯 살에서 열일곱 살까지 철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면 누구나 응모 가능.
동영상 인터뷰를 통해 심사하여 단 한 명을 선택함.
*주의 :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음. ---p.9~10
 
 
부작용에 주춤할 수도 있지만, 성헌은 곧 자신이 줄곧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험자 지원을 하여 나골 선생을 만나게 된다.
나골 선생은 자신의 연구실인 '나골리스'에서 가상현실을 연구하여 성공한 후 마지막으로 최종 점검을 위해 지원자를 모집한 것이었다. 가상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처리하는 약품 때문에 가상 현실에서 빠져 나오면 메스껍고, 체력이 급격이 저하되며, 너무도 실감나는 가상 현실로 인해 현실에서도 가상과 현실이 뒤죽박죽되기도 한다. 처음 나골 선생이 추신에 붙였던 바로 그 부작용이었다.
그럼에도 성헌은 체험을 강행하기로 하고, 결국 고대 아테네로 들어가 '플라톤'을 만나게 된다. 나골 선생도 함께 동행하면서 플라톤의 사상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며, 때로는 사상 흐름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고, 이데아를 두고는 의견 대립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나골과 성헌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있던 20대 청년 시절부터 80세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주요한 시기에 직접 찾아가 그의 학문의 방향과 배경, 그리고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상의 실체를 직접 들어본다. 
 
더 재미있는 것은 플라톤이 과거 아테네로부터 현재로 날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과거와는 분명 다른 환경에서 그의 생각은 과연 달라질 것인가. 순간적이며, 반복되지 않는 것이 현실 세계인데 '반복'해서 나타나는 '영화'는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간의 경험과 생각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거듭거듭 생각을 해서 제 나름대로 이거야말로 진리라고 여겨 이데아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또 한번 신묘한 경험을 하고 나니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플라톤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간단히 말하며, 세상의 일이란 것이 한 번 있다가 없어지면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는 제 생각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 오래된 일조차 이렇게 꼭 같이 반복될 수 있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의 일이 그렇게 허망한 것만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다시 태어나 저 세상으로 간다면, 여기에서의 신묘한 경험을 살려 전혀 다른 강의를 하고 전혀 다른 책을 쓰게 될 것 같군요."
 
다소 침울하기까지 한 플라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침묵하고 있던 나골 선생이 입을 열었다.
 
"한 번 있었던 세상의 일이 꼭 같이 반복된다고 해서 그것들이 허망하지 않다는 법은 없지요. 세상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결국 죽음으로 마감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허무한 것일 테지요. 플라톤 선생의 말처럼 이 세상 역시 허무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원한 삶을 동경하게 마련이고요. 영원을 향한 열망을 플라톤 선생처럼 위대하게 철학적으로 구현해 낸 인물은 결코 없었습니다. 설사 선생을 공격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선생님 워낙 위대한 탓일 것입니다. 아무튼 플라톤 선생, 덕분에 아주 즐거운 여행을 했습니다. 선생의 철학 사상이 어떤 것인지 실감나게 알 게 된 것이 무엇보다 보람이군요. 과연 선생은 불세출의 위대한 철학자이십니다. 자, 이제야말로 영원히 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p.193~194
 
플라톤 이론의 한계점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보여줌으로써 설명하는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이 놀랍다. 또한 동굴의 그림자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지는 현실의 세계는 허상이라고 주장한 플라톤의 철학을 가상 현실을 배경으로 접한다는 것 자체가 플라톤 철학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와 의미가 모두 포함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다시금 감탄을 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플라톤의 모든 사상을 접할 수는 없지만 이제 막 철학을 접하기 시작한 청소년들에게는 플라톤을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책의 뒷부분 부록에서는 플라톤에 대해 좀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으며, 책의 내용 중 꼭 알아야 하는 부분에 대한 간단한 확인 문제도 풀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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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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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포장과 한 장마다 펼쳐서 보며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 제본.

이 책을 받았을 때 곱게 싼 비닐 포자을 뜯을 때는 마치 무슨 종교 의식을 치루는 듯 했다.

정갈한 편집과 고급스러운 종이의 질, 한 장 한 장 그냥 넘길 수 없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듯 하다.

번역자 류시화는 이 책을 다시 번역하며 일본판까지 참고하면서 수없이 다시 읽어보고 되새긴 끝에 재출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명상을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이상한 것은 분명 어렵게 쓰여지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쉽게 쉽게 읽어 내려갈 수가 없다. 한 줄도 한 번의 생각을 거치지 않고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시선을 한 두 번 멈추고 다시 읽으면, 또 자연스럽게 읽혀 나간다. 한 줄도 쉽게 번역하지 않았으나, 어렵게 읽히지 않도록 한 줄 한 줄 고통스럽게 번역을 한 그 수고가 그대로 전달이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출근하는 전철에서 읽기 시작했다.

시작의 흥겨움도 있지만, 피곤의 무거움도 느껴지는 출근길에서 나는 책을 읽으며, 점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복잡한 지하철은 불쾌한 상황을 만들고 있었지만 책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나에게 '에고'의 명령을 따르지 말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터덜거리며 노곤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점점 작아지는 '나'의 존재를 똑바로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수없이 떠오르는 고통과 욕심으로 꽉 잡혀 있던 내 모습은 '에고'의 지배 그 자체였다. 에고의 말에 하루는 기뻐하고, 하루는 좌절하며 슬퍼하면서 점점 더 나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는데, 정말 거짓말같게도 그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앞에 놓여있던 고통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점점 피곤해가던 내게 정말로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비법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단순히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 지 마찬가지의 '에고'의 지배를 받고, 그 달콤한 말을 들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에고'는 내가 아니고, 마찬가지로 '에고'는 그들도 아닌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지하철에 드러누워있는 노숙인도 에고의 지배를 받고 있기에 현실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전처럼 단지 피해야 할 존재라고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에고의 지배에서 벗어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본질의 '나'를 인식할 수 있고, 그 존재를 마음으로 잘 보살피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지게 되었다.

 

단지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현재 나를 내리 누르는 고통이 이렇게 감소할 수 있다는 데에,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가만히 읽어 보면, 동양 철학과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 등 근래 읽은 철학의 얘기들이 오버랩된다. 이들 모두 에고를 너머 선 세계를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계를 믿건 믿지 않건 간에 현재 나를 내리 누르고 있는 '에고'와 '고통체'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그 때문에 괴로울 때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 나는 이 책을 읽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진정한 내면의 '나'를 인식하고,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자유로움을 얻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현실적인 고통의 순간에도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게 된 것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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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 어린이를 위한 회의 철학 안내서
댄 바커 지음, 이윤 옮김, 송광용 감수 / 지식공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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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스마트폰, TV 등등...우리 아이들은 점점 더 눈앞에 펼쳐지는 화려한 영상과 편리한 기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굳이 외우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정보들이 줄줄이 튀어나오고, 심심하면 손가락만 까딱해가면서 할 수 있는 게임이 즐비한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이렇게 정보와 오락이 넘쳐 나는 시대에 과연 우리 아이들은 하루에 얼마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사고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직업상 아이들과 자주 만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면 한결같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있다. 바로 '몰라요~'다. 그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대다수의 아이들은 이 '몰라요'라는 답을 달고 산다.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 귀찮음 뒤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필요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런 영혼없는 대답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런지 모른다. 몇 년 전부터 급속하게 증가하는 빈도수를 보면서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생각의 의욕이 없어진 아이들은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사고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까?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먹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아무리 주위에서 얘기해도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결코 달라지지 않기에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이 책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는 이러한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준 책이다. 이 책은 왜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를 보여주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지 알려준다.
 
 
그런데 어렵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과연 이러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그런 염려를 고려해서인지 이 책은 90페이지 정도로 읽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로 얇다. 일단 마음의 부담을 줄였더라도 내용이 어려우면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동요를 200곡 이상 작곡했다는 저자는 그만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줄 아는 것 작가이다.
 
먼저 구체적인 사고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전에 아이들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유령 사건'의 상황을 만들어 흥미를 유발한다. 그리고 이 사건의 진실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면서 사고하는 방법과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도록 해준다. 흥미와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이 부분은 만화와 간단한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독자인 아이들에 성향을 고려한 듯 하다. 
 
 
 
 
이야기를 통해서 합리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다음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과학적인 사고의 여섯 가지 법칙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여기서도 저자의 고민이 흔적이 엿보이는데, 앞에서 다뤘던 사건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기 때문에 친숙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반복을 통한 학습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모호한 상황과 추상적인 개념들도 적절한 사례와 쉽고 명료한 표현으로 거부감없이 어렵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안드레아처럼
혼자 힘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요?
 
누군가가 어떤 이야기를 믿어 달라고 하면,
"예."라고 말할 거예요? "아니요."라고 말할 거예요?
만약 여섯 가지 과학의 법칙을 잘 지켰다면,
"예."든 "아니요."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분명하지도 않고 과학의 여섯 가지 법칙을 따르지도 않았다면,
좀 더 기다리는 게 좋아요.
"난 잘 몰라." 이렇게 답하는 게 좋겠지요.
 
만약 증거가 없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p.83
 
 
고수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단 한 마디 말로도 폐부를 찌르는 핵심을 전달할 수 있다.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저자의 글 역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료하고 곱씹을수록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유령 존재 여부처럼 이 세상에는 여섯 가지 법칙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독자인 아이들은 이런 경우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예'나 '아니오'를 맹목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저자는 책의 제목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는 참과 거짓이라는 결과보다 가능성을 수용하는 열린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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