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 세계적 건축가와 작은 시골 빵집주인이 나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건축 이야기 더숲 건축 시리즈
나카무라 요시후미.진 도모노리 지음, 황선종 옮김 / 더숲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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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는 직업이 아닌 사명을 가진 두 장인이 '빵집'을 짓는 과정에서 나눈 교감을 표지만큼이나 담백하고 아기자기하게 보여주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책을 여러 권 출간했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 씨는 어느 날 편지를 한 통 받게 된다. 프랑스 요리사였다가 빵 만드는 일에 매료되어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운 후 지금은 홋카이도 맛카리무라에서 '블랑제리 진'이라는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진 도모노리 씨로부터 온 편지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홋카이도 맛카리무라에서 사는 진 도모노리라고 합니다.
맛카리무라는 손바닥만 한 마을이며, 저는 이곳에서 아내와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조립식 패널로 만든 작은 집에서 빵집 '블랑제리 진'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빵집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장작가마를 설치해놓고 거기에서 빵을 굽고 있죠. 그런데 공방과 가마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 수시로 들락나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게다가매장도 작아 손님 서너 명만 들어와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지요. 요즘에는 이런 점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또한 여러 가지 문제도 생겨 이참에 새롭게 건물을 짓고 빵 가마도 큰 것으로 바꾸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중략-
저희는 주로 그냥 단순하게 구워서 내놓기만 하는 소박한 빵을 만들고 있어요. 별도로 마무리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 구워진 빵의 표정에 마음을 담아 만들고 있죠. 따라서 이와 같이 단순하고 간소하고, 그곳에서 일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공간을 꿈꾸고 있어요.
커다란 빵 가마를 설치할 수 있는 공방, 장작을 패는 방과 쌓아놓는 곳, 밝고 기분 좋은 지나치게 넓지 않은 매장,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생활공간이 있어야 해요. 거창하게 보이지 않고 겉으로 봐서는 가게라고 여겨지지 않는 평범한 건물이 저희 가족이 그리고 있는 빵집이에요.
 
 
-중략-
예전에는 빵을 가마에 넣을 때 십자가를 긋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가마 속의 빵이 부풀어오르고 노릇하게 구워지는 모양을 매우 신비스럽게 여겼죠.
우리도 가마 속에 넣고 난 뒤에 맛있게 구워지도록 손을 모아 빌고 있으니 기도하는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조용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공간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저희 가족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작은 빵집을 부탁드립니다." ---p.29~32
 
손글씨로 쓴 편지는 '삶'의 공간을 짓는 건축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결국'삶'을 굽는 그의 경건한 작업 공간을 짓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처음 의뢰를 시작으로 설계를 하면서 의견을 주고 받았던 편지와 팩스의 내용을 모아서 그 따뜻했지만 여러모로 긴박했던 과정을 엮은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가 생각했던 '건축'에 대한 견해와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단순히 공간 뿐 아니라 집을 짓고, 빵을 굽는 일에 대한 철학, 삶에 대한 생각들도 자연스럽게 주고 받게 되면서 건축주와 건축가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서로 정신적인 교감을 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예산도 넉넉하지 않은 시골의 한 빵가게 주인의 편지를 통해서 시작된 인연은 결국은 건축가가 빵가게 주인에게 기꺼이 절반의 비용을 대며 아름다운 서재를 선물하기에 이른다. 물론, 종종 예고없이 쳐 들어와 맛있는 빵과 음식을 대접받으며 별장으로 이용하려는 행복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그의 계획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선생님은 우리 가족을 위해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여기저기에 만들어주셨다. 최근에는 안락함에 '집착'하는 나카무라 요시후미 선생님에게 이런 이메일이 왔다.
"벽돌집을 개량한 서재에 야콥센의 가죽으로 된 계란의자를 놓아두면 어떨까요. 디자인, 품격, 분위기가 서재에 안성맞춤! 게다가 책을 읽기에도 딱 좋은 의자라서 도모노리 씨의 승낙을 기다리지 않고 주문해 두었어요. 이번 책 출판 기념 선물이에요."" ---p.203
 
 이전에도 이미 두 사람의 응수는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
 
"기본 설계가 끝났을 때 나는 진 도모노리 씨에게 설계 비용의 절반을 빵으로 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한결같이 식탐이 많은데 매일 점심을 직접 만들어 먹기 때문에 맛있는 빵이 정기적을 배달된다면 식사 메뉴가 풍부해져 모두 뛸 듯이 기뻐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진 도모노리 씨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설계 비용의 절반을 빵으로 지불해달라는 따뜻한 마음씨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럼, 선생님 말에 못이기는 척하며 빵으로 지불할게요. 이번 달부터 한 달에 두 번씩 블랑제리 진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선생님의 사무실이 없어질 때까지 빵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결국 매달 받게 된 빵 값이 설계비보다 더 나오게 될지 어떨지는 내 사무실의 존망에 달려 있게 된 셈이다."---p.6~7
 
 
소박하지만 혼신의 힘으로 빵을 굽는 진 도모노리씨와 소박한 공간에 역사와 철학을 최대한 살려내려고 수없이 설계도를 고치고, 옛 창고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나카무라 요미후리 씨가 함께 만들어 완성한 빵집은 서로의 신뢰 속에 만들어 낸 교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했던대로 되지 않아서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서로 믿고 화합하며 신명나게 일한 끝에 완성한 새 가마에서 처음 빵을 굽는 '첫 불 기념식'의 장면을 읽을 때는 나도 떨리면서 흥분되었고, 진 도모노리 씨의 엄숙한 분위기에 경건해지기도 했다. 이어지는 만찬에 나 역시 그 자리에 초대 받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아름다운 교감에 푹 빠져 들었다.
 

 
진 도모노리 씨의 네 살배기 아들의 '트리하우스'까지 완성된 빵집은 소박하지만 제대로 맛을 낸 그의 빵 만큼이나 평화롭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그런 따뜻하고 평온한 공간에게 살게 된 진 도모노리 씨의 가족이 부럽지 그지 없지만 사실 더 부러운 것은 빵집보다 더 큰 '선물'를 얻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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