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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 어린이를 위한 회의 철학 안내서
댄 바커 지음, 이윤 옮김, 송광용 감수 / 지식공간 / 2013년 8월
평점 :
게임, 스마트폰, TV 등등...우리 아이들은 점점 더 눈앞에 펼쳐지는 화려한 영상과 편리한 기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굳이 외우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정보들이 줄줄이 튀어나오고, 심심하면 손가락만 까딱해가면서 할 수 있는 게임이 즐비한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이렇게 정보와 오락이 넘쳐 나는 시대에 과연 우리 아이들은 하루에 얼마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사고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직업상 아이들과 자주 만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면 한결같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있다. 바로 '몰라요~'다. 그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대다수의 아이들은 이 '몰라요'라는 답을 달고 산다.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 귀찮음 뒤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필요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런 영혼없는 대답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런지 모른다. 몇 년 전부터 급속하게 증가하는 빈도수를 보면서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생각의 의욕이 없어진 아이들은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사고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까?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먹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아무리 주위에서 얘기해도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결코 달라지지 않기에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이 책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는 이러한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준 책이다. 이 책은 왜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를 보여주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지 알려준다.
그런데 어렵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과연 이러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그런 염려를 고려해서인지 이 책은 90페이지 정도로 읽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로 얇다. 일단 마음의 부담을 줄였더라도 내용이 어려우면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동요를 200곡 이상 작곡했다는 저자는 그만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줄 아는 것 작가이다.
먼저 구체적인 사고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전에 아이들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유령 사건'의 상황을 만들어 흥미를 유발한다. 그리고 이 사건의 진실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면서 사고하는 방법과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도록 해준다. 흥미와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이 부분은 만화와 간단한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독자인 아이들에 성향을 고려한 듯 하다.
이야기를 통해서 합리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다음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과학적인 사고의 여섯 가지 법칙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여기서도 저자의 고민이 흔적이 엿보이는데, 앞에서 다뤘던 사건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기 때문에 친숙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반복을 통한 학습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모호한 상황과 추상적인 개념들도 적절한 사례와 쉽고 명료한 표현으로 거부감없이 어렵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안드레아처럼
혼자 힘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요?
누군가가 어떤 이야기를 믿어 달라고 하면,
"예."라고 말할 거예요? "아니요."라고 말할 거예요?
만약 여섯 가지 과학의 법칙을 잘 지켰다면,
"예."든 "아니요."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분명하지도 않고 과학의 여섯 가지 법칙을 따르지도 않았다면,
좀 더 기다리는 게 좋아요.
"난 잘 몰라." 이렇게 답하는 게 좋겠지요.
만약 증거가 없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p.83
고수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단 한 마디 말로도 폐부를 찌르는 핵심을 전달할 수 있다.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저자의 글 역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료하고 곱씹을수록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유령 존재 여부처럼 이 세상에는 여섯 가지 법칙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독자인 아이들은 이런 경우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시 '예'나 '아니오'를 맹목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저자는 책의 제목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는 참과 거짓이라는 결과보다 가능성을 수용하는 열린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