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서둘러라 - 샘터와 함께하는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재순 지음 / 샘터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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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작된 인연이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창시절, 월간 <샘터>는 매달 받아보는 즐거움과 설레임을 느끼게 하면서 커다란 위안을 주었던 잡지였었다. 당시 샘터를 처음 받으면 가장 먼저 읽었던 것이 바로 뒤표지에 깨알같은 글자로 빼곡히 쓰여 있던 뒤표지글이었다.
때론 예리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시각으로 시대를 읽어내는 발행인의 글은 뒤표지를 광고로 채운 대부분의 다른 잡지들과 샘터를 차별화시켜주는 요소가 되기도 했으며, 부담없는 가격을 묵직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기도 했다.
 
한 20년 간을 잊고 살다 최근부터 샘터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도 간간이 마음의 위안이 필요할 때 전철 가판대에서 사서 보긴 했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강산이 변해도 몇 번 변했을 시간임에도 샘터의 뒷표지글은 여전히 언제나 그 자리에서 시대를 보는 창으로 그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변함이 없어 준 것이, 여전히 건재한 것이 심히 오랜만에 찾은 독자는 반갑고 또 고마웠었다.
 
 
[천천히 서둘러라]-샘터와 함께하는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샘터>의 뒷표지글을 모은 책이다. <샘터>가 쌓아 올린 세월의 두께는 뒤표지글 모음만 벌써 네 번째의 출간이라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샘터>를 받아볼 때마다 습관적으로 뒤표지부터 읽는 습관은 나만의 방법이 아니었나 보다 . 추천사를 쓰신 이해인 수녀님이 그러하셨고, 이원영 중앙대 교수님이 그러셨다고 한다. 아니, 아마도 <샘터>를 즐겨 읽는 많은 독자가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한 권의 책을 목표로 일정한 시간을 두고, 주제를 잡아서 쓰여진 책이 아니라, 한 달 한 달을 뚜벅이 걸음으로 그야말로 '천천히 서둘러서' 걸어온 발자국을 묶은 책이기에 읽는 맛이 좀 색다르다.
다양한 재료가 각기 다른 맛을 내면서도 한 가지의 맛으로 모아지는 샐러드와 같은 느낌이랄까.
또한, 현재에서 과거를 회고하며 쓴 글이 아니라 그 과거의 시간 속에서 쓰여진 글이기에 읽을 때 역시 그 때 그 순간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워낙 주제와 소재도 다양했지만, 그때 그때 떠오른 사회적인 이슈도 외면하지 않고 다룬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만큼 이 책을 읽다 보면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진리를 만날 수도 있고, 세월이 벗겨 버린 진실의 모습과도 마주하게 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시간의 흐름으로 달라진 현재의 모습을 글의 끝에 추신으로 달아 놓음으로써 단지 오래된 옛이야기를 다시 꺼내보는 과거형에 놓지 않고, 현재의 관점으로 다시 끌어당겨 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전 나누었던 담론임에도 온고지신의 진행형으로, 지금 여기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2007년 세상을 떠나신 금아 피천득 선생님을 기리는 글에 말미에는 이후에 소식을 들려줌으로 다시금 그를 기리고 추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97세였습니다. 나신 날이 1910년 5월 29일이었고, 돌아가시고 장례한 날도 2007년 같은 날이었습니다. 우연이라면 우연일지 모르지만, 사람이 나고 죽는 날의 조화(化)는 신만의 뜻이겠습니다.
선생님은 5월을 무척이나 찬미하셨습니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라고 읊으셨지요.
-중략-
선생님을 여의는 영결식은 피아니스트 신수정 님의 애수가 감도는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시종 엄숙하게 치러졌습니다. 선생님은 "사랑하고 떠난 이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라고 하셨습니다.
(2007. 7)
 
-5월에 태어나 5월에 떠나고 마침내 5월이 된 금아 피천득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되었습니다. 2008년 6월 '금아 피천득 기념관'이 서울 롯데월드 내에 문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이 생전에 쓰시던 거실과 서재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기념관에는 아직도 선생님을 기억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p.179~180
 
그런가 하면 2011년 대규모 지진을 겪으면서도 분열되지 않고 질서를 지키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일본인들의 성숙한 자세에 대해 칭찬과 건승을 기원했던 저자가 최근의 역으로 가는 일본의 행보에 대해 실망하고 비판하며 일침을 가하는 글을 덧붙이기도 했다.
 
 
"각국의 취재진이 제일 먼저 놀란 시선으로 보았던 것은 이 엄청난 재난 속에서도 질서가 유지되고, 절도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호물자를 기다리는 줄이 아무리 길어도 새치기 하는 이를 볼 수 없었고, 앞다투어 제 몫을 차지하려고 큰소리를 내는 이도 없었다. 번화가의 상점에는 손닿는 곳에 상품들이 즐비한데도 누구 하나 훔치려고 하지 않았다. 재해에 편승하여 물건 값을 올리려는 상인도 볼 수 없었다.
-중략-
일본은 지금 엄청난 국난(國難)을 독재가 아닌 자유와 민주주의 틀 속에서 처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위기관리 모습이다. 위기에 처할 때면 전체주의나 군부독재가 고개를 들던 일본이 아니었던가. 일본은 이제 성숙한 민주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의 엄청난 재해는 일본인들이 긍지와 자신감을 되새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리라.
"국가나 문명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멸망하지 않는다. 멸망하는 것은 그러한 도전(challenge)에 응전(response)하는 힘을 상실할 때이다."
아널드 J.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의 불후의 명언을 되새기면서 일본인들의 건승을 빈다.
(2011. 5)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2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일본은 급속히 우경화로 기울었고, 주변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또한 원전 오염수 유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아 동북아 지역의 환경적 위기를 확산시켰습니다. 최근 2020년 하계 올림픽 유치로 경제 부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이제라도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성숙한 민주 정치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 p.186~187
 
 
성숙했는 줄 알았는데 2년이 흐른 지금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일본의 태도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지는데 이러한 시간 흐름의 변화를 이렇게 한 공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 중의 하나일 것이다.
 
워낙 박식한 저자는 그러나 결코 어렵지 않게 글을 쓰기 때문에 깊은 공감을 끌어 낸다. 많은 고민과 다독, 그리고 삶의 연륜에서 나오는 통찰로 전하는 메시지는 세대를 불문한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샘터> 500호에 부쳐 소개한 <샘터>가 그동안 지켜온 글귀는 <샘터>의 지향점이자 동시에 <샘터>와 함께 걸어 온 그의 철학이기도 했으리라.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
-거짓 없이 인생을 걸어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의 벗.
-훈훈한 마음, 빙그레 웃는 모습.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한 눈 뜨고 꿈꾸는 사람.
 
"어떤 사람에게든 보다 숭고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좋은 날, 좋은 시간이 있는 법. 최대의 사건은 가장 소란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가장 고요한 시간에 일어난다."
샘터가족이여! 여러분이 믿는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시라. 자기 자신의 스승이 되고, 자기 자신을 새기는 조각가가 되시라. (2011.11) --- p.20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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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중학생을 위한 멘사 수학 천재 멘사 어린이 시리즈
존 브렘너 지음, 권태은 옮김 / 바이킹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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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학은 영원한 학생과 학부모의 골치거리가 아닐까 싶다. 올 해부터 교과서가 다시 개정되기 시작했고 여러 가지 핵심 개정 내용 중에서도 단연 화두로 떠오른 것은 바로 '스토리텔링 수학'일 것이다. 스토리로 원리 위주의 개념을 배우다 보면 단순히 암기하는 것보다 쉽게 배울 수 있고, 실생활에서의 적용과 응용이 더 쉽다는 것이 개편의 주요 골자다.
 
원리 위주의 교육 과정으로 돌아선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부딪치고, 도전해서 깨나갈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각자의 역량대로 스스로 탐구하며 깨닫기까지 기다려주기에 우리네 학교는 배울 것도, 외울 것도 너무나 많다. 하다 못해 유치원 7세반만 되어도 입학 후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암기 위주, 훈련 위주로 돌아서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몸으로 익힐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빨리 원리를 습득해서 수많은 계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 우리 수학의 목표처럼 보인다. 그런 현실에서 '스토리'를 가미한들 '스토리'를 다시 외워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학년이 올라가면서 수학을 싫어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대한민국의 학부모다. 수학을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수학, 정말 싫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수학이라는 과목을 즐겼으면 하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들은 점점 수학을 버거워하기 시작한다.
 
[예비 중학생을 위한 멘사 수학 천재]을 읽게 된 이유도 둘째 만큼은 수학을 계속 즐겨나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수학을 애초에 좋아하지 않은 큰 아이가 중학교에 가서도 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은 예상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수학은 가장 비중 높은 학과목 중에 하나인 것을. 애써 힘들여 공부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 반면, 둘째는 둘쭉날쭉인 점수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수학이 좋다라고 얘기한다. 내가 볼 때도 수감각면에서는 둘째가 조금 더 발달되어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일상적인 수계산을 즐기는 것으로 보아 분명 수학이 이 아이에게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과목이 될 것 같다는 희망이 느껴졌다.
 
문제는...그러한 마음이 지속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였다.
이 책 [예비 중학생을 위한 멘사 수학 천재]에서 나는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그런데 의외로 빨리 답을 찾았다.
 
"해답을 빨리 찾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 적절한 수학 공식을 이용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개념을 이해하면 뒤에 나오는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 수 있습니다. 보자마자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부터 긴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까지 단계별로 풀어 보세요. 그래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다면 현재 학습 수준에 맞는 문제까지만 풀고 나머지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풀어도 됩니다."
---p.9 문제를 풀기 전에 中
 
한 문제를 풀어도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풀어내는 것.
답을 맞추기 보다 과정을 즐길 줄 아는 것.
단계별로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나가면서 성취감을 맛보는 것.
몰라도 상관 없고, 나중에 풀어도 괜찮은 것.
 
문제가 생기면 풀어 내려는 본능이 있는 인간은 스스로 퍼즐을 만들어 풀기를 즐겼다. 그 본능은 답을 맞춰야 하고, 빨리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교육 방식에 의해서 질려 버려 나중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큰 아이도 이 책을 보자마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머리가 아프다면서도 중독된 것처럼 이리저리 고민을 하면서 답을 찾아내려 애쓴다. 숙제도 아니고, 시험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호기심을 자극해가면서 천천히 스몰 스텝이어도 상관없이 스스로 방법을 터득하며 길을 찾아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수학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한 번 그런 근력이 생겼다면 그 매력을 못 잊은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더 어려운 문제, 더 까다롭고 심화된 문제를 자연스럽게 찾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수학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이 책에 실린 문제들은 영국 멘사의 핵심 멤버인 존 브렘너가 스스로 고안한 문제들이라고 한다. 책의 구성은 우선 자신감을 심어 줄 아주 쉬운 단계의 연습문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레벨 1부터 레벨 5까지 비슷한 유형이지만 점점 난이도를 높여가는 방법과 레벨에 맞는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이도를 높여나가는 방법의 예로는,
 

 
 
 
 
직사각형 안의 숫자를 선이나 도형으로 나누어 숫자의 합이 제시된 수가 되도록 만드는 문제 유형이다. 연습문제부터 시작하면 총 6번을 하는데 처음에는 이 정도 쯤이야로 시작하는데 단계가 높아가면 조금씩 고민을 하기 시작하게 되고, '가만 있어봐...' 하면서 문제 속으로 점점 몰입하게 된다.
 
위의 문제가 쉽다면 좀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답은... 마우스로 화살표 옆을 긁어보시길 -> 9876과 5432
 
또한, 사람들이 가장 풀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문제 유형 중의 하나가 '가로세로 퍼즐'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서는 이 퍼즐을 수학으로 만나볼 수 있다. 역시, 난이도는 레벨에 따라 점점 높아진다.
 
 
때로는 반전이 있는 문제들도 볼 수 있다. 레벨 3의 문제이고, 분수와 소수에 관련된 문제이다.
 
 
정답은 아래를 마우스로 긁어보시길....
-> 6.25분 (또는 6분 15초)
    최고 속도로 비행 가능한 시간을 구할 때 전체 연료의 양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1분에 연료의 16%를 쓰므로 연료를 전부다 쓰는 시간이 언제인지 계산하기 위해서는
    100을 16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문제를 살펴보면 이 책이 왜 하필 예비 중학생을 위한 책인지 궁금할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문제들은 이차방정식, 순환소수, 제곱근, 피타고라스 정의, 원주율 같이 중학교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들이다. 원리를 먼저 깨닫게 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며 응용력을 확장시켜 줌으로써 중학교 수학의 내용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원리를 전달하는 방식도 깔끔하고 명료해서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효과도 있다. 중학교 수학을 미리 정리해보고, 흥미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중학교 수학을 준비하는데 충분한 효과가 있을 듯 싶다.
 
 
뿐만 아니라, 공부를 하는 다양한 방법들도 제시해주고 있어 학습 방법을 배워 나가는 데도 유용하다.
 
 
수학을 놀이처럼 즐기자는 취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탐구활동' 부분이다. 레벨 5 다음에 위치해 있는데, 여러 명이 수학과 관련된 활동을 즐기다 보면 어느 새 수학이 친근한 놀이가 될 듯 싶다.
흡사 보드 게임을 즐기는 것과 같이 규칙에 따른 여러 활동이 제시되어 있는데 숫자로 이렇게 다양한 게임을 즐겨볼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이 든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한 번 같이 즐겨봐야 겠다.
 

 
처음에는 어떤 책인지 살펴보기 위해서 책만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풀어보고 싶은 문제들이 늘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종이와 연필을 준비하고는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케네디대통령이 암살된 날이 무슨 요일이었는지를 계산해보면서 내가 태어난 날은 무슨 요일이었는 지도 더불어 계산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활동들을 즐겁게 하다 보면 수학적인 감각은 저절로 길러질 듯 싶다. 이것이 '공부'와 '놀이'의 근원적인 차이이며, 노력하는 자'가 '즐기는 자'를 따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놀이와 학습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놀이에는 어떤 목적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재미가 있으면 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 놀이입니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머리를 쓸 때,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보면서 배운 것은 시험지를 붙들고 순위 경쟁에 집중하면서 외운 것보다 각인 효과가 훨씬 더 큽니다. 재미로 눈이 반짝이는 아이의 두뇌는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지하며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별도의 노력 없이 암기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반면 인상을 쓰며 과제를 해 나가는 아이들은 과제가 끝남과 동시에 공부한 내용으로부터 도망치기라도 하듯 빨리 잊어버리고 멀어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아이들에게만 일어날까요? 성인들도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즐겁고 신나는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뇌는 창의력을 발휘하고, 그때 일어난 많은 사건들을 기억하며, 그 속에 담겨진 여러 가지 상징과 의미에 대해 예리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p.5 추천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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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카타르
지병림 지음 / 북치는마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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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이 책에 대한 관심이 간 것은 순전히 '카타르'라는 나라 때문이었다.
요즘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수많은 여행기들의 속에서 '카타르'는 분명 범상치 않은 곳이었다.
거기에 '매혹'이라는 제목까지 더해져 '카타르'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한층 높아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여행기'는 아니였다.
이 책은 저자가 단지 여행의 코스로 잠시 들른 '카타르'를 이방인의 눈으로 보고 쓴 것이 아니라,
실제 7년간이나 그곳에서 거주하며 카타르의 속살을 파고 들어 느낀
'카타르'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며 담아 낸 삶이 기록이었다.
 
 
카타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펼쳐 든 순간...
처음에는 카타르라는 공간에서 저자가 느낀 개인적인 아픔과 일상의 편린들을 보면서
적잖이 당황했다. 독자가 카타르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집에 사는 룸메이트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 가면 한 발 떨어진 건조한 모습의 카타르도 나오지만
시작부터 펼쳐지는 끈적인 카타르인들의 삶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가 매력적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몇 번이고 표지를 넘겨다 봤다.
 
 
게다가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평소에 소설을 즐겨읽지 않는다.
그 모습이나 배경 등을 상상해가며 읽어야 하고, 압축적이면서도 상징적인 표현들을 일일이
해석해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계속 되뇌이며 읽는 것이 힘들어서
직관적이고 직설으로 표현된 형식의 책을 즐겨 읽는다.
두려움이 느껴지면 뛰어 넘어야 하는데...바쁘다는 핑계로 자꾸 책의 선택 반경에서
소설 장르는 자꾸 미뤄 놓게 된다.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한 저자의 글은 분명 에세이임에도 문체는 소설처럼 쓰고 있다.
소설 특유의 세밀한 묘사는 하나하나 시선을 따라가며 상상을 해야 해서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상징과 비유로 서술된 문장은 의미를 곱씹으며 해석해내느라 진도가 자꾸 더뎌만 진다.
읽다가 돌아가서 다시 읽고, 읽다가 돌아가서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분명 에세이를 읽었음에도 마치 소설 한 권을 읽은 것과 같은 감성과 여운이 느껴진다.
내 동작 하나 하나도 자꾸 세밀하게 의식이 되는 것이 이 책을 읽은 후부터 생긴 증상이다.
 
 
잠시 들렀다 겉모습만 보고 떠나는 여행자와 달리 저자는 카타르의 항공사에서 스튜어디스로 7년 째 근무하고 있는 그 곳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지인이다. 그녀에게 카타르는 이제 낯선 곳이 아니다.
몇 꺼풀의 껍데기를 벗겨낸 카타르의 속살마저도 보듬고 껴안을 수 있는 있는
제 2의 영혼의 메카가 되었다.
언어, 문화, 생김새, 종교 모든 것이 다른 황량한 사막과 같은 그 곳에서 7년 간을 홀로 버텨내며
그녀는 이제 카타르와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는 자유를 발견해낸 듯 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목에서 표현된 카타르 '매혹'의 실제가 아닐까 한다.
 
"카타르와 한국 사이의 머나먼 여정은 언제나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가 자유를 주었다가......천국을 선사했다가 죄책감 가득한 지옥으로 떨어뜨기리를 반복한다."---p.160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도 나의 현실인데, 이놈의 현실은 신기하게도 서울에서의 답답한 현실을 꿈처럼 그립게 만드느 힘을 갖고 있다. 그 안에서 나를 괴롭혔던 쓸쓸했던 인생들과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삶의 결핍이나 욕구들을 뜨겁게 안아주고 싶다." ---p.211
 
독자는 이 책을 모두 읽고 나서도 카타르를 매혹적으로 느끼기 쉽지 않다.
공간을 뛰어 넘는 생생한 묘사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나오면서 느끼게 된 것은
결국 카타르도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
지구상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사람의 삶의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의 근본적인 모습은 어딜가나 똑같음을
그 누런 황량한 모래 바람은 가르쳐 주고 있는 듯 하다.
 
 
여행에세이를 좋아하는 나의 심리도 어쩌면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곳을 벗어나면
여기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믿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풍경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익숙해지면 그 역시 곧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그래서 다름을 찾으러 갔다가 같음을 확인하고 오는 것이 어쩌면 여행의 본질일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낯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쫓고 있던 나에게 일침을 가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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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실의 요즘 요리 - 국민 요리 백과 365
문성실 지음 / 상상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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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간단해, 근데 맛있어!"

 
[문성실의 요즘요리] 라는 책의 제목보다 눈에 더 먼저 들어온 것은 부제처럼 적혀 있는 바로 이 문구였다. 결혼한 지 15년차 주부이지만 직장 생활을 10년 넘게 한 덕분에 '요리'는 내게 있어 아직도 풀어야 할 무거운 숙제다. 요리라면 아직도 한 끼를 때우는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요즘은 그나마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너도나도 추천하는 레시피가 줄줄이 나오고, 적당한 것을 선택하면 적어도 비슷하게라도 맛은 나오니 요리책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내 손 안의 레시피도 단점이 있었다. 먼저 검색된 순으로 적당한 것을 선택하다 보니 할 때마다 레시피가 달라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즐겨찾기라도 해놓지 않으면 어떤 것으로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나 한참을 뒤지기 일쑤이다. 또 한 가지 불편한 점은....같은 요리임에도 재료의 구성과 양념의 양이 너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맛은 있겠지만 어떤 맛인지 가늠할 수가 없어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럴 때면 아날로그가 더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러한 나의 혼란을 해결해 줄 요리책을 물색하던 중에 만나게 된 책이 바로 [문성실의 요즘요리]였다. 일반적인 단행본 사이즈보다 약간 큰 담백한 크기이 책 사이즈에 일반적인 반찬부터 국물 요리, 간식은 물론 별미 요리와 베이킹까지 종류도 다양한 요리가 묵직한 두께로 제공된다. 손님들을 접대해야 할 특별한 상차림도 별책으로 제공된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웬만한 요리책으로도 만날 수 있으니 이 책 만의 특징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특별하게 느끼며, 저자의 지인처럼 주방에 두고 온갖 때를 묻혀가면서 보리라고 마음먹은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 첫 번째 이유!
무엇보다도 재료가 간단하다. 일반적인 요리책을 봤을 때는 늘 한 두 개 정도는 구할 수가 없거나 거창해서 빼고 해야 하는 가슴 아픈 경험이 종종 있다. 생략해도 큰 차이는 없으나 있으면 좋을 이 재료들 때문에 요리를 완성하고도 뭔가 빠진 것 같은 찜찜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재료가 너무나 심플하다. 냉장고를 털어서 바로 요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고, 슬리퍼 끌고 슈퍼로 뛰어가서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적인 재료들로 요리를 한다. 오히려 집에 있는 재료를 추가로 넣고 싶을 충동이 느껴질 정도로 재료 준비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줄여 준다. 마치 할머니들이 있는 재료로 뚝딱 맛난 반찬을 만들어주시는 것처럼. 어느 페이지를 펴도 부담없이 요리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 두 번째 이유!
재료가 간단한 것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요리 과정도 간단하다. 이 책의 마음을 끌었던 부제 그대로 정말 과정이 간단한 요리들이 즐비하다. 레시피의 과정은 보통 4단계이고, 길어야 6단계를 넘지 않는다. 준비가 바쁜 저녁 시간 급하게 한 두 가지만 해서 올려도 근사한 저녁 식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정도쯤이야!'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 셋 번째 이유!
같은 듯하면서도 약간 다른 새로운 맛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블로거로서 저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일상적으로 자주 해먹는 요리는 늘 똑같은 맛에 식상할 수 있다. 이 때 약간의 변화와 새로운 재료를 살짝 추가하면 맛과 영양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식감까지 느끼게 해줄 수 있다. 문제는 맛의 조화와 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것인데 저자의 타고난 감각과 수많은 시도로 얻은 레시피일 듯 싶어 그냥 배우기 미안해진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 네 번째 이유!
계량컵, 계량스푼은 던져 버려도 된다. 계량스푼으로 조리하는 주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적당량, 갖은 양념...대부분 감으로 요리를 할 터인데, 이 책은 그와 맥락을 같이하며 계량컵, 계량스푼 대신 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일반적인 스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분량을 적어놓은 것이다. 사실 레시피를 보면서 가장 유용했기에, 첫 번째 이유로도 꼽고 싶은 부분이었다. 컵 역시 종이컵 기준이라 양을 재는 데에 부담이 없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 다섯 번째 이유!
고수와 초보의 차이는 굵직한 과정보다는 작고 섬세한 부분에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리는 과학이라고 했던가. 순서가 조금 바뀌어도, 과정을 조금 건너뛰어도 맛과 색, 모양이 달라지기 일쑤이다. 고수는 고사하고, 이런 사소한 과정을 간과함으로써 모처럼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요리가 실패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저자는 마치 친정어머니가 옆에서 조언을 해주듯이 과정 중에 꼼꼼하게 말풍선을 꼼꼼히 달아 놓아 실수하지 않도록 해주고 있다. 일단 저자의 말대로 하면 결정적인 실패는 하지 않을 듯 싶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 마지막 이유!
요즘 마트의 양념 코너 진열대에 가보면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요리 양념들이 즐비하다. 외국 요리에 사용하는 양념들도 많은데 이러한 다국적인 음식 재료들을 도대체 어디에 써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저자는 이러한 각종 양념과 소스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장점이 있는 지 꼼꼼히 소개해준다. 이제 마트에 가서 하게 되는 고민 하나가 줄어 들었다.  
 
 
이 책은 요리에 한껏 게으른 나를 조금은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었다. 예전 같으면, 몸도 마음도 피곤한 날이면 우선 사서 먹고 보자할 텐데, 지금은 이 책을 먼저 펼쳐 들고 지금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오븐까지 사서 들고 온 남편은 무얼 해 먹을 지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나만 조금 더 부지런해진 것이 아닌가 보다. 주방에서 책을 펴 놓고 열심히 뚝딱이더니 요리를 해서 내놓는다. 연발 "맛있어!"를 외치는 아이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보면서 다음에는 또 어떤 것을 만들어볼까 책장을 넘겨 이리저리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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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월간샘터 2013년 12월호 월간 샘터
샘터 편집부 / 샘터사 / 201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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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를 만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시간'이다. 매월 발행되는 만큼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새로운 호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그 '시간'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 시간의 흐름이 가장 두드러지게 다가오는 달은 아무래도 한 해의 끝을 장식하게 되는 '12월호'가 아닐까 싶다.
 
[월간 샘터 12월호]를 받아보았을 때 역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시간'이었다.
'벌써 일 년이 다 같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일 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잡지를 손에 들고 표지는 넘겨보지도 못하고, 내 지나간 일 년을 한참동안 되뇌어 보았다. 어느 해나 마찬가지로 후회되는 일도, 스스로 대견했던 일도, 섬찟할 만큼 아찔했던 순간도, 두근두근 설렜던 일도 있었던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래도 가장 적절하게 어울리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그렇게 시간에 대한 상념에 젖어 있다가 비로소 표지를 넘기고 죽~ 살펴보았다.
몇 번이고 다시 돌아 보아도 자꾸 시선이 머무는 글, 아니 사진이 있다. 커다란 손목시계가 꽉 찬 사진. 이어진 본문으로 눈이 따라간다.
 
 
이 글은 <나희덕의 산책> 코너로 사진의 시계는 필자 자신이 차고 다니는 시계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에 나오는 문장이 새겨진 이 시계에는,
 
"오, 시간이여. 이 엉킨 매듭을 풀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다. 이 매듭을 푸는 것이 내게는 너무 어렵구나."
 
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시계 바늘과 함께 이 문장이 새겨져 있는 판도 쉴새 없이 돌아간다고 한다. 재미있지만 의미있는 시계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기쁜 일도, 아무리 힘든 일도 결국은 '이또한 곧 지나가리라' 라고 다윗왕의 반지에 새긴 솔로몬의 조언처럼....시간의 힘은 놀랍고 위대하다.
유난히 힘든 일이 많았던 올 해, 그 어느 때보다 그 시간이 풀어주기를 바라는 매듭이 많았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일들도 있지만 그래도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그 힘을 발휘해가고 있는 듯 하다. 
필자가 말하는 '자신의 능력보다 시간의 너그러움에 좀 더 기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공감되는 한 해였던 것 같다. 시간은 해결도 해주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도 조금씩 가져다 주나 보다.
 
'써니' '건축학개론' '신사의 품격''응답하라 1997''응답하라 1994' 까지 지지난해부터 우리는 지나간 추억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에 대한 향수일까? 요즘 '응사'로 전국이 떠들썩하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1994년 즈음은 아직도 딱지가 떨어지지 않은 생살같은 추억의 한가운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마음은 캠퍼스를 걷고 있는데 벌써 20년을 훌쩍 넘어 이제는 추억으로 회고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고통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 시절의 추억을 아직은 즐기고 싶지 않다.
[샘터 12월호]에는 송년특집으로 <한 때 우리를 웃음 짓게 했던 그 시절 유행품>을 다루고 있다. 1990년대를 시작으로 80, 70년대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유행품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 시절을 고스란히 겪어온 나는 유행품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나의 지난 시절과 오버랩이 된다. '마이마이'가 그랬고, TV 위를 장식하고 있었던 '못난이삼형제'가 그랬다. 88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를 볼 때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때문에 한 참을 응시하고 있어야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비례해 좋든 나쁘든 곱씹을 추억도 많아진다. 이것도 시간이 가져다 주는 선물일 것이다. 
 
 
이번 달 진짜 <특집>의 주제 역시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
살면서 어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으랴. 역시나 기쁜 순간보다는 다를 아프고 힘들고 슬픈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교차점을 꼽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 전의 그 순간. 그러나 '인명은 제천'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그 순간을 바꾸어도 예상치 못한 일들로 결과는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것은 하늘만이 아시겠지. 그럼에도 그 순간을 떠올리며 끝내 막을 수 없었던 아쉬움에 목이 메인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사랑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슬픔을 견뎌내며 우리는 오늘도 조금 더 성숙해진다.
 
 
이번 호에는 일 년의 마지막 달이라서 그런 지 연재가 종료되는 글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최근 호부터 보기 시작한 나로서는 짧은 아쉬움을 달래야 하지만 다음 호부터는 또 어떤 주제의 글들이 시작될까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다.
 
 
숲에서 배운 지혜와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뤘던 <여우숲 일기>도 이번 호를 끝으로 마지막을 고했다. 고요하고 스산한 겨울 숲의 정경과 그 적막함 사이로 필자는 숲에서 보고 배운 삶의 자세를 전하는 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첫째, 삶은 지금에 머물러야 한다.
둘째, 모든 상황에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멈추지 말아야 한다."
 
예전엔 겨울을 싫어했었다. 어깨가 뻐근하도록 움츠러들어야 하는 겨울은 빨리 가버렸으면 하는 계절이었다. 가을이 싫어던 이유도 다음에 겨울이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다. 아니, 그저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끝이 보이고,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사실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겨울은 겨울대로, 봄은 봄대로 각기 다른 계절의 맛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매서운 겨울이 있어, 따뜻한 봄이 더욱 반가울 수 있다. 그저 지금 이 '추위'를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할 일이라는 것을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자연 앞에서 사람은 단순해지고, 겸손해지는 가보다. 필자 역시 자연이 알려준 이 지혜를 거듭 강조하며 마무리한다.
 
"그러니 다가오는 겨울을 밀어내지 말자. 겨울 또한 내 삶을 키우는 시간이며, 길흉은 언제나 섞이고 교차하며 다가오고 멀어지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 너머에는 햇볕 따스해지는 시간이 반드시 있다. 그저 담담하게 마주하고 더 많은 순간을 기뻐하며 살아가자."
 
헤어짐이 두드러진 이번 호 역시 아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인연을 통한 성숙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새로운 만남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맛깔스러우면서도 솔직한 양인자님의 글과 황당한 질문에서도 인생의 촌철살인의 깨달음을 끌어내시는 법륜 스님의 글은 아직 헤어질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살짝 반가운 마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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