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카타르
지병림 지음 / 북치는마을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에 대한 관심이 간 것은 순전히 '카타르'라는 나라 때문이었다.
요즘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수많은 여행기들의 속에서 '카타르'는 분명 범상치 않은 곳이었다.
거기에 '매혹'이라는 제목까지 더해져 '카타르'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한층 높아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여행기'는 아니였다.
이 책은 저자가 단지 여행의 코스로 잠시 들른 '카타르'를 이방인의 눈으로 보고 쓴 것이 아니라,
실제 7년간이나 그곳에서 거주하며 카타르의 속살을 파고 들어 느낀
'카타르'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며 담아 낸 삶이 기록이었다.
 
 
카타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펼쳐 든 순간...
처음에는 카타르라는 공간에서 저자가 느낀 개인적인 아픔과 일상의 편린들을 보면서
적잖이 당황했다. 독자가 카타르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집에 사는 룸메이트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 가면 한 발 떨어진 건조한 모습의 카타르도 나오지만
시작부터 펼쳐지는 끈적인 카타르인들의 삶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가 매력적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몇 번이고 표지를 넘겨다 봤다.
 
 
게다가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평소에 소설을 즐겨읽지 않는다.
그 모습이나 배경 등을 상상해가며 읽어야 하고, 압축적이면서도 상징적인 표현들을 일일이
해석해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계속 되뇌이며 읽는 것이 힘들어서
직관적이고 직설으로 표현된 형식의 책을 즐겨 읽는다.
두려움이 느껴지면 뛰어 넘어야 하는데...바쁘다는 핑계로 자꾸 책의 선택 반경에서
소설 장르는 자꾸 미뤄 놓게 된다.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한 저자의 글은 분명 에세이임에도 문체는 소설처럼 쓰고 있다.
소설 특유의 세밀한 묘사는 하나하나 시선을 따라가며 상상을 해야 해서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상징과 비유로 서술된 문장은 의미를 곱씹으며 해석해내느라 진도가 자꾸 더뎌만 진다.
읽다가 돌아가서 다시 읽고, 읽다가 돌아가서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분명 에세이를 읽었음에도 마치 소설 한 권을 읽은 것과 같은 감성과 여운이 느껴진다.
내 동작 하나 하나도 자꾸 세밀하게 의식이 되는 것이 이 책을 읽은 후부터 생긴 증상이다.
 
 
잠시 들렀다 겉모습만 보고 떠나는 여행자와 달리 저자는 카타르의 항공사에서 스튜어디스로 7년 째 근무하고 있는 그 곳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지인이다. 그녀에게 카타르는 이제 낯선 곳이 아니다.
몇 꺼풀의 껍데기를 벗겨낸 카타르의 속살마저도 보듬고 껴안을 수 있는 있는
제 2의 영혼의 메카가 되었다.
언어, 문화, 생김새, 종교 모든 것이 다른 황량한 사막과 같은 그 곳에서 7년 간을 홀로 버텨내며
그녀는 이제 카타르와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는 자유를 발견해낸 듯 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목에서 표현된 카타르 '매혹'의 실제가 아닐까 한다.
 
"카타르와 한국 사이의 머나먼 여정은 언제나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가 자유를 주었다가......천국을 선사했다가 죄책감 가득한 지옥으로 떨어뜨기리를 반복한다."---p.160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도 나의 현실인데, 이놈의 현실은 신기하게도 서울에서의 답답한 현실을 꿈처럼 그립게 만드느 힘을 갖고 있다. 그 안에서 나를 괴롭혔던 쓸쓸했던 인생들과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삶의 결핍이나 욕구들을 뜨겁게 안아주고 싶다." ---p.211
 
독자는 이 책을 모두 읽고 나서도 카타르를 매혹적으로 느끼기 쉽지 않다.
공간을 뛰어 넘는 생생한 묘사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나오면서 느끼게 된 것은
결국 카타르도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
지구상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사람의 삶의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의 근본적인 모습은 어딜가나 똑같음을
그 누런 황량한 모래 바람은 가르쳐 주고 있는 듯 하다.
 
 
여행에세이를 좋아하는 나의 심리도 어쩌면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곳을 벗어나면
여기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믿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풍경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익숙해지면 그 역시 곧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그래서 다름을 찾으러 갔다가 같음을 확인하고 오는 것이 어쩌면 여행의 본질일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낯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쫓고 있던 나에게 일침을 가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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