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놀이가 먼 훗날 역사가 된단다 - 한국 민속학의 개척자, 월산 임동권 샘터 솔방울 인물 14
남찬숙 지음, 최지은 그림 / 샘터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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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를 보면 우리의 전통 축제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직업상 교과서를 들여다 볼 일이 많아서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낯선 느낌이 들었다.
'은산 별신제', '강릉 단오제' ...
언제부터 이런 지역 축제가 교과서에 실렸을까? 학창 시절 이런 내용에 대해 배운 기억이 거의 없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 세계 무형 문화 유산으로 등재가 될 만큼 가치가 있는 이러한 전통 축제의 존재를 우리는 왜 접할 수 없었을까?
한동안 아이들의 교과서를 보면서 세월의 간극과는 상관없는 당혹스러움에 빠졌었다.
 
그것도 잠시 바쁜 일상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 [오늘 우리가 놀이가 먼 훗날 역사가 된단다] 책을 만나 읽으면서 다시금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고, 천시되고 잊혀져 가던 우리의 전통 축제를 세상으로 끌어내 그 가치를 알리는데 노력한 분이 바로 '월산 임동원'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렇게 우리 것을 지키고 보전하기 위해서 노력한 분이 계셨구나. 그분들 덕분에 잊혀져 가던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이제라도 우리 아이들이 알 수 있게 된 것이구나.'
 
우리 것임에도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새삼 부끄러웠고, 개인의 영화가 아닌 소명을 가지고 한 평생을 힘쓴 분들 덕분에 지금의 모습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고, 부끄럽지 않게 후손에게 우리의 전통을 이어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읽었다.
 
<샘터 솔방울 인물> 시리즈의 신간 소식은 언제나 기대를 갖게 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분일까?
이 시리즈의 독자 대상은 어린이와 어른이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찾아서 소개하는 만큼 어른이라고 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인물에 대한 풍부한 자료는 어린이책임에도 인물의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가능하도록 해준다.
이 시리즈의 책을 벌써 5권 째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늘 아이들 못지 않은 감동을 받는다.
오히려 시대적인 배경 지식의 폭이 더 넓기 때문에 아이들보다 더 감동을 받을 수 있을런 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 민속학의 개척자, 월산 임동권'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룬 [오늘 우리 놀이가 먼 훗날 역사가 된단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번 책은 내외적인 영향으로 인해 우리 것에 대한 가치가 천대받던 시절, 우연히 '민요'를 접하게 된 후 그 민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민속'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고, 평생 '우리 민속'을 발굴해서 알리고, 지켜내는 일에 앞장 섰던 '임동권' 선생님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임동권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 '민속학'이라는 강좌를 개설함으로써 '민속'을 학문의 영역에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가 하면, 보이지 않은 무형의 기술도 지키고 이어 나가야 하는 가치있는 자산임을 입증하며 '무형 문화재'를 지정하는데 앞장서기도 하였다. 지금은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무형 문화재'라는 개념을 맨 처음 주장한 사람이 바로 임동권 선생님인 것이다.
 
 
또한, '설날'의 혼란을 종결시키면서 우리의 명절을 현재와 같이 지켜낸 이도 그였으며, 교과서에서 낯설게 마주했던 '은산 별신제'와 '강릉 단오제'를 무형 문화재로 지켜낸 사람 역시 임동권 선생님이었다. 이렇게 원형 그대로를 보존할 수 있도록 서둘렀던 '은산 별신제'와 '강릉 단오제'는 '세계 무형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 받기에 이르렀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의 혼란이 격렬하던 시기, 수많은 반대를 무릎 쓰고 오직 한 가지 신념으로 우리의 것을 찾아서 지켜냈다. 소설가를 꿈꾸던 그에게 우연이 찾아 온 '민속학'이라는 사명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 들이며, 하늘이 허락한 시간까지 오직 한 길을 꿋꿋하게 걸어갔던 것이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수집한 자료를 기증하는 가하면, 자산을 털어
자신의 뒤따라 오는 후배와 제자들을 위한 '민속 학술상'을 제정하는 등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었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것'을 지킬 수 있었다.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것들을 비로소 '우리의 것'이라는 인식할 수 있었고, 그 아름다움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실은 임동권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땀방울이 모아져 이루어낸 것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느낄 수 있었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재촉하며 걸어갔던 임동권 선생님. 그러기에 그의 노력의 더욱 아름답고 고귀하게 느껴진다. 책을 덮은 후에도 한동안 긴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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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오무(五無五無) 착한 베이킹 - 밀가루, 달걀, 우유·버터, 백설탕, 땅콩 없이 만드는 도어북 녹색건강 시리즈 4
오카무라 요시코 지음, 박진희 옮김 / 도어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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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간식 거리는 늘 고민이다. 어느 때는 식사보다도 간식거리 준비에 더 고민을 하게 된다.
학기 중에는 점심을 학교에서 해결하고 오니 집에서는 아침, 저녁 두 번만 준비하면 되지만 간식은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들을 위해 수시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 크는 나이에 아이들은 돌아서기가 무섭게 배가 고프다며 먹을 거리를 찾는다. 사실 탄수화물보다는 다양한 영양소를 갖춘 간식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간식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어 늘 고민하게 된다. 특히 큰 아이는 시중에서 파는 과자를 먹으면 바로 반응이 나올 정도로 음식에 민감한 아토피를 앓았었기에 한정된 범위에서 간식거리를 챙기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쉽지가 않다.
 
요즘은 아이들이 조금 커서 손이 좀 덜가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좀 생겼고, 함께 무엇을 만드는 것도 수월해지고, 오히려 만들어 먹는 것을 더 좋아라 하기 때문에 함께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거의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아서 구입을 미뤄왔던 오븐도 최근에 구입해서 조금은 더 부지런해지기로 작정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 만들까? 라고 생각하니 또 고민에 빠진다.
큰 아이를 가졌을 때 베이킹을 배우러 다녔는데 과정이 복잡했던 기억이 새로워 막상 시도해보려니 생각처럼 선뜻 나서지지가 않는다. 또 식빵 하나를 구울 때도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던 설탕이나 버터의 양을 생각하니 주저하게도 된다.
그냥 사 먹을 걸 오븐을 괜히 샀나하는 후회가 들 즈음 바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밀가루, 달걀, 우유, 버터, 백설탕, 땅콩 없이 만드는 오무오무 착한 베이킹].
 
부제까지 포함하면 꽤 길고 긴 이 책의 제목을, 그럼에도 부제까지 꼭 다 써줘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재료 없이 일반 제과점에서 파는 빵들의 맛과 다름없이 만들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웰빙의 시대, 최근에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분으로 알려진 글루텐 프리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품을 집에서 만들 수 있다니 더없이 반가웠다.
책을 받고 살펴보니,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결코 과정이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 많이 출시되고 있는 간편 홈베이킹 제품들의 과정에 비해서도 결코 복잡하지 않고, 쉽고 간단하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특징이다.
 
 
책은 먼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식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지, 그것을 어떤 재료로 대체할 것인지에 대한 안내로 시작한다. 달걀, 우유, 땅콩, 밀 등이 대표적인 식품들이며, 이 재료들은 빵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요소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밀가루는 쌀가루로 백설탕는 사탕수수 설탕 등으로 대체해서 요리할 것임을 안내해준다.
 
 
곧바로 다음 장에는 이러한 대체 재료들의 특징과 주의 사항에 대해서 자세하게 안내해주며, 일반적이지 않은 이러한 재료들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웹사이트에 대한 소개도 해주고 있다. 다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구입하려고 몇 군데 들어가보니 다양한 재료들을 편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막 구입하려고 할 때 폭설이 오면서 배송이 늦어진다는 메시지를 보고 좀더 있다가 구입해야지 미뤄둔 것이 또 벌써 며칠이 흘렀다. 미리 구입한 후에 만들어보고 맛과 함께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재료 구입과 휴일을 기다려 만들어보기까지 또다시 며칠이 소요될 듯 싶다.
 
 
다음으로 책에서 주로 사용하는 도구와 계량법의 안내를 한 후, 본격적인 베이킹을 시작한다.
 
 
다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씩 방법이 다르기도 하고, 오븐 없이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어, 오븐 구입이 고민된다면 오븐없이 만들 수 있는 것부터 만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Part 1에서는 초보자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초간단 케이크를 소개하고 있다.
각 장별로 7개의 메뉴를 소개하고 있는데 재료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름만 봐서는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좀 생소한 것들도 있다. 저자는 그런 독자를 위해서 각각의 메뉴에 대해 간단하게 어떤 특징과 장점이 있고, 맛은 어떤 지를 소개하고 있다. 때로는 완성된 음식보다 저자의 차분하면서도 맛깔스런 소개에 더 끌리기도 한다.
 

 
Part 2에서는 소프트 쿠키
큰 아이가 이 책을 보자마자 바로 만들어 먹자고 조르던 것.
 
 
Part 3에서는 고급스런 식감의 작은 쿠키
밀가루 없이 만들었지만 바삭바삭, 고슬고슬한 맛! 어떤 맛인 지 정말 궁금하다.
한 번에 세 종류를 만들어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니 이 너트 쿠키도 일단 찜!
 
 
part 4에서는 시원한 디저트
케이크, 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먹을 수 있는 디저트도 소개한다. 특히 레스토랑에서 먹던 셔벗을 좋아하는데 만드는 방법을 몰라 해먹을 길이 없었는데 이 책에서는 건강에도 좋은 다양한 재료의 셔벗 만드는 법을 소개해주고 있다.
 
 
Part 5에서는 오븐 없이 만드는 간식과 후식
놀이공원 뿐만 아니라 워터파크에서 한참 물놀이를 하다가 먹는 추로스는 정말 꿀맛이다. 양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추로스를 건강한 재료로 오븐 없이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마지막 Part 6에서는 제과점 스타일의 특별한 케이크로 마무리한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인데, 화려한 제과점 케이크 대신 건강에 좋은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생일 케이크로도 물론 굿! 여러 가지 생과일을 얹어 장식하면 유명 베이커리의 케이크가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책에서는 약속한 대로 알레르기 유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먹음직스런 빵과 과자를 선보였다.
무엇보다도 재료와 과정이 간단해서 좋다. 재료의 경우 한 번 구입해두면 음식마다 거의 공통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메인 재료만 바꾸면 책에 있는 다양한 메뉴들을 만들 수 있다.
이번 주에는 기필코 주문을 해서 아이들과 멋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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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침묵 - 불가능한 고백, 불면의 글쓰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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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에 대해 알지 못할 때 글을 썼다. 그러나 이제는 삶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글도 쓸 수 없다." --- p.15
 
오스카 와일드의 이 문장은 이 책 [릴케의 침묵]을 쓴 저자 자신의 심정을 완벽하게 표현한 문장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문장이 저자가 오랜 기간 글쓰기에 '침묵'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그 고통의 사유를 걷어내고, 다시 세상 밖으로 언어를 내보내기까지의 과정을 '글쓰기' '침묵'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침묵과 글쓰기...상반된 것 같은 두 개의 관념은 시간차를 두고 이어졌을 때 운명적인 조합이 된다는 것을 저자는 한발한발 침묵의 과정에서 나오는 걸음걸이를 통해서 보여준다.
 
"혹은 그것을 더 열렬히 사랑하는 수다와 절대적 침묵 사이 어딘가에서 흔들리며 존재하는 어떤 행위가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어보다 침묵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모든 존재들의 참된 목소리는 침묵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문학의 기원이자 글쓰기 최초의 문장이다." --- p.23 
 
"글을 쓴다는 것은 내면의 절대적인 깊이로 침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의 가장 깊은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고독이다. 고독은 침묵의 밀도 높은 근원으로부터 솟아오른다.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로 설명될 수 없다. 태초의 혼돈, 신이 최초로 입술을 열기 전 빛과 어둠이 한데 뒤엉킨 채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 그것이 침묵이다. 깊은 동굴이 빛을 삼켜 감추어버리고 있는 상태다."
---p.32
 
시인 릴케는 <말테의 수기>를 발표하고 나서 <두이노의 비기>를 쓰기까지 10년 간의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릴케의 침묵은 단순한 언어의 부재가 아니었다. 고요한 침묵 속에 침잠해 있을 때가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순간이다. 침묵이 스스로 넘치고 범람하지 않은 한, 함부로 입술을 열어 외쳐서는 안 된다."
---p.93
 
동서양의 철학을 통해 깨달은 사유를 풀어 낸 저자의 전작과는 달리, 이 책은 이러한 내면으로 향하는 깊은 침묵 속에서 끌어 올린 진정한 삶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물론 이 책에는 수많은 사례와 인물이 나온다. 무의 형상화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서로가 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 인용과 인류 공통의 경험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서 시작한 글쓰기가 아닌 듯. 릴케처럼 터져나오기 전까지의 침묵을 받아 적으며 휘갈려 써내려 간 글은 문학과 철학의 초보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버거움이 있다. 서양 철학의 근간이며, 가장 원초적인 인간을 볼 수 있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에 빗대어 종종 표현되는데, 읽는 도중 '누구였더라, 어떤 상황이었었지?'를 고통스럽게 기억해내야 하기 때문에 저자의 느낌과 한 번에 소통하기가 힘들다.
물론, 앞뒤 전후를 살피며 떠올릴 수는 있지만, 섬세한 감정과 순간을 포착해 표현해 낸 저자의 감상을 온전히 공유하기에는 내 발걸음이 너무 뒤쳐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보자용 책처럼 앞 뒤 설명이 들어가다 보면 감정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겠지만, 침묵과 함축을 통한 공명의 공간 확보를 위해서 필요했을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깊게 공감하기 힘든 독자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저자의 글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짧고, 쉽다. 수식어구가 별로 없는 그의 글은 쉽게 읽혀 내려간다. 그럼에도 글이 빨리 닿을 수 없는 것은 어려운 형식의 글이 아니라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깊은 곳의 이야기들. 시간, 삶과 사랑...그리고 예술.
 
단순해질수록 정신은 풍요로워진다. 깊은 침묵 속에 집중한 이 세 가지의 주제는 우리 태초의 감정을 건드린다. 오래 전에 남겨 놓은 선비의 글들은 달빛이 드리워진 고요한 수면처럼 숨막히는 정적의 순간을 그대로 전해 준다. 그리고 함께 그 순간을 사유하게 한다.
 
석양은 맑은 시냇물 다리 위로 내려앉고
낙엽은 떨어져 가을 가는 길을 채우네.
나그네 가는 길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데
말은 차가운 시냇물에 그림자 떨구며 건너고.
 
"그래, 이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 그토록 긴 방랑이 필요했던 것인가 보다. 이 시는 이제 보니 너를 위한 시였구나. 이제 됐다. 이걸로 내 생은 충분하구나. 그만 가자꾸나." --- p.75
 
출세와 부귀영화에 대한 갈망을 접고, 시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평생을 방랑해야 했던 어느 이름없는 선비의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긴장감 넘친다. 안타까울 수도 있는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시간과 삶, 예술의 의미와 번뇌가 그대로 담겨있다.
 
 
삶이든 예술이든, 시간이든... 본질을 깨닫기 위해서는 입을 닫고 침묵의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저자는 이 하나의 근원적인 '본질'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전방위적인 접촉을 했다. 결국 다시 돌아와 '침묵'으로 마무리한다. 길었던 그의 긴 침묵의 의미에 대해서.
 
"신비주의자들은 침국을 숭배하고 언어를 금했다. 그 결과 침묵을 뜻하던 단어 mysticos가 신비mystery로 바뀌었다. 밤은 사회적인 모든 것을 침묵시킨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 자정이 넘은 시간의 대지에는 오직 깜깜한 어둠과 침묵만이 존재했다.
우리가 여전히 밤에 매혹을 느끼는 이유는 밤의 어둠만이 우리에게 잃어버린 진짜 얼굴을 되찾아주기 때문이다. 마스크가 아닌 얼굴을. 타자로 변해버린 자기가 아닌 진짜 자기를. 거추장스런 옷 대신 벌거벗은 진짜 육체를.
벌거벗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자들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 우리는 사회인으로서의 역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길고 오랜 세월을 야생의 동물로 살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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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발칵 뒤집은 어린이 로스쿨 -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우는 법정 체험 어린이 로스쿨 시리즈 1
유재원.정은숙 지음, 김지선 그림 / 아울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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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6학년은 사회 교과에서 '법과 정치'에 대해서 배운다. 4학년 때는 지방 단위로, 그리고 6학년 때는 국가 단위로 배우는데 워낙 딱딱하고 복잡한 내용이라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부분을 배울 때면 시청, 국회, 법원 등 체험학습을 다녀와 볼 것을 권장한다. 아무래도 직접 보고, 체험하면 친숙해지게되니 조금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6학년이 되는 둘째는 사회과 학습을 그렇게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을 좀더 재미있게 접근시켜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바로 이 책 [고전을 발칵 뒤집은 어린이 로스쿨]을 만나게 되었다. '법'하면 어른들도 사실 알기 쉽지 않은 분야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느끼는 거리감은 더 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을 재미있는 고전 이야기 상황에 적용시켜본다고 하니 흥미와 재미, 그리고 법에 대한 교육적인 효과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법'이 무엇이며, 이 법은 어떻게 실생활 속에서 적용이 되는 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다양한 '고전'에 대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소개된 고전의 원전을 읽고 싶은 마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쳐들었는데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흥미진진한 내용에 푹 빠져 읽다 보니 단숨에 읽혔다. 익히 잘 알려진 고전의 내용들도 '법과 재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을 보며, '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라는 신선한 생각의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 중의 하나였다.
 
책의 구성은 가장 먼저 '법'이란 무엇인지를 알고 시작해야 하므로 '어린이 로스쿨 법 상식'으로 출발한다. '법이란 무엇일까?'부터 법이 왜 생겼는지, 법의 종류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재판의 종류와 재판의 순서까지 어린이 눈높이에서 최대한 풀어서 쉽게 설명해준다. 재미있는 캐릭터와 삽화는 딱딱한 법을 한층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가게 한다.  
 
 
다음 본격적으로 고전을 발칵 뒤집어보기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교과서에서도 토론 거리를 불러왔던 '심청전'의 심청이다.
 
"공양미 300석에 심청을 제물로 산 청나라 상인들은 죄가 있을까?"
 
모의재판이지만 사건번호도 있고, 사건의 경위까지 재판의 형식 그대로를 빌어 재판의 과정을 실제처럼 느껴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부터 사건번호 2014도201의 모의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청나라 상인들은 공양미 300석에 심청을 사서 인당수라는 깊은 바닷물에 제물로 던지려고 했습니다. 이에 검사는 인신매매죄와 살인예비죄로 청나라 상인들을 기소했습니다. 배심원 여러분은 이 경우 어떠한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그러면 사건번호 2014도201의 올바른 판결을 위해 사건의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p.12
 
 
자세한 사건 내용을 살펴본 뒤 본격적인 재판이 진행되고, 판결이 내려진다.
판결이 내려지기 전, 참가자의 최후 진술이 이루어진다.
피해자와 피고인은 각각 자신들의 입장과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어떤 근거를, 어떻게 들고 있는 지를 파악해 본다면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힐 때 어떻게 근거를 드는 지 참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판결을 받기 전에 사건 내용과 양측의 최후 진술을 들어보고, 과연 나라면 어떠한 판결을 내릴 것인 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 최후 진술과 마찬가지로 '왜냐하면...'이라는 근거와 이유를 들어서 생각해보고, 서술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제 '판결'을 보도록 하자. 여기에 적용되는 죄는 '인신매매죄'와 '살인예비죄'이다. 인신매매죄는 사람을 물건처럼 돈을 받고 거래했을 때 적용되는 범죄이고, 살인예비죄는 살인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칼이나 총 등과 같은 흉기를 소지하거나 사람을 죽이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했을 경우에 해당하는 범죄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각주처럼 별도로 풀어서 설명을 덧붙여주고 있다.
 
 
자, 그럼 현명한 판사의 판결은 과연 어떻게 내려졌을까?
판결은 바로 '유죄'이다.
청나라 상인들이 자신들의 영업적 이익을 위해 심청을 물건처럼 거래한 것은 인신매매죄에 해당하며, 또한 심청을 깊은 바다에 잘 빠지도록 뱃머리로 내보낸 것은 살인의 고의가 있는 행동으로 살인예비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법」제255조 및 제289조, 「형사소송법」제323조에 근거하여 청나라 상인들은 유죄이며, 징역 10년씩의 선고가 내려졌다. 또한 심청이 받은 쌀 300석은 「민법」제746조에 따라 청나라 상인들에게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판결도 내렸다.
 
관련 법률에 대해서도 따로 소개를 해서 어떤 내용의 조항인 지 확인해볼 수 있도록 해두고 있다.
 
 
이야기 속의 사건을 끌어내어 현재의 법을 적용했을 때 과연 그러한 행동들이 정당한 것인지, 부당한 것인지를 판결해봄으로써 현재의 법의 성격과 기능을 알 수 있으며, 이야기 속 사건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고민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만일, 심청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배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면 과연 심청은 청나라 상인들에게 이미 받은 쌀 300석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일까? 거래상으로는 약속을 어겼으니 돌려주어야 하겠지만 죄를 심판하는 법의 영역에서는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고전 속에서 끌어냈지만 현실에 비추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을 만날 수 있고, 또한 이야기 속에서만이 가능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현실의 법이 적용됨으로써 또다른 새로운 결론을 상상해볼 수 있게 하는 여지도 만들어준다.  
 
몇 가지 다른 사례를 살펴 보면,
 
"탐관오리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 홍길동은 죄가 있을까?"
"나라의 과일을 모두 사들인 후 비싼 값에 되판 허생은 죄가 있을까?"
"호동을 위해 자명고와 자명각을 부순 낙랑 공주는 죄가 있을까?"
 
정의를 위해서 한 행동이지만 법의 심판은 달리 매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사건에는 과연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고전을 읽을 때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책의 뒤표지에는 좀더 효과적으로 책을 읽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한 편 한 편을 읽다 보면 이 책의 부제인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우는 법정체험"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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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힘 - 대한민국의 미래, 토론교육이 답이다 강치원의 토론이야기 1
강치원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올 한 해도 그렇지만, 작년 한 해 동안은 낯설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흥분과 열정에 휩싸여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서논술지도에 대한 관심이 있어 꾸준히 공부했으나 직장에 매인 몸이다 보니 시간을 빼기가 어려워 몇 년 동안은 거의 답보 상태로 흘렀었다. 
그러다가 어찌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금 비운 곳을 채우기 위해 강의를 신청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토론(디베이트)'강의까지 듣게 되었다. 독서지도에서도 물론 토론을 다루긴 했었지만 '찬반'으로 엄격하게 나눠 규칙에 의해서 진행되는 형식의 토론은 생소하면서 흥미로웠다. 독서보다 조금 더 확대된 논제로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주제도 많았고, 토론자가 직접 당면하거나 관련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좀더 몰입해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상대에 따라 그때그때 결과가 달라지는 역동성과 경기 형식이 주는 긴장감은 토의와는 다른 매력을 안겨주며 일 년 가까이를 토론에 묻혀 살다시피 하게 만들었다. 수강을 하면서 직접 해보기도 했지만, 학교로 나가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기도 하면서 토론이 가진 다양한 매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몸으로 직접 체득했었다.
 
처음에는 어설프던 아이들도 몇 번만 해보면 금방 적응하고, 그 긴장감있는 상황을 즐기면서 대응해나가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스스로 하기 힘든 논제도 직접 필요로 하고 써먹을 수 있기 때문에 자료를 직접 준비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 자기주도학습이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었다.
이렇게 빠르게 커가는 아이들보다 내가 더 빨리 성장을 해야 했기에 당시 토론과 관련된 웬만한 책은 거의 다 구해서 읽어 본 것 같다. 조금씩 활용 방법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토론의 원론적인 설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다. 기본적인 사항을 알아야 하는 것은 토론 교육의 기본이고, 필수이지만 대부분의 토론책이 얘기하는 것은 대동소이하였다. 좀더 분야를 쪼개서 다룬다거나 심도 깊게 들어간다거나 방향이 다른 책들이 있었으면 했는데 읽는 책이 열 권을 넘어서다 보니 큰 차이없고 내용이 더 이상 깊어지지 않아 읽기를 그만두었었다.
 
 
[토론의 힘] 이 책은 책 읽기를 그만둔 지 거의 1년 만에 만난 책이다. 지금은 잠시 토론 교육을 쉬고 있지만 다시 할 때를 대비해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책을 다시 읽으려고 할 때 알게 되었다.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기존에 읽었던 책들과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토론을 20년 이상 해온 저자의 생생한 노하우는 그대로 현장에서 무엇이 필요한 지를 감지하고 있었다. 평소 가려웠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었다. 토론 교육을 하면서 답답하고 막막했던 부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풀리면서 분명해지고 있었다.
토론의 방법이나 형식보다 정작 토론을 할 때 벽에 부딪치게 되는 질문들(듣는 방법, 메모하는 방법, 말하는 방법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답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토론은 잠깐의 교육으로 능력이 향상되기는 어렵다. 물론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평소에도 토론에 필요한 능력을 꾸준히 연마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 속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은 바로 '가정'일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어떻게 거창하게 매번 토론을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집에서 아이들과 토론을 몇 번 시도했지만 직업적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잘 되지 않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집에서도 쉽고 간단하게, 부담없이 토론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목적이기도 했는데, 읽다 보니 그 외에도 너무 유용한 자료가 많아서 감탄과 감사의 마음으로 한 장 한 장을 읽어 내려갔다.
 
 
토론을 이미 경험한 사람은 물론이고, 토론을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라도 직접 해볼 수 있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과정과 형식이 복잡하면 실천이 어려운 법. 저자가 제안한 것은 딱 네 가지 질문이다. 이것을 매일 15분씩만 실천해도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막강한 훈련이 된다는 것이다.
 
1)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인식)
2) 그에 대해 느낀 것은 무엇인가? (가치판단)
3)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가? (실천의지)
4) 궁금한 점은 무엇인가? (문제제기 - 질문거리, 토의거리, 논쟁거리)
 
 
핵심적인 명쾌한 정리가 필요한 토론을 오래해서 그런지 책의 구성도 명료하게 정리가 잘 해두어 이해하기도 활용하기도 쉽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덧붙인 '요약정리'는 활용도를 더욱 높여준다.
 
수영하는 법을 배운다고 수영을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토론도 마찬가지다. 방법과 절차를 잘 안다고 해서 토론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툴더라도 매일 꾸준히 연습하고 준비할 때 탄탄하게 성장해갈 수 있으며,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토론의 달인으로 가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가장 빠른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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